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 소통] 방송인

나는 산을 좋아 한다. 이른 아침에 혼자 하는 산행은 더 좋다. 누군가는 혼자 하는 산행은 위험하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결코 새벽 산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참에 나 홀로 산행의 좋은 점을 말해 볼까. 혼자 하는 산행의 좋은 점은 말을 안 해도 되는 거다. 동행이 있을 경우엔 대화를 하지 않으면 화난 것처럼 보여 계속 말을 해야 하지만 혼자라면 이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옆에 아무도 없으니 그만큼 생각할 시간도 많다. 산행을 통해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고 운이 좋으면 글감도 얻을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새벽풍경’이다. 동틀 무렵 산행을 해본 적이 있는가? 밤잠을 자고 난 산을 가장 먼저 만난다는 기쁨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한 폭의 산수화는 보너스다. 땀을 식히기 위해 중턱쯤에 털썩 앉았을 때 운무에 휩싸인 풍경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그런데 얼마 전 대둔산에서 심장 떨리는 일이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나 홀로 새벽 산행이었는데 수락계곡 주차장을 출발해 정상을 찍고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코스였다.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쯤 올라갔을까. 내 앞으로 커다란 동물이 지나갔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만난 짐승. 순간 너무나 놀라 땅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다.

이제껏 산행을 하며 그렇게 무서운 적은 처음이었다. 그 동물도 나를 발견했고 우리 눈이 마주쳤다. 저게 뭐지? 그것은 ‘진돗개’였다. 새벽이슬을 맞아서인지 젖은 털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겁이 덜컥 났다. 이 깊은 산속에 웬 개란 말인가. 가만, 근처에 ‘석천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혹시 그곳에서 키우는 개가 아닐까.

개는 다행히도 나를 위협하지 않았고 나도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기에 서둘러 지나가려 했다. 한데 이상했다. 자리를 비켜주질 않았다. 혹시나 근처에 사람이 있을까 싶어 소리 쳤다.
“여기 누가 없나요? 있으면 대답 좀 해주세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음을 깨달은 나는 개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산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자리를 비켜주면 안 되겠니?”
애원을 하며 살살 달래봤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목소리를 높여 위협했다.
“야, 비켜. 저리 가란 말야.”
격앙된 내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녀석이 멈칫하는 모양새를 취하더니 이내 이빨을 드러냈다.    
“크르릉.”

아이구우, 그렇다면 이 방법도 소용없다.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를 이용해 쫓아 볼까 하다가 난폭해지면 나만 손해일 것 같아 자리를 피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그런데 바닥에 녀석도 앉는다. 뭐야?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다는 의도인가? 깊은 산속에 한쪽은 사람이 앉아있고 다른 쪽을 개가 앉아 있는 형국이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비켜주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
개에게 겉으론 이렇게 소리쳤지만 사실 두려웠다.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위협이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개가 일어났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걸었는데 자리를 피해주면서도 고개를 돌려 나를 봤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산을 올라갔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입사원서를 접수하고 연락을 기다릴 때, 군에 입대한 애인이 제대하기를 기다릴 때, 유학간 아들이 귀국하기를 기다릴 때, 이런 순간에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마음이 답답하고 조급해지더라도 기다려야 할 때라면 몸의 힘을 빼고 숨을 고르며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얼마 전 ‘돛단배 이론’을 들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격한 공감을 했다. 이론의 요지는 이렇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인생의 배를 하나씩 만드는데, 정규교육과정이 끝나면 자신이 만든 배를 사회생활이라는 바다에 띄운단다. 바다에 띄워진 배들은 경험이 없고 견고하지 않은 탓에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오는데, 놀란 배주인 들은 가라앉지 않으려 쉴 새 없이 물을 퍼낸다.

하지만 이 와중에 어떤 사람은 돛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을 퍼내며 돛을 만드니 남보다 두 배, 세 배, 힘들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기회라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돛을 올린 배는 훨씬 빠르고 멀리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야간대학 시절의 ‘장학금’이 생각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나에게 대학은 오를 수 없는 나무였다. 형들은 애당초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싶었던 나는 군 복무를 마친 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공부하며 희망을 키웠다. 당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선택과 집중이었는데 고득점을 위해서는 영어, 수학 대신 암기과목에만 죽어라 매달리는 전략이었다.

한데 내 열정과는 달리 원하는 대학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 재수를 생각했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았고 학원 강사의 권유로 야간 전문대학에 입학한다. 전문대면 어떠랴.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내가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기에 기뻤지만 마냥 좋아 할 순 없었다. 학비 때문이었다. 당시 내 딱한 소식을 들은 공장 사장님은 고맙게도 매달 조금씩 공제한다는 조건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주셨다.

학기 초, 과대표를 뽑는다는 소식이 들렸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과대표에게는 장학금 혜택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다. 이거다, 싶었다. 당장 다음 학기 학비걱정을 하는 내게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대표 선거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나는 이 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다. 창피하게도 3명중에서 3등이었다.

사실 되돌려 곱씹어 보면 나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으니 진정성이 없었고, 게다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반장 한 번 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원하던 장학금도 날아갔다. 패배로 인해 쓰라린 상처를 입었지만 모든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갔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기다리면 기회는 또 찾아 올 거라 생각했고 그때를 기약하기로 마음먹었다.

2학년이 되었고 나는 과대표 선거에 다시 출마한다. 2학년의 과대표는 학회장까지 겸직한 자리였다. 자신 있었다. 1년 전부터 쌓아놓은 신뢰와 친분이 있었기에 누구와 붙더라도 이길 것 같았다. 자신감은 현실이 된다. 80명의 동기들에게 애정 어린 읍소와 부탁을 했고 그들의 지지를 얻으며 과대표에 당선된다. 그로 인해 내가 원했던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으며 졸업할 때가지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운이 좋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얘기하는 그 운이란 것도 실력이고 노력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무술영화나 권투영화에서는 한 번의 대결 위한 주인공의 ‘수련기간’이 있다. 전설속의 고수를 만나거나 전직 챔피언을 찾아가 그들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혹독한지 스승과 제자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불화를 겪지만 마침내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며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이런 수련과정은 영화에서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통과의례’다. 발명가가 실패를 거듭하고, 과학자가 낭패를 겪고, 예술가가 좌절하는 과정이다.

중국의 ‘모소 대나무’는 4년 동안 단 3센티미터 밖에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5년째부터는 하루에 30센티씩 자라며 6주 만에 15미터까지 뻗어 올라간다. 비밀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었다. 4년 동안 땅위로 올라온 것은 단 3센티였지만 땅 아래에서는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거다.

4년의 준비기간이 있어야 15미터를 클 수 있는 모소 대나무처럼 우리에게도 ‘트레이닝기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백수상태가 두렵다는 생각. 나만 뒤쳐졌다는 조바심에 큰일이 난 듯 무언가를 찾아 나서지만 그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막차가 떠났더라도 다시 올 다음 차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마음. 내일 올 첫차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세.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의 시대가 도래할거라는 믿음. 그때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일은 돛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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