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남도 부여군 부군수

길 잃은 나그네의 나침반이냐 / 항구 잃은 연락선의 고동이더냐 / 해지는 영마루 홀로섰는 이정표 / 고향 길 타향 길을 손짓해 주네 (1절)

바람찬 십자로의 신호등이냐 / 정처 없는 나그네의 주마등이냐 / 버들잎 떨어지는 삼거리의 이정표 / 타 고향 가는 길손 울려만 주네 (2절)

저음 가수 남일해 씨가 부른 대중가요 가사다
. 이정표가 갈 길을 몰라 하는 나그네에게 방향을 가리켜 준다는 내용이다. 이정표는 도로상이나 등산길·관광지 등에서 가고자 하는 거리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다. 가보지 않은 지방에 가거나, 가까운 곳은 물론 먼 지역의 산을 등산할 때도 이정표를 만나면 반갑다.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도 알 수 있고, 거리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길 물어볼 사람도 집도 없는 암담한 경우를 당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이정표의 고마움을 알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동차로 여행할 때 네비게이션이 있어 전혀 불편이 없다고도 하지만, 이정표에 전혀 의지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네비게이션은 목적지 자료를 정확히 입력하지 않거나, 제 때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을 경우, 목적지와 동떨어진 곳으로 안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정표도 마찬가지다. 이정표의 방향이 잘못 틀어져 있거나 거리 표시가 잘못 되어 있으면 초행길의 사람들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물론 아주 익숙한 길이거나, 자주 찾는 산길이라면 이정표가 있던 없던 크게 불편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도 가보지 않은 길이거나, 처음 가보는 산행 길에 이정표가 없다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요즈음은 도시 주변의 산도 여러 갈래 길이 많고, 숲이 우거져 있어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설령 작은 산에서 길을 잃었다 한들 조난을 당할 일이야 없겠지만, 각자 출발해 정해진 시간에 일정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산행을 마치고 특정 장소에 다시 모이기로 한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도솔산 산행 중에 길을 묻는 사람을 종종 만난 경우가 있다.

간혹 타 시·도의 산악회에서 버스로 대전을 찾아와 일정 시간 내에 산행을 마치려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런 경우에도 산행의 방향과 거리를 바로 알게 해 소기의 목적을 잘 마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정표다.

그런데, 지금 대전 서구의 도솔산에는 이정표가 없다. 여러 곳을 가리키는 방향 표지판 없이 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다. 애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해 12월경에 갈림길 곳곳의 이정표들을 서구청에서 새로 교체해 세웠다. 이를 보고 산행하는 사람끼리 “아직 쓸만한데 바꾸면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의견과, “산뜻하게 새로 세우니 좋다”는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그러던 작년 연말쯤 어느 날, 산행하는 일행 중 한 분이 이정표의 거리 표시 오류를 발견했다. 내원사에서 갑천으로 가는 낮은 고개를 넘자마자 삼거리에 서있는 이정표부터 이상했던 것이다. 이 곳에서 비탈길을 내려가면 갑천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꺾어 들면 해선삼거리와 가새바위를 거쳐 도솔봉 정상에 이르는 길이다.

그런데 뒤쪽으로 가까이 있는 도솔정은 거리가 멀리 표시돼 있고, 먼 거리의 도솔봉은 가까이 표시 돼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도솔봉 쪽으로 갈수록 거리가 짧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멀리 표시돼 있고, 멀어져야할 도솔정까지의 거리는 더 가깝게 표시돼 있었다.

마침내 도솔봉에 다다른 우리 일행 중 나이 지긋하신 공직 선배 한 분이 손수 구청에 전화를 해, 오류 내용을 설명하고 “바로 잡아 달라”고 했다. 공직 선배는 “지리를 잘 아는 우리야 큰 상관이 없지만, 외지인들은 불편할 것이고, 세금을 내는 주민과의 신뢰 차원에서도 고쳐야 한다”고 해서 모두가 공감했다.

그런데도 한동안 고쳐지지 않은 상태로 있더니, 어느 날부터인지 거리 표시가 잘못된 이정표 뿐 아니라, 도솔산 갈림길 곳곳의 모든 이정표들이 방향표시판을 잃고 몸통만 덜렁 서 있다. 이정표가 팔을 잃어 손짓을 하지 못하고 있다. 거리는 고사하고 이제 방향까지 모르게 됐다.

이정표 방향표지판을 그대로 둔 채 잘못된 부분만 바로 잡아 표기해도 될 것을 왜 다른 곳의 이정표 방향표지판까지 모두 철거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더 정확하고 더 보기 좋은 이정표를 세우려는 구청의 배려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봄도 머지않았는데, 도솔산을 사랑하는 서구의 주민들과 대전시민들을 비롯해 외지 산행인들을 위한 더 좋은 이정표를 새로 세워야 할 것이다. 서구청의 조속한 조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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