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지금은 ‘연합’ 춘추전국시대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을 건 무리들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요구하며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효녀’라는 이름을 단 의문의 청년들. 피켓이 담은 문구는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24주년 정기 수요집회’ 이후, 청년예술가 홍승희씨에 의해 개설된 ‘대한민국효녀연합’ 페이지가 개설 이틀 만에 1만 건이 넘는 ‘좋아요’를 기록했다. 동료 연합으로 효자연합과 누나연합, 아빠연합, 할머니연합 등 비슷한 형태의 비공식연합들이 계속 등장, 여기에 ‘커피는 팔아도 나라는 팔지 않겠다’는 웃지 못 할 커피연합까지 가세했다. 바야흐로, 연합 춘추전국시대다.

‘헬(Hell)조선’과 ‘흙수저’. 절망과 상실의 신조어로 물들었던 작년 한해, 역사상 가장 우울한 청년세대의 삶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해결책과 전망, 믿을 만한 어른마저 부재한 현실에서 헬조선 담론이 부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으로 ‘희망’이다.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묵묵히 발버둥 쳤던 십 수 년. 청년들은 드디어 이 사회의 진짜 벽에 직면했고, 비로소 깨달았다. ‘아, 답이 없다(NO답)’.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Freud)에 의하면, 상실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는 두 가지로 나뉜다. ‘애도’와 ‘멜랑콜리(우울)’. 사실 멜랑콜리는 미완성된 애도라고 볼 수 있지만, 특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끔찍한 자기비하다. 제 값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서 오는 불만과 억울함이 자기징벌이라는 ‘우울(증)’에 기대 나타나는 것.

반면 애도는 상실을 통해 자아인식을 내면화하고, 자기보존의 법칙에 따라 또 다른 객체로 사랑을 이동시키는 행위다. 상실에서 새로운 사랑으로 건너가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의 다음 단계는 애도일까, 멜랑콜리일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공식을 깨고 있는 일부 기성세대들에게, ‘너희들이 전쟁을 아느냐’고 묻는 시대의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그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피켓, 꽃 한 송이씩 들고 공존을 모색하자는 선언, 비공식연합들의 탄생. 비로소 건강한 애도의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까?

다행이 한국 청년들은 세계 어느 청년들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청년예술가 홍승희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역사를 지키지 않는 정권이 미래세대인 우리 청년들의 삶을 어떻게 지키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국청년들은 현실 참여가 두려운 사회 구조 속에서 위축돼 있지만, 사회 전체의 상식이 복원돼야 각자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청년들은 이제 가장 비상식적인 곳에서부터 연대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생들이 소녀상 옆에서 릴레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 측은 인근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와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로 규정해 대학생 9명에게 소환장을 보냈고, 밤샘농성을 위해 준비한 침낭은 미신고 물품이라는 이유로 반입이 금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 이모 등 그들을 응원하는 기성세대의 비공식연합들이 우후죽순 고개를 내민다. 돌아보면, 그들도 언젠가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조만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어딘가에서 일어날 연합들의 ‘대 가족 상봉’. 대한민국이라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청년들이 일으킬 ‘애도’의 물결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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