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세상 참 넓고도 좁다.”
얼마 전 동네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일이다. 50대 남자가 나를 곁눈질로 흘깃 거렸다. 자꾸 쳐다보는 그의 눈길이 못마땅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어 참고만 있었다. 살 물건을 들고 카운터 앞으로 가자 그 남자도 뒤따라오며 내게 말을 걸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맞지?”

그제야 궁금증이 풀어졌다. 그래서 나를 힐끔 거렸구나. “예, 맞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반응을 보이자 그가 신났다는 듯 말을 잇는다.
“이 동네 사는가 봐. 오래 살았어?”
계속 반말을 하는 그가 싫었지만 시비가 붙으면 득 될게 없을 것 같아 참고만 있었다. 게다가 말을 할 때마다 그의 입에선 술 냄새가 진동했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 내가 여기 사냐고 물었잖아.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왜 자꾸 반말을 해요?”
“기분 나빠?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반말하지 말라니까요.”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난투극이라도 벌어질 것 같았는지 눈치 빠른 슈퍼주인이 나섰다.
“에이, 왜들 이러세요. 서로 참으세요.”
그러더니 슈퍼주인이 내 얼굴을 보며 눈을 찡끗했다. 참으라는 말이겠지. 하긴 술 취한 사람과 실랑이를 해봐야 뭐하겠는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어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쳇, 도대체 술을 어디로 먹은 거야?

그런데 세상 참 좁다더니 몇 달 후 그를 다시 만났다. 고등학교 동문모임에 신입회원 한분 들어왔는데 하느님 맙소사. 그 사람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12살이나 더 많았다. 나는 31회였고 그분은 19회였다. 아이고, 만약 그때 멱살잡이라도 했더라면 어쩔 뻔 했단 말인가. 한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올해 그분이 회장이 되었고 나는 사무국장이다.

‘모든 인연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는 말이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일찍부터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연구로 입증했다. 그중 유명한 것이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여섯 단계 분리 이론’이다.

그는 이런 실험을 해봤다. 미국 전 지역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160명을 뽑아 보스턴에 거주하는 특정인에게 편지형식의 소포를 전달 해달라고 부탁했다. 소포를 받은 사람들은 더 가까운 위치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 보내면서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마침내 주인공에게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 된 소포들은 평균 여섯 단계를 거쳤다는 것을 알아냈다.

비슷한 것은 또 있다. 영화배우인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이다. 미국의 어떤 배우라도 관계를 따지다 보면 6단계 만에 케빈 베이컨과 연결된다는 이론이다. 예컨대 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체인지 오브 해빗〉이란 영화에서 에드워드 애스너라는 배우와 출연했는데, 애드워드 애스너는 영화 〈JFK〉에서 케빈 베이컨과 호흡을 맞췄으니 단 두 단계 만에 연결된다.

나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대전광역시 예산참여주민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던 시청 여공무원이 구청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에 서운해 했지만, 그녀가 구청 여성가족과로 오면서 나와 ‘어린이날 행사’를 같이 했고, 알고 보니 그분의 시아버지는 우리 아파트에 사는 내가 아는 분이었고, 시아버지는 나와 절친하게 지내는 어른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았다. 나도 그 여공무원을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 한 거다.

하긴 우리나라처럼 혈연, 학연, 지연이 연결된 곳은 관계가 훨씬 더 촘촘할 거다. 나는 최근 색다른 경험을 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인연 중에 ‘나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시골로 내려가신 장모님은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우리 집에서 10년 동안 함께 살았다. 장모님 덕분에 우리 부부는 맞벌이에 전념 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장모님께 내리사랑을 배웠다. 당시 장모님은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아파트 내에 있는 경로당을 다니셨는데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경로당에서 나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 서방이 우리들 밥 한번 사주면 안 될까?”
 말인즉 매번 그분들의 자식들에게 얻어먹었으니 나도 내라는 말씀이셨다.
“먼저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언제가 좋을까요?”
“내일이 어떨까. 토요일인데.”

다음 날, 다섯 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간장게장’ 집을 찾았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따뜻했다. 아무런 인연이 없던 어르신들과의 관계는 장모님으로 인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후 장모님은 시골집으로 내려가셨지만 그 한 번의 만남이 몇 년 뒤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내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에 출마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 어르신들이 적극 나서 준 것이다. 그중 열성적이었던 분이 박순영 할머니였는데, 인맥을 동원해 경로당 어르신들께 내 지지를 부탁했고 만날 수 없는 분에겐 전화까지 해주셨다. 그리고 말미에는 꼭 이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우리 늙은이들을 데려다가 간장게장도 사주고…….”

나는 조금 놀랐다. 딱 한번 뿐이었고 그것도 몇 년이나 지난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안다. 그분들이 나를 도와준 이유는 장모님과의 인연 때문이란 것을.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입주자 대표회장에 당선되었고 현재는 당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좋은 인맥이 성공을 좌우 한다는데 잠깐의 만남이라도 친밀감이 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당신과의 인연을 나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표현할 길은 없을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내가 먼저 희생하는 것이 최고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에 오기(吳起)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정이 많고 병사들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병사 중에서도 가장 계급이 낮은 자와 함께 했고 행군 할 때도 수레에 앉아 있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병사가 악성 종양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오기는 직접 환부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병사의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장군님이 일개 병졸인 아드님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주는데 어찌 슬퍼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에 오기장군께서 제 남편도 똑같이 고름을 빨아낸 적이 있습니다. 남편은 그 후에 있은 전투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제 자식의 고름도 빨아내셨으니 저는 아들까지 잃게 될까봐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고름을 빨아낼 용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지 싶지도 않다. 괜히 마음에 없는 짓을 하다가 오히려 괘씸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나는 얼마 전 어떤 정치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명절특집으로 대전역 대합실에서 2시간 동안 'TV 생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의 출연자들은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이들 중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출연자 대기실에 있던 그는 문이 열리고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일어나 인사를 했다. 대본 연습을 하는 중에도 메이크 업을 하는 중에도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향해 싫은 내색 없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일회적 만남이라도 상대에게 온기를 심어주고 있었던 거다. 그의 행동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런 사소한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구나.

혹자는 “정치인들은 사람이 표로 보여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때와 달리 당선 된 뒤에 온갖 폼을 다잡는 지엄하신 그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선거철도 아닌데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를 통해 이솝우화를 떠올렸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에서 입김을 세게 불어 억지로 옷을 벗기려던 먹구름은 실패하고, 따뜻한 빛을 내리쬐던 태양이 승리했다는 이야기. 좋은 인연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꾸미고 밀어붙이기보다 ‘부드러움’과 ‘배려’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한 인연을 놓치지 않겠다는 내 마음이 소중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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