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안철수당에 호남보다 중요한 ‘콘텐츠’

김학용 주필
어제 대전에서 열린 ‘안철수당’인 국민의당 창당대회의 사진을 보니 관중석을 다 채우긴 했으나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큰 열기는 없었다. 떨어지고 있는 당 지지율 때문일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안철수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가 가진 것은 오로지 새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는 그 이미지와 거리가 먼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기존 정당 게임 따라 가는 안철수 신당

그는 탈당 이후 세(勢) 불리기 작업에 주력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매달리고 있다. 어떤 정당도 그런 지위를 얻어야 현실적으로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철수당이 처음부터 원내교섭단체에 매달리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까먹고 있다.

안철수당은 현역 의원 3명만 더 들어오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있지만 자격 미달자여서 당에서 국민들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누군지는 짐작이 간다. 안철수당의 한 중진 의원은 어제 대전 MBC라디오에 나와 국민들이 이해해주면 데려올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런 식의 외연 확대는 그동안 봐 온 구태의 전형이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면 좋은 점은 있다. 20석을 만들면 정당의 발언권이 강화될 수 있고 나랏돈 80억~90억 원이 나온다. 정치권 인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안철수당이 원내교섭단체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돈 때문이다. 안철수가 막 새정치연합(현 더민주당)을 탈당했을 때, 어떤 정치권 인사는 “안철수가 100억 원만 내놓으면 현역 의원들이 금방 몰릴 것”이라고 장담했다.

원내교섭단체 연연 부자가 나랏돈에 안달하는 모습

안철수가 큰 부자이긴 하나 그런 돈을 내놓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판명됐다. 처음 국회에 들어가 상임위 배정을 받을 때 그가 돈 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 하는 점이 드러났다. 공당의 정치 비용을 개인 재산으로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란 점은 알게 됐다. 원내교섭단체에 계속 매달리는 것은, 돈도 많은 안철수가 자꾸 나랏돈 빼먹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국회 내 발언권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실효성은 의문시된다. 안철수당이 당장 원내교섭단체가 되어 여야 협상테이블에 함께 앉는다 해도 제3당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당 자신의 콘텐츠가 확실해야 가능한 일이다. 안철수당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당의 생각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선거 때면 기존 정당들은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린다. 유권자의 불신을 ‘사람 갈아치우기’로 만회하려는 수법이다. 정당들은 꽤 좋은 인재를 수혈받아 국회 배지를 달아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새 인물이 국회에 들어가 뭘 해냈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구태 정치판에 묻혔다가 사라지곤 한다.

인재 영입도 억지로 할 필요 있나?

안철수당은 달리해야 한다. 올 생각이 없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오려고 하지 말고 이미 모인 몇 사람이라도 ‘새정치의 진심’을 전달하는 데 더 공을 쏟는 방법이 낫다. 더민주당엔 김종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안철수당에도 굳이 그런 인사가 필요할까? 충청도 대표선수로 정운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그가 온다 해도 달라질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신당은 세(勢)가 약한 게 정상이다. 신당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세가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다. 모든 신생 정당이 그럴 수는 없지만 안철수당은 ‘안철수 현상’까지 나왔다. 왜 그걸 못살리나? 좋은 정책을 발굴해서 국민에게 호소하면 된다. 세력이 크면 좋지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세를 키우는 과정에서 오히려 때가 묻고 잡탕이 되면 당의 이미지만 퇴색할 수 있다. 지금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어떤 정치권 인사는, 안철수당이 당의 명운을 걸고 ‘국회의원 특권폐지’를 약속하는 것도 기존의 기득권 정당과는 차별화가 가능한 공약이라고 했다. 다수당이 아니어도 아이디어는 찾으면 있고 실천 방법도 있다. 안철수당은 지금 세가 부족해서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게 아니다. 안철수 현상을 메시지화 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새정치연합을 나오면서 “연대는 없다”고 강조했으나 당의 미래가 불안할수록 약속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연대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문가든 일반이든 안철수당은 적어도 부분적 연대는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안철수당 존립 기반 흔드는 야권 연대 문제 

이것도 안철수당의 존재 기반을 흔드는 부분이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탈당-연대-통합’은 또 하나의 구태가 됐다. 안철수당이 끝내 지리멸렬의 상황으로 갈 경우 더민주당의 연대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다. 어려운 처지가 되면 상대가 주는 떡을 몇 개라도 받아먹는 방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그 떡을 보고 안철수를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A급 인사일 가능성은 낮다. 국민들이 이런 정당을 키워줄 리 없다. 

안철수당은 당의 존폐를 걸고 연대 부분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 군데라도 다른 당과 연대해야 하는 경우 차라리 당의 깃발을 내리겠다’는 정도의,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연대 거부’는 더민주당에겐 불리한 일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야당의 건강성을 먼저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야권 연대를 전면 거부할 경우 안철수당 자신도 얻는 것이 없으면서 야권만 몰살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점이 안철수가 이번 선거에서 져야 할 가장 큰 부담이다. 안철수당이 그걸 해내려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상품 즉 콘텐츠를 먼저 내놔야 한다. 아무 것도 없이 유권자에게 무조건 ‘믿어달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호남 원내교섭단체보다 필요한 콘텐츠와 진정성

안철수당에겐 전략가인 윤여준과 김한길이 있어야 하고, 전략지인 호남의 응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안철수당 자신의 콘텐츠와 진정성이 담긴 메지시다. 그게 있어야 호남도 충청도 얻을 수 있다. 지금 안철수당에는 그게 없다. 노무현 후보 본인조차 믿기지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도 세력 확장이 먼저가 아니라 ‘서민 대통령 후보의 메시지’에서 출발했다. 그게 먹혔을 때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에게 정치의 기회가 왔다.

많은 국민들은 양당제의 기득권 정치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제3당의 탄생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안철수 현상’은 대안 모색이었고, 주인공 안철수가 오락가락하면서 실망도 시켰지만, 새정치연합을 탈당하자 또 한번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안철수는 새정치가 아니라 헌정치로 가고 있다. ‘원내교섭단체’ ‘세 확장’ ‘돈’ 모두 헌 정치다. 필요는 하지만 거기에 매달려선 안된다. 새정치를 하겠다는 쪽에서 왜 자신에게 불리한 헌정치 게임 방식에 맞추려고 애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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