[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퀴즈로 시작해볼까. 어린이들도 쉽게 맞추는 문제니까 긴장 하지 마시길.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다. 운동장에는 화려한 색깔의 만국기가 펄럭이고 음악소리와 응원이 뒤섞인 가운데 당신은 친구들과 백 미터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이윽고 출발신호에 맞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스타트가 늦었던 당신은 젖 먹던 힘까지 내며 한명씩 따라잡았고 결승선을 앞에 두고 2등을 추월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몇 등 일까?

1등이라고? “땡.” 미안하지만 틀렸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2등을 추월하면 몇 등일까. 정답은 2등이다. 2등을 추월하면 내가 2등이 되니까.

재미있는 사실을 말해 줄까. 이 문제를 내면 어린이들은 정답을 맞히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은 틀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답을 말해줘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 하는 탄성을 지른다.

한 문제 더 해보자. “올챙이는 따뜻한 물에 알을 낳을까? 찬물에 알을 낳을까?”
이 문제 역시 어린이들은 정답을 안다. “에이, 올챙이는 알을 낳지 못하잖아요?”라고 말한다. 눈치 채셨는가. 그게 정답이다. 올챙이는 알을 낳지 못한다. 알을 낳는 것은 개구리다.

나는 성인과 어린이의 차이점을 말할 때 항상 두 개의 퀴즈를 인용한다. 왜 그럴까. 혹시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굳어진 생각. 이를테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판단하고 결정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알다시피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고, 고정관념은 ‘경험을 통해 일반화 하는 것이며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는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우리가 알기에 ‘태산’은 높은 곳의 상징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정말 그럴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중국 산둥 성에 있는 태산의 높이는 1,532m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한라산(1,947m)보다, 지리산(1,915m)보다, 설악산(1,708m)보다 낮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저 ‘태산’이 높다고 하니까 막연히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한 거다.

또 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해 잘 알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단다. 사회심리학자 스웬슨은 “결혼 한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르며, 배우자의 감정과 태도를 예측하는 정도가 떨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부부는 계속 변해가지만 결혼 초기의 ‘고정관념’으로 배우자를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즉 오래된 부부일수록 고정관념과 편견이 더 심하다는 뜻이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사라지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창의성’과 ‘유연한 생각’ 그리고 ‘역발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창의성은 발상을 전환시켜 기존의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고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을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바라볼 때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매일 같은 생각만 하고, 같은 길만 걷고, 같은 행동만 하지 않는가. 뭔가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일정한 형식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조금은 유치했지만 ‘역발상’을 위해 내가 시도 해본 방법이다. 아이들은 어릴 적에 감기를 달고 사는데, 내 아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소아과를 자주 찾았다. 한데 소아과에 비치되어 있는 장난감으로 인해 아이들 사이에선 종종 다툼이 발생한다. 우리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온 순서대로 갖고 놀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세상이 힘의 논리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깨닫는다. 덩치 큰 아이가 “미끄럼틀은 내 차지야.”라고 으름장을 놓으면 키 작은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밀려나고, 장난감 총이나 칼, 인형을 두고 티격태격 하기도 한다. 이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집에 이런 거 있잖아. 오늘은 친구에게 양보해줘.”

나도 그랬다. 하지만 후유증이 따라왔다. 서운함을 못이긴 아들은 울었고,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 주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아들을 울리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다. 이 경우 한마디만 하면 상황이 끝났다. 아이들끼리 실랑이를 벌일 때 둘 사이를 떼어 놓으며 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때 주의 할 점은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해야 한다는 거다.
“아들아, 왜 그래? 어제도 장난감가지고 싸우다 코 피나게 만들었잖아. 나도 이젠 지쳤으니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 거야. 때리던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기겁을 하며 자신의 아이를 단속하고 내 아들 곁에 얼씬 거리지 못한다. 그 순간부터 미끄럼틀과 장난감은 내 아들 차지가 된다. 그러면 따돌림 당하지 않겠느냐고? 에이, 별말씀을. 병원에서 진료 전에 잠깐 보는 아이들끼리 따돌림이 가능 할까? 그리고 내 아들은 폭력적인 성격이 아니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발상의 전환을 위해 내가 노력한 방법은 또 있다. 몇 년 전에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라디오 생방송을 했던 적이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 요리강사가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요리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남자들이 요리를 배우면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가정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해본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는 생각이 다릅니다. 부드럽게 바뀌길 원한다면 요리를 배우셔야 합니다.”

