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식의 이슈토론]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2016년 원숭이띠 새해. 개인, 기업, 자치단체, 정부 등 올해의 가치와 목표 등을 설정하고 수립할 시기다. 디트뉴스24는 신천식 박사의 이슈토론이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올해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저명한 교수를 초빙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인공은 서울대 명예교수인 손봉호 교수.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손 교수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대학원 신학 석사,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대학원 철학 석·박사를 마쳤다.

그는 환경, 교육, 복지 등 사회 다방면에서 시민운동을 이끌어 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비롯해 전국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철학회 회장, 동덕여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손 교수는 2011년 나눔국민운동본부를 설립해 우리나라 기부 문화 조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현재는 이 운동본부의 이사장을 비롯해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장, 푸른아시아 이사장, 샘물호스피스교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시민운동과 복지운동을 이끌고 있는 그를 신천식 박사가 올해 첫 출연자로 섭외, 행복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신천식 박사와 손봉호 교수와의 일문일답.

신 : 손 교수는 소개가 필요 없는 저명인사 중 한 사람인데, 국내 뿐 아니라 국제 운동도 하고 있다. 예컨대 기아대책 이사장 같은 경우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손 : 상당히 큰 단체다. 미국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어로는 ‘Food For The Hungry(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라는 모토를 내걸고 굶는 사람들을 먹이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다른 단체와 다른 점은 상당히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기아, 복음도 같이 제공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활동한다. 감사하게도 한국기아대책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신 : 기아대책이라고 하면 북한을 빼놓을 수 없는데, 북한도 대상에 포함되나.

손 : 그렇다. 꽤 많이 해왔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만, 진행하다 중단된 사업도 있다. 북한도 우리의 중요한 활동 대상이다.

신 : 몽고의 사막화가 한국의 황사현상과도 관계가 있다는 얘기들을 한다. 몽고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손 : 우리나라에 오는 황사의 절반이 몽고에서 온다. 중국은 어느 정도 자체 능력으로 나무를 심고 있으나 몽고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다. 우리가 5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성과도 많이 거뒀다. 몽고 정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사막화 방지에 대한 우리의 모델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작년에 UN으로부터 상도 받았다. 올해부턴 미얀마에도 나무를 심는 활동을 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 ‘푸른 아시아’다.

신 :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에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진단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사회의 큰 문제점이나 병폐는 무언가.

손 : 나는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 근본을 따지게 되나,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지향점이 행복 아니겠나. 행복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 굶지 않아야 한다. 병이 들지 않아야 한다. 그에 관해 지난 60년간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굶는 문제, 기본적인 건강 정도는 유지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행하다. 인간관계가 불안하기에 그렇고, 사회가 정상적이지 못하기에 그렇다. 사회에선 경제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갈등을 줄이고, 인간관계를 보다 원만하게 해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해서 상당히 성공했지만 남는 후유증이 경쟁이다. 모든 사람들을 다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서로 돌보고 배려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관계가 너무 살벌하다. 조화, 협동, 배려 쪽으로 관심을 써야한다.

신 : 개인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한정돼 있거나 무시되기도 한다. 결국 어떤 시스템이나 제도 속에서도 사람이 주체가 돼야 하는 것 같다.

손 : 그렇다. 현대사회가 워낙 유기적으로 조직돼 있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개인의 역할이 줄어드는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사회를 바꾸고 제도를 바꾼 건 개인이다. 개인이 힘을 합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세력을 통해 제도나 법도 바꾼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 좀 지나치겠지만 개인이 힘을 합쳐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체제 자체가 스스로 바뀌지는 않는다.

신 : 한국 사회는 최하위였던 산업화 단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피를 흘린 민주화투쟁도 있었다. 지금은 시민사회로 정의내리기도 한다. 시민들이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는 물론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간다는 전제가 있어야 시민사회로 진입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아직은 그 단계까지 못간 건 아닌지.

손 : 그렇다. 민주주의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가 빨리 시민사회로 진입한 건 사실이다. 물론 우리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작용했다. 3·1운동이나 독재에 대한 항거, 한국인이 개인이면서도 개인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바쳐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그런 정신은 세계에서도 아주 뛰어나다. 그게 바로 시민사회의 특징인데, 최근 불행하게도 시민사회가 너무 양극화 되고 그에 따라 시민도 양극화 되면서 정치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지 않고 시민들이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감시하고, 감독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심지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서 한다는 점에서는 ‘한국이 상당히 모범적인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다.

신 : 현대사회의 특징 중에 하나가 흑백논리가 너무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예’ 아니면 ‘노우’, ‘긍정’ 아니면 ‘부정’이다. 이런 식의 이분법에 따르는 갈등과 대립구조의 심화가 문제다. 빈부 갈등이 심각한 문제이고, 지역간 갈등도 대두되고 있으며, 남북관계도 대립구조가 아닌 같은 민족으로서 화합하고 공존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 우리가 상대를 적이나 경쟁자로 치부하는 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나.

