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야권 영입대상 0순위, 그의 최종 선택은?

빙그레 이글스 시절 어린이 회원이었던 나는 지금도 이글스 열성팬이다. 반면 정운찬 전 총리는 소문난 두산 팬으로 알려졌다. 오른쪽 사진은 정 전 총리가 지난 2012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홈경기 시구를 하는 모습. (사진출처: 순 스포츠)
#1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그 중에도 한화 이글스의 열성 팬이다. 1999년 한화가 첫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도, 최근 몇 년 간 리그 최하위를 할 때도 나는 이글스 팬이었고, 지금도 보살 팬(꼴찌 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한화 팬들에서 비롯된 말)중 하나다.

내가 이글스 팬이 된 건 30년 전이다. 한화의 전신 빙그레 이글스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86년 3월 대전·충청을 연고로 창단했다. 당시 한국화약에 다니던 고모부 덕분에 ‘성거 촌놈’은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 회원이 됐다. 모자와 점퍼, 가방, 선수단 카탈로그, 사인볼 등을 받은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서 빙그레 이글스 어린이회원은 나뿐이었다. 나는 기념품으로 받은 그것들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착용하고 다녔다.

그때부터 난 주황색 유니폼을 사랑하게 됐다. 중고등학교 때도 공부보다 프로야구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어머니께 야단을 맞은 기억이 숱하다. 청주에서의 대학시절에도 1년에 몇 경기 안하는 이글스 경기를 친구들과 보러가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군대 시절에 맞은 이글스의 첫 우승은 이등병 시절 선임병 몰래 까먹었던 초코파이보다 달콤하고 스릴 넘쳤다.

아내와 연애초기,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손을 잡았던 곳도 이글스 경기를 보러갔던 대전구장이었다. 내 고향 충청도를 연고로 하는 이글스와 야구는 지금도 내 인생의 역사를 함께 써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프로야구가 개막하는 4월을 겨우내 기다리는 ‘야구빠(극성 야구팬)’다.

#2 그도 소문난 야구 광(狂)이다. 공주가 고향인 그는 서울이 연고인 두산 팬이다. 경기중학교 시절 선수로도 뛰었다. 두산 전신은 OB베어스다.

OB베어스는 1984년을 끝으로 연고지를 대전·충청에서 서울로 옮겼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미리 약속된 일이었다. 이에 OB가 대전에 있는 동안에도, 수면 아래서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새로운 팀을 창단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1986년 3월 8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창단행사를 가진 빙그레 이글스 선수단의 카 퍼레이드 모습. (출처: 한국스포츠사진기자회). 30년 뒤인 2016년 2월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린다는 게 흥미롭다.
충청지역 야구팬들을 위해서든, 충청권 아마추어 선수들의 졸업 뒤 진로 때문이든 당장 1985년부터 새로운 충청 팀이 리그에 참가할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 창단한 팀이 빙그레 이글스였으니, 그도 어쩌면 계속 충청도에 살았다면 지금 나와 같은 이글스 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두산 팬이다. 두산 선수들과의 친분도 두텁다. 얼마 전 메이저리그(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진출한 두산 출신 김현수 선수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기도 했다. 야구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야구예찬≫(휴먼큐브, 2013)이란 책도 펴냈을까. 그는 책에서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까지 할 정도로 야구에 무한애정을 갖고 있다.

바로 서울대 총장을 지낸 국무총리 출신 정운찬(68)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가칭) 등 야권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행선지는 택하지 않은 채 숙고 중이다. 그의 선택에 있어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충청도와의 악연일 게다. 그는 총리시절(2009년 9월~2010년 8월) 1년도 다 못 채우고 내려왔다.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지 못한 책임이 결정적인 낙마 이유였다.

당시 MB(이명박)정부는 충청도 출신인 그를 앞세워 노무현 전 대통령시절 약속해 추진 중이던 세종시 건설 방향을 수정할 심산이었다. 충청도 사람을 이용해 충청도를 분노케 했다. 정운찬 본인은 ‘매향노’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충청도민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막아냈고, 그는 강판 당했다.

소문난 야구광 정운찬 전 총리가 3년 전 쓴
#3 프로야구는 정규시즌이 끝난 뒤 스토브리그(stove league)를 치른다. 비시즌 시기에 팀 전력 보강을 위해 선수영입과 연봉협상에 나서는 것을 칭한다. 겨울철 각 구단이 팀 전력 강화를 위해 선수 영입과 연봉협상에 나서는 시기 팬들이 난로(stove) 주위에 모여 선수 소식 등을 이야기하면서 흥분하는 모습이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것 같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용어해설 참조)

이 기간에 다른 팀에서 지난 시즌 성적이 좋았거나 즉시 전력 감의 선수를 데려온다. 보유하던 선수를 내주기도 한다. 소위 ‘잘 나가는’ 선수를 영입하려면 수십억 대의 몸값(연봉)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각 구단은 영입에 공을 들인다. 이유는 돈 아깝지 않을 만큼 성적을 낼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입한 선수는 성공과 실패할 확률이 절반씩이다. 성공한다면 팀 성적과 순위를 향상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팬들로부터 ‘먹튀(먹고 튀다)’라고 비아냥만 듣는다. 비싼 값에 선수를 데려온 구단을 향한 팬들의 원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4 야권에서 누가 정운찬을 영입할 진 아직 모른다. 정운찬 역시 어느 팀을 택할지 모른다. 야구로 치면 지금 정치권은 스토브리그 기간이다. 야구는 이 기간 선수 영입을 잘못하게 되면 1년 농사를 망친다. 그러나 정치는 지금 선수 영입에 실패하면 4년(국회의원 임기)동안 다수당에 질질 끌려 다녀야 한다.

잘하는 선수 한명 데려온다고 꼴찌 팀이나 신생팀이 당장 우승 후보가 될 순 없다. 야구는 기존 선수들과 팀 전술에 잘 적응해 응집력을 내야 하는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믿고 쓴 선수가 점수를 올려야 할 때 삼진이나 병살타를 친다면 팀 사기는 곤두박질친다.

정운찬을 영입하려는 구단은 그를 적어도 사령탑(감독)으로 앉히기 위함이다. 감독의 지휘봉이 약하거나 선수가 감독의 전술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팀은 절대 강팀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팬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팀은 팀으로서 생명력을 잃게 된다. 야구나 정치나 공통점이라면 ‘팬(유권자)’들을 위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운찬이 어느 팀(당)의 중심을 맡든 당장은 충청도 팬(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긴 어려워 보인다. 아무리 공들여 영입한 선수나 감독이라도 ‘사람 마음’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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