그녀의 주장이 일리 있다는 생각에 당장 수강신청을 했다.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데 걸림돌이 있었다. 수강생중 남자는 나 혼자였다. 방법을 고민한 끝에 친구를 살살 꼬드겨 같이 다녔다. 요리를 배워보니 강사의 말이 사실이었다. 요리를 배우며 익숙해져 버린 것들에 대한 감사를 다시금 알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큰 깨달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 거다. 혹시 생 오징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어 본 일이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칼질인지 톱질인지 모를 정도로 낑낑 댄다. 나도 그랬다. 고민 끝에 좋은 방법을 알게 된다. 생선가게에 썰어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오징어 썰기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생선가게에서는 “껍질은 벗겨주지만 써는 건 힘들어요.”라며 사양한다. 왜 그러냐고? 5천 원에 두 마리인 오징어를 10분 동안 썰어준다고 생각해보라. 다른 손님은 어쩌란 말인가.

이때 방법이 있다. 바로 ‘상냥한 인사’다. 평소에 인사를 잘해 놓으면 단골이란 생각에 그들은 절대로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니 요리를 배우면 부드러워진다는 말이 생겼으리라. 직접 장을 보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 준다. 내가 만든 요리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의 뿌듯함. 나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요리강사는 내게 ‘요리에 대한 철학’도 가르쳐주었다. “요리는 만든 사람이 설거지까지 끝내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 속뜻은 요리를 한답시고 아내에게 “소금 어디 있어?”라고 물어서도 안 되고, 잔뜩 어질러 놓고 뒤치다꺼리를 맡기지 말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한발 앞선 생각을 해야 한다. 실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미래를 바꾸어 왔다. 스티브 잡스의 슬로건은 “다르게 생각하라”였고, 페이스 북의 창업자 마크 저크버그는 “무엇인가를 개선하려면 틀을 깨뜨려라”는 명언을 남겼다. 빌게이츠는 가장 두려운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어딘가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전혀 새로운 뭔가에 매달려 있는 젊은이다.”

‘기업가 정신’으로 유명한 현대 정주영 회장도 남과 다른 생각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소양강 댐을 건설하려고 건설회사 4곳의 대표들을 불렀을 때다. 부름을 받은 건설사 사장들은 어떻게 하면 수주를 받을 것인지 고민했지만, 정주영 회장은 다른 생각을 했다. 그는 서울지도를 펴 놓고 소양강 댐이 건설되면 침수되지 않는 지역의 땅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다. 어차피 상습침체구역이라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땅이었고 투기라는 의혹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의 생각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이 땅이 바로 ‘압구정’이다.

‘역발상’은 프로야구에도 있다. 프로야구 투수들은 구속이 150km가 넘으면 정상급 선수로 분류된다. 하지만 두산의 유희관 선수는 다르다. 직구 스피드가 겨우 130km지만 그는 일류선수다.
왜 그럴까. 느림 때문이다. 별명이 ‘느림의 미학’인 그는 슬로 커브가 겨우 74km에 불과하다. 100km도 되지 않기에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할 것 같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실제 그는 작년(2015년)에 18승(다승 2위)을 올렸고 올해 연봉이 4억 원으로 인상됐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구속이 느리다는 개념이 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내공이 느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볼 스피드를 높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장점을 더 키워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더 느리게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타자들이 타이밍을 못 잡던데요?”

당연 한 것이 아닌 “왜?”라는 물음이 ‘창의성’이고 ‘역발상’이다. 아는 것은 뒤집어 보고, 해보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고, 해봤던 것은 다르게 하는 것. 이제는 이것이 성공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SNS에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다. 교무실 청소를 하던 학생에게 선생님이 핀잔을 주자 학생이 이렇게 대들었단다.
“교실은 우리가 쓰니까 치운다지만 교무실은 선생님들이 쓰는데 왜 우리가 청소해야 합니까?”
그 학생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가 아닌, 왜 그래야 하는지를 생각한 거다. 한데 선생님의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그럼 네 방은 왜 엄마가 치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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