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팡, 팡, 팡”
케이블 TV에서 ‘2015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인 끝에 조코비치가 작년에 이어 페더러를 누르며 우승을 거머쥔다. 그는 2015년 윔블던 외에도 호주오픈과 US오픈까지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당분간 조코비치의 천하를 깰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코비치는 페더러 앞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존재였다. ‘테니스 황제’ 페더러와 ‘클레이코트의 제왕’ 나달의 철옹성을 넘지 못하고 우승의 문전에서 번번이 밀려났었다. 우리는 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을. 그 종이 한 장을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조코비치는 이를 극복했다. 자신의 단점이었던 서브와 체력을 향상시켰고 그로 인해 2011년 7월에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현재(2015년 12월)까지 줄곧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나는 조코비치를 보며 재능이 있었음에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비운의 천재’들을 생각했다. 스타플레이어라는 생각에 오만방자함으로 팀 분위기를 해치고, 연습시간에 늦게 오고, 코치에게 욕설을 하며 퇴출된 선수도 있었다. 실력만 믿고 까불던 이들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자만’이 아니었을까. 자만으로 찾아온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일은 최근 나에게도 있었다. 

아들이 졸업한 중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우리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이 뮤지컬을 할 예정인데, 행사음향과 조명의 견적서를 보내주실 수 있나요?”
“감사합니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내가 전화 받은 이 학교는 아들이 다녔던 중학교이고 나는 이곳에서 3년 동안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했었다. 내가 이벤트 사업을 한다는 사실을 듣고 담당선생님이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답사를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학교 체육관을 둘러보고 담당자를 만났다. 그런데 좋은 일은 겹쳐 오는가 보다. 담당자는 아들의 2학년 때 담임이었다.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메일로 견적서를 보내주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견적서 잘 받았습니다. 혹시 뮤지컬 경험 있으신가요?”
“경험은 없지만 그동안 학교 행사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원하는 대로 다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옆에 있는 여고 축제도 제가 했는걸요.”
한데 수화기 너머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규정상 다른 업체에서도 견적을 받아야 합니다. 이점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교견적이라니?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행사 추진위원회가 내일 열릴 예정인데요. 회의를 거친 후 업체를 선정할 겁니다. 결정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학교 행사는 많이 해봤지만 뮤지컬 경험은 없었기에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담당선생님과 추진위원 선생님들을 만나서 부탁을 해볼까. 아니다. 괜한 짓 하지 말자. 이건 나에게 올 수밖에 없다. 나는 학교운영위원이였고, 담당선생님은 아들의 2학년 때 담임이었으며, 행정실장은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다른 사람에게 일을 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팔은 안으로 굽는 것처럼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 봐도 이건 무조건 나에게 온다.

하지만 이런 자만이 화근을 불러온다. 다음날 오전에 담당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릴게요. 이번 뮤지컬의 음향과 조명은 다른 업체와 계약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게 뭔 소리란 말인가. 다 잡은 고기를 눈앞에서 놓친 것 같아 분통이 터졌고 그들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행정실장에게 전화해 봤다. 하지만 그는 추진위원회에서 결정된 일이라 번복하기 어렵다는 답변과 함께 이런 말을 했다.
“김 대표님이 어제 회의가 열리기 전에 학교로 찾아와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예요.”

알고 보니 경쟁업체는 견적서는 물론이고 제안서까지 들고 추진위원들을 찾아와 자신의 장점을 말하며 설득했단다. 그의 의연하고 적극적인 설득에 추진위원들은 후한 점수를 주었단다. 하지만 이에 반해 자만에 빠졌던 나는 달랑 견적서 한 장만 보냈으니 말해 뭣하랴. 힘들이지 않았으니 마땅히 돌아올 것도 없었다.

이 후유증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세상 일이 열 가지 모두 나쁜 것이 없는 것처럼 이로 인해 얻은 것도 있었다. 적극적이지 못한 내 성격을 반성했고, 세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더불어 노력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러니 세상은 얼마나 공평한가.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덜 힘든 것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간절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

문득 슈퍼마켓으로 큰돈을 번 선배가 떠오른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그걸 발판으로 성공으로 올라선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슈퍼마켓으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자본금이 부족해 월세가 저렴한 곳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핵심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신라면’처럼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격을 알고 있는 품목은 싸게 팔고 다른 제품에서 이윤을 남기는 식이다. 여기에 ‘할인행사’를 통해 마트를 찾는 고객들에게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심어주었다. 노력은 결실이 되어 돌아왔다. 고객이 많아지며 매출이 쑥쑥 상승했고 그 이윤으로 다른 곳의 슈퍼도 개장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한데 예상치 못한 암초와 만난다. 건물주와의 분쟁이었다. 사실 이건 어찌 보면 근본적인 문제였다. 장사가 잘되자 건물주는 터무니없이 세를 높였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결국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자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된다.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철수한 거다. 그때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것이 아니면 소용이 없겠구나.’

이 생각을 즉각 실행에 옮긴다. 땅을 구입했고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건물을 짓고 대형마트의 문을 열었다. 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성공 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험을 택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결국 1년도 되지 않아 대형 슈퍼마켓은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이를 계기로 다른 건물도 사들이며 대형마트를 개장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세 곳의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성공신화를 쓰고 있다.

절벽 끝에 서있던 그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온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위기는 위험이란 뜻도 있지만 기회란 뜻도 있어. 그 기회는 내가 만드는 거야.”

우리 인생에서 진취적인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이게 과연 될까. 안되면 어쩌지. 도중에 그만두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이런 생각들이 포기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해보지 못한 후회가 남는다. 그때 용기 내어 한 발짝 더 나아갔어야 했는데, 그때 그 사람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때 그걸 선택 했더라면 내 인생이 180도 달라졌을 텐데. 이런 식의 감정이 남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찾아온 기회를 알지 못하는 걸까. 이에 대해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기회는 작업복을 걸치고 찾아온 일감처럼 보이는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놓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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