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단상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동네에 개인가게, 공방, 갤러리 등 독특한 공간들이 들어선다. 상점들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 거리는 활기를 되찾고, 새로운 형태의 상권이 형성된다. 다음 단계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똑같다.

소상공인과 주민들은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고, 거리는 프랜차이즈로 꽉 찬 특색 없는 상업지구로 남는다. 뜨는 도시에 뜨는 원주민. 최근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다.

도시재생 측면에서 보면, 쇠퇴한 구도심에 다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성공적인 일이다. 단, 그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든 세입자와 원주민들이 쫓겨나 정체성을 상실한 도시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서울 홍대, 북촌, 해방촌, 삼청동, 경리단길 등이 이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젊은 미대생들로 화방, 공방, 갤러리, 책방 등 예술관련 상권이 형성된 홍대. 저렴한 임대료와 자유로운 분위기에 다양한 청년예술가들이 모이면서 문화거리가 형성됐지만,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창작자들은 새로운 공간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독특한 거리문화는 변질됐고, ‘굴러온 돌의 박힌 돌 빼내기’는 그들이 이주한 다른 도시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전도 마찬가지다. 대전 대흥동에 위치한 대전 프랑스문화원 분원이 이사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대 여행문화에 앞장 서 온 카페 ‘도시여행자’도 같은 처지다. 나름의 역사를 지켜온 그 자리는 모두 신축 원룸이 들어설 예정이다.

과거 이런 현상은 수년에 걸쳐 일어났지만, 최근에는 불과 6개월에서 1년 사이로 점차 그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이에 서울시는 특단의 카드를 꺼냈다. 시가 직접 건물을 매입·임차해 문화·예술인과 영세 소상공인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 젠트리피케이션이 예견되는 곳의 건물주와 상인, 구 3자간 상생 협약을 미리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시도 원도심 내 상가 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 노후상가 건물주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최대 3000만 원까지 지원해주는 대신 일정 기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장기안심상가’ 제도를 도입했다.

도시재생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시장경제 원리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데 다들 동의한다. 제도적 보완장치 즉, 지자체의 직접 개입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할 과정은 원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특히 집중적 자본투입에 의존하는 도시재생은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 조정에 한계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2009년 용산참사를 통해 얻은 뼈저린 공감대이기도 하며, 도시재생정책이 물리적 환경개선에서 나아가 자발적인 주민 참여 방식으로 변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쓸고 닦아 가꾼 동네, 그리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있는 자들의 부동산 게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골목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일군 문화는 자본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역사적 자산이라는 것을.

도시는 언제까지나 우리만의 도시일 수 없고, 성공적인 도시재생은 소유자와 사용자가 골목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혹자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이 마냥 꿈같은 일이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자본’이 아닌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는 관점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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