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충청향우회 신년교례회 뒷이야기

총선을 두달여 앞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충청향우회 중앙회 신년교례회에 참석한 주요 내빈이 시루떡을 자르고 있다.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자신과 소속 정당 이름, 당 색깔과 번호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저마다 고향 발전 적임자를 자부하며 동네 구석구석을 찾는다.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손잡고, 팔 벌려 안아주기도 한다. 다, 자기를 찍어 달라는 얘기다. 그렇다. 다시 선거철이다.

4월 총선을 56일 남겨둔 지난 17일 저녁. 서울에서 큰 행사가 열렸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충청향우회중앙회 신년교례회다. 충청도 출향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근황을 묻고, 한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덕담을 건넨다. 해마다 1000명 넘게 온다. 이날은 2월 임시국회 기간이기도 했다. 소문 난 잔치에 국회의원들이 빠질 리 없다.

출향 의원 일색 신년교례회, 지역구 의원들 어디에?

충청도에 연고를 둔 의원들이니 이들의 참석은 당연하다. 그들이 발걸음을 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이런 날 눈도장을 안 찍었다 괜히 출향 인사들에게 ‘찍힐’ 수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몰라도 신년교례회가 매번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게 국회의사당과 가깝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실은 63빌딩이 향토기업 상징인 한화 소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 행사는 특이했다. 지역구 의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충청도가 고향인 출향 의원들과 충청도와 그리 인연이 없어 보이는 서울이나 수도권 의원들이 사소한 인연을 앞세워 발걸음 했다. 그리고 다들 앞에 나와 “충청도의 딸”, “충청의 아들”이라며 한마디씩 했다. 그 한마디 말과 인사를 하려고 그들은 왔다. 바로 그들 앞에 모인 ‘표’ 때문이다.

내가 그날 행사장에서 본 지역구 의원들은 새누리당 강창희 의원(대전 중구),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 이명수 의원(충남 아산)이 전부다. 강 의원의 경우 총선 출마도 안하니 다른 의원들에 비해 여유가 있어 보였다. 더구나 그는 이날 ‘자랑스런 충청인 대상’ 수상자로 꼭 와야 했다.

때가 때이다 보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도 왔다.

김무성-천정배도 온 충청도 행사 빠진 '더민주'

이날 행사장에는 권선택 대전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 선출직 공무원들을 비롯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국민의당 천정배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비롯해 대전.충남 지역구 의원들은 불참했다.
김무성 대표는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시루떡 절단에 기념촬영까지 하고 갔다. 대권 잠룡으로 꼽히며 이번 총선 종로 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보였다. 부산 출신인 김 대표는 둘째 사위 고향이 충북 청주로 충청과 인연이 있고, 서울 출신인 오 전 시장도 부인이 충남 천안 출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온다고 했던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불참했다. 대전과 충남 지역구 의원도 안보였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여권 일색의 분위기는 ‘희한한’ 장면이었다.

과연 나머지 의원들은 왜 ‘찍힐’ 걸 감수하면서까지 빠졌을까. 답은 대강 나온다. 그들이 원하는 ‘표’가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행사가 집중되는 정치권 프라임시간대(오후 6~9시) 진행되는 향우회 행사보다 지역구 행사 몇 군데 더 도는 게 낫다. 한번 욕을 먹어도, 일단 눈앞에 닥친 ‘내 표 단속’이 그들에겐 더 급하다. 향우회는 이번 총선에서 배지를 지켜 내년 행사에 와도 된다는 계산이 깔렸을 수 있다.

나는 지난해 처음 충청향우회 중앙회 신년교례회를 참석했다. 그러니 올해가 두 번째다. 작년에는 김무성도 천정배도 안 왔다. 그런데 올해는 그들에 더해 김을동(홍성, 송파병), 나경원(영동, 동작을), 노철래(서천, 경기광주), 안상수(태안, 인천 서강화을), 이혜훈(제천, 서초갑 출마) 등 전·현직 출향 의원들이 눈에 띄었다.

선출직 위주 신년교례회, 신선함이 없다 

매년 설 명절 이후 열리는 충청향우회 신년교례회는 선출직 공무원들과 정치인들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신선함이 없다는 평가다. 중앙회 차원의 변화가 요구된다.
700만 출향 충청향우회를 이끄는 중앙회는 지난해 10월 15일을 첫 ‘충청인의 날’로 정해 선포식을 가졌다. 고향인 충청해역(태안앞바다)에서 토종어종 치어 20만 마리 방류행사도 했다.

하지만 신년교례회는 신선함이 없는 ‘연중행사’로 전락하는 것 같아 아쉽다. 특히 올해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을 위한 행사란 이미지가 짙어 더 아쉬웠다. 행사장 화장실에 잠깐 들렀을 때 향우회원들끼리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정치인들 하는 얘기나 들어주러 온 것 같다” “선거 때니 이해해야지 어쩌겠나.”

행사장 안 큼지막한 전광판에 지루하게 반복되는 내빈 소개보다, 고향소식을 알려주는 영상을 틀어주면 향수(鄕愁)라도 느끼며 보는 재미가 있겠다. 행사장 밖에도 충청권 광역지자체(대전·세종·충남·충북)에서 작은 부스라도 만들어 시·도정 홍보라도 했으면 좋겠다. 가능할진 모르나 고향 특산물도 내놓고 팔면 어떨까 싶다.

동네 의원들 얼굴이나 보다 정치인과 다름없는 단체장 축사나 듣고 밥 한 끼 먹고 가는 행사는 ‘자랑스런 충청인’에 어울리지 않는다. 향우회원들이 함께 어울릴만한 참여 형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래야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흐뭇할지 않을까.

소문난 잔치, 중앙회부터 변해야

오장섭 중앙회 총재는 항상 충청인들의 단합과 결집을 역설한다. 올해는 보수와 혁신의 조화도 강조했다. “충청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서려면 충청인의 기개가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한 표 제일주의’에 젖은 정치인과 식상한 행사로 1년 시작을 알리는 소문난 잔치가 먹잘 것 없이 치러져선 안 될 일이다.

오장섭 총재는 이날 7대에 이어 8대 총재(2년 임기)에 재선출됐다. 말로만 ‘영충호 시대(영남-충청-호남, 충청이 호남의 인구를 뛰어넘은 데서 비롯된 말)’나 ‘단합과 단결’을 외칠 게 아니다. 충청향우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