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안희정 지사의 한가한 ‘공부 출장’

김학용 주필
안희정 지사는 연초 도공무원 10여 명과 함께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라는 라스베이거스 ‘CES 2016’으로 달려갔다. 이번 출장은 기본 컨셉이 ‘학습’이었다고 한다. 물론 건성건성 둘러보는 견학이 아니었다. 박람회의 규모가 방대해서 두 팀으로 나눠 꼼꼼히 정보를 챙겼다고 한다. 안 지사도 자신도 열심히 현장을 누볐다. 그는 많이 걸어 다녀도 힘들지 않도록 일반 참관객들처럼 등에 백팩을 메고 편한 신발을 신었다.

백펙 메고 라스베이거스 CES 현장 누빈 도지사

안 지사는 글로벌 정보를 얻고 견문을 넓히는 ‘공부 출장’이 많은 편이다. 따라서 출장을 다녀와도 성과를 자랑하는 홍보자료는 없다. 보통의 시도지사들은 해외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출장의 성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낸다. 만일 성과가 불투명한 출장이라면 공무원들이 사전 작업으로 ‘성과 있는 출장’으로 만들어낸 뒤 떠난다. 

안 지사의 출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 MOU 실적이 없고 해외방문의 결과가 없더라도 ‘공부 거리’가 될 만한 기회가 있으면 떠나면 된다. 당진-평택 도계분쟁으로 당진군민들이 삭발투쟁을 벌일 때 떠났던 지난해 유럽 출장도 이와 비슷했다. 어떤 언론은 그 출장을 ‘안희정 지사의 해양 물류 집중학습’으로 표현했다.

안 지사의 해외출장은 이전의 심대평 이완구 지사 때는 거의 없던 방식이다. 과거엔 시도지사들도 해외출장엔 시도민들의 눈치를 봤다. 너무 자주 나가면 뒷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런 눈치를 보는 시도지사는 거의 없다. 안 지사는 ‘공부 출장’까지 잦아지면서 해외출장이 많아졌다. 2~3개월에 한번은 나가는 것 같다.

도지사가 열심히 공부하는 건 박수 받을 일이다. 문제는 공부의 목적이다. 안 지사는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매일경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업이 빠르게 바뀌면서 법과 제도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혁신의 현장인 CES에서 산업의 미래를 보고 이들의 변화를 행정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습니다.”

안 지사는 “자율 주행차가 사고 나면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이 자동차 회사일지 아니면 차 주인일지에 대한 것은 미국에서도 큰 논란거리다. 행정기관이 산업의 변화에 끌려 다니지 않고 앞장서서 이런 문제를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법대교수나 중앙관료 같은 답변이 나오는 도지사

답변자가 누군지를 모르고 듣는다면 법대교수나 중앙부처 법제처 관계자의 말로 들릴 만하다. 충남도지사니까 충남도만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 누군가는 고민해 할 문제고, 도지사도 나라를 함께 이끌고 가는 국가의 지도자다. 그래도 도지사 입에서 도정보다 국정을 걱정하는 말이 튀어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안 지사의 잦은 ‘공부 출장’은 그가 대권 후보 반열에 올라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대권예비후보 여론조사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차기 혹은 차자기 주자군에 포함돼 있다. 자신도 스스로를 불펜투수에 비유하며 대권 도전의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은 수능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대권 도전을 앞둔 후보자는 대권 공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대권후보라면 국민들이 물어볼 수 있는 예상 질문에 미리미리 답안을 준비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안 지사 해외 출장의 상당수는 이에 대비하는 공부가 목적 같다. 그렇지 않고선 한가한 ‘공부 출장’이 그리 잦을 수 없다.

사무관 승진 후보자의 독서실 공부와 잠룡 도지사의 공부법

‘도덕적이지 못한 공부법’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땐 6급 공무원이 사무관으로 승진하려면 시험을 봤다. 승진 후보자들은 업무보다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사무실 대신 독서실로 출근했다. 부서 직원들에겐 피해를 주는 일이지만 그들은 동료의 승진을 위해 기꺼이 협조해주었다. 한편 아름다운 풍속이었으나, 공무원이 독서실로 출근하고 월급을 받는 건 분명 문제였고 논란도 많았다. 안 지사의 학습법에도 그런 문제가 있다. 안 지사는 6급 공무원이 아니라 한 도(道)의 수장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라스베이거스 박람회엔 권영진 대구시장도 관람했다. 대구시는 지난달 중앙정부로부터 자율주행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 기반 웰니스산업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지정받았다. 시장은 물론이고 시 차원에서 이 분야를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대구는 공무원과 지역기업체가 함께 방문하여 IT기술의 글로벌 트렌드를 살피며 비즈니스 상담도 했다.

그러나 충남은 오로지 공부가 출장의 목적이었다. 충남도는 “안 지사가 포함된 1팀은 스마트망으로 연결된 차량 콘퍼런스에 참가해 충남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기업유치 MOU까지 가져 와도 휴지조각이 되기 십상인데 순전히 공부를 위한 해외출장이라면 효용성이 어떨지는 건 불문가지다. 출장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해외출장이 괜찮은가?

대권 후보라면 ‘지식’보다 ‘경험’ 더 쌓는 게 공부

도정에는 몰라도 대권 예비후보 안 지사 자신에겐 꽤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권후보로선 산업기술의 세계적 흐름을 현장에서 파악할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다. 나중 안 지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관련 정책이나 법체계를 정비하는 데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대권 후보 안 지사가 아니라 충남 도정이다. 도지사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면 도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취임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안 지사의 실적 논란도 가장 큰 원인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는 도지사 자리에 앉아서 ‘불펜 피칭’만 하고 있는 사람 같다. 이번 ‘공부 출장’은 그 일부분일 뿐이다. 충남도 공무원 중엔 충남도가 도지사의 대선캠프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안 지사의 ‘공부법’은 달라져야 한다. 그는 대선후보로서 갖춰야 할 지식을 얻는 데만 힘을 쏟는 것 같다.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는 것도 나라를 경영할 지도자로서 견문을 넓히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지식보다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정치인에게 가장 큰 공부는 지식보다 경험이다. 도지사 역할을 제대로 해서 성공한 경험을 가져야 한다.

해외출장은 누구라도 경험이 가능하지만 도지사를 해보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안 지사는 소중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안 지사는 8년 임기 내내 공부만 하고 도정에 대해선 계획만 세우다 끝날 것인가? “성과주의에 빠지지 말자” 말은 대개 무능한 자의 변명이다. ‘사무관 후보자의 독서실 공부’ 같은, 도정에 대한 자세부터 바꿔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