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알려지지 않은 1심 재판 막전막후

2015년 12월 29일. 이용우 충남 부여군수를 비롯해 부여·청양 군의원들이 이완구(66) 전 국무총리 재판장을 찾았다. 이날은 당초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총리의 결심 공판(7차) 일이었다. 나도 서울 중앙지방법원은 그날 처음 가봤다. 결심 공판 이후 내려질 검찰 구형 취재 차였다.

하지만 이날 오전으로 예정됐던 공판은 오후로 미뤄졌다. 결심공판도 다음 예비기일(8차, 2016년 1월 5일)로 연기됐다. 재판의 쟁점이 됐던 '비타500'박스의 실체를 밝힐만한 증인(경향신문 기자)이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탕을 쳤다는 기분에 탄식할 즈음, 이 전 총리 측의 제안이 들렸다. 부여와 청양에서 새벽걸음 한 이들을 위해 법원 내 커피숍에서 차 한 잔 대접하겠다는 거였다. "기자들까지" 포함하진 않았지만, "와도 된다"는 소리로 들렸다. 이때다 싶어 따라붙었다.

한 달 지켜본 나의 재판 취재기

대략 스무 명의 눈이 그의 눈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지역에서 온 기자는 나를 포함해 단 두 명이었으나, 그는 나를 포함한 2명의 기자한테만 집중하는 듯싶었다. 재판에 넘겨진 뒤 기자를 마주한 게 처음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그는 1시간동안 '울분'을 토해냈다. 마치 인터뷰를 위해 의도적으로 마련한 자리인 양 대놓고 언론에 대한 서운함을 눈물 쏟듯 흘렸다.

"여기 언론인들 계신데, 지금까지 언론과는 일체 접촉을 안했어요. 괜히 불필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국회도 안 나가고, (재판에)객관적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했죠."

준비된 차(茶)가 나왔다. 차는 하나로 통일됐다. 자몽주스였다. 상큼한 신맛과 쌉쌀한 맛으로 처음 먹기에는 익숙지 않았다. 달지 않으면서 신 귤이나 오렌지와는 다른 맛이었다. 자몽(Grapefruite)은 오렌지보다 조금 커다란 나무로 한 가지에 수십 개의 열매가 열리는 모습이 거대한 포도송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8세기 말 서인도제도의 바베이도스섬(Barbados)에서 태어났고, 학명은 '낙원의 귤'이다. 동시에 그것은 욕망의 실체이며, 누군가 먹거나 취하는 걸 금한 '금단(禁斷)의 열매'이기도 하다.

이완구와 비타500, 그리고 자몽주스

그의 입에서 '비타500' 얘기가 불쑥 튀어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자몽주스를 막 한 모금 입에 넣으려는 찰나였다. 그는 비타500 실체에 대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인터넷 조회건수가 70만 건이었어요. 총리 패러디까지 나오고. 이걸 먹으면 기운이 뿅뿅, 총리가 좋아하는 맛, 여러분들 스스로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패러디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봐요. 그 마음은 찢어집니다. 온 매체가 (패러디를)쏟아내는데 변명도 안 되지 누가 했는지도 모르지, 여러분들이 내 심정이 됐다고 생각해봐요."

해가 넘었다. 2016년 1월 5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결심 공판에 경향신문 기자가 출석했다. 검찰과 변호인 간 비타500이 기사에 등장한 이유에 대한 증인신문이 오갔다. 변호인이 이 전 총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현금 3000만원이 든 비타500 상자를 받았다는 걸 누구한테 듣고 쓴 것인지 묻자 해당 기자는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말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가 "그럼 비타500은 취재원으로부터 직접 들은 단어인가, 아니면 여러 사정을 종합해 증인이 판단한 결과인가"라고 다시 묻자 기자는 "내가 만난 사람들 속에서 그런 것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내 판단이 있었다"고 답했다. 오후 공판에서 검찰 구형이 내려졌다. 징역 1년이었다.

1심 선고일, 그의 눈과 입이 닫히다

2016년 1월 29일. 세 번째의 법정 취재는 그의 1심 선고 공판이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재판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의 줄이 1시간 전부터 길게 늘어섰다. 이 전 총리 지지자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법정 문도 닫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됐다.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 전 총리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3000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유죄였다. 재판장이 주문을 읽는 내내 그는 눈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증인 진술이 모두 증거능력에 부합된다는 주문을 받아 적으며 나는 그를 흘끗 쳐다봤다. 무죄를 확신했던 눈과 입,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법정 안은 '타타타탁, 타타타탁' 하는 기자들의 쉼 없는 타이핑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고 있었고, 발 디딜 틈 없이 방청석을 메운 사람들이 내뿜는 숨 탓에 공기는 무겁고 탁했다. 실물 한번 못 본 성 전 회장이 법정 어느 한 귀퉁이에서 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을 법한 느낌에 섬뜩함마저 들었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죽기 전 남긴 인터뷰와 한 장의 쪽지(메모)에 대해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건 수사 시작부터 논란이 됐던 '성완종 리스트' 증거능력을 법원은 모두 인정했다. 재판은 끝났고, 그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미끄러지듯 법정을 빠져나갔다.

'낙원의 귤'과 '금단의 열매' 사이

법정 밖에서 기자들에게 에워싸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항소심에서 다투겠다. 재판부가 검찰 주장을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다 받아들였지만 나는 결백하다. 이 모든 수사 상황을 백서로 만들겠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다투고 입증해 누명을 벗고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15분 가량 답변했다. 곁에 있던 변호사가 그만 끝내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답변을 계속 이어갔다.

나는 생각했다. 비타500이나 노란색 귤 박스 같은 건 그리 중요치 않은 것 같다고. 오히려 판결문 말미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다. 여타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다.

"(중략)..중앙일보는 성완종 사망 이틀 후인 2015년 4월 11일 새벽 2시 30분경에 성완종이 기자회견 직후 지역 인사 2명을 만나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고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하다는 주장을 보도했다. 직후 피고인은 당사자들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성완종이 왜 원망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성완종이 자신을 원망한 이유는 이미 기사에 나와 있다. 피고인 스스로 성완종이 자신을 원망한 사실을 충분히 헤아렸을 수 있었다. 당시 피고인도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됐을 상황이다. 피고인이 그런 의혹에 대해 결백했다면 기사 내용에 별달리 궁금했을 리 없고 새벽부터 수차례 전화하는 과도한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종합할 때 공소사실에 기재된 일시, 장소에서 금품수수가 있었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상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다."

그는 여전히 억울하고 결백하다는 주장이다. 4월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까지 치면서 항소심에 올인할 태세다. 누명을 벗고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불명예 퇴진을 할진 향후 재판을 또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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