손 : 사실 흑백논리는 상당히 유치한 표현 중 하나다.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면 항상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이 서로 싸우는데, 그런 건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의 논리가 주로 이분법이니까 그렇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씩 인식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린 그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적한 세 가지 가운데 그래도 지역갈등만큼은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고 본다. 앞으로도 줄어들 거다. 지역 중심의 정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인구 이동도 많아졌고 대중매체의 발달로 지역적 특색이 상당히 사라졌다. 그래서 지역갈등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다.

가장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 빈부 격차다. 옛날에는 가난한 것이 자신의 잘못일 수도 있고 운명적인 이유로 감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에는 가난하게 되는 사람들은 주로 사회 때문에 그렇다. 사회와 더불어 혜택을 본 사람은 사회 때문에 가난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데, 이건 마치 잘 된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 된 줄 알고 가난한 사람은 사회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는 양쪽이 다 사회 때문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조금 양보하고 정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정책을 세울 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동의를 해줘야 할 텐데, 아직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북한도 그렇다. 북한이 우리에게 상당한 위협이 됐을 때는 어느 정도 미워하는 게 이해되나, 지금은 또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조금 껴안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북한이 유치한 행동을 할 때도 ‘그 사회에서 어쩔 수 없었겠지’라며 포용해줄 줄 알아야하는데, 지금은 정부조차도 그걸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지성인들이 이런 일에 앞장서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신 : 차이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고 불신하는 풍조는 남북관계 뿐 아니라 한일관계도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일본은 가까운 이웃일 수 있는데,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관계가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최근 소녀상 문제도 예스냐 노우냐 해석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 지도층이 화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하지 않나.

손 : 객관적으로 보면 물론 일본이 잘못했다. 그러나 계속 피해의식에서 행동하고 평가하고 산다는 건 약자이론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것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자가 용서하는 거다. 계속 과거에 받은 피해에 대해 원통해하고 분해하는 건 사실 우리 정도 수준의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용서하는 자가 강한 거다. 오히려 아베 총리가 굉장히 손해를 많이 봤다고 본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많이 당했다. 전 세계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등 아베 총리가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이제는 우리가 대등하다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소녀상도 그렇다. 정부가 물리적 힘으로 제거하는 건 어렵지 않겠나.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만하자’며 관심을 쓰지 않도록 성숙해 져야지, 소녀상 철거하자는 건 문제가 될 것 같다. ‘과거에 우리가 저랬구나, 그 때는 약해서 당했구나’라는 걸 교훈 삼아 한걸음 나아가 ‘우리는 다른 약한 민족에게 그런 짓을 안해야지’ 정도로 성숙해져야 우리가 진정 독립된 국가가 된다.

신 : 철학을 전공했고 오랜 시간 후학들을 양성해 왔다. 평소 ‘약자 중심의 윤리’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무슨 의미인가.

손 : 과거의 어떤 행동이 반복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윤리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건 윤리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건 자선이나 사랑이다. 윤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강자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대게 약자들이다. 윤리 자체가 약자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신 : 윤리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 같은 건가.

손 : 그렇다.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제도가 세 가지가 있다. 제일 강한 것이 ‘법’이다. 가장 약한 것이 ‘예의’고, 중간에 있는 것이 ‘윤리’다. 예의와 윤리는 자발적이고, 법은 강제적이다. 법도 따지고 보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거다. 강자는 법이 없어도 얼마든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토마스 홉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인간은 늑대다. 만약 정부라는 것이 없으면 약육강식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 정부나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약육강식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약육강식의 상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윤리다. 윤리라는 것 자체가 약자 중심이라고 본다. 약자 중심의 윤리를 따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하는 거다.

신 : 공동체의식과 윤리를 비교한다면. 

손 : 공동체의식도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개인주의가 생겨나기 이전의 공동체의식, 그것은 원시적인 공동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 : 일종의 공산사회라고 보면 되나.

손 : 그렇다. 무의식적으로 일체감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상태로는 안 된다. 개인주의 상태가 지나간 이후의 공동체의식은 서로가 보호하고 돌보고 결국 ‘나도 행복해지겠구나’라는 의식에서 생겨난 것이 공동체의식이다. 같은 민족이니까 사랑하자는 말은 더 이상 힘이 없다. 나는 조금 냉정하게 ‘합리적 이기주의자’가 되자는 말을 한다. 다른 사람을 돌봐야 나도 덕을 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해를 끼치면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나. 서로 보복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더 약한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줘서 공동체의식을 유지하자고 하는 거다. 정의라는 게 별 게 있나. 약한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 것이 정의 아닌가. 우리 사회가 좀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신 : 시민사회의 주체인 시민과 시민의식이란 무언가.

손 : 시민이란 단어가 생긴 것이 12~13세기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다. 농노들이 영주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때다. 그 때 콤퍼스(나침반)가 중국에서 도입되고 화약이 도입됐다. 나침반으로 무역이 발달했고, 농노의 일부가 돈을 많이 벌게 됐다. 그러다보니 조공 대신 돈을 줄 테니까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고 한 거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사니까 돈이 많아졌다. 그 다음에 과거 창과 칼로 기사들이 치안을 유지했었는데, 화약과 함께 총이 나오면서 기사들의 힘이 약해졌다. 사람들은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시민이라는 말이 생겼다. 상당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을 시민(시티즌)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신 : 국가의 존재와 시민사회와의 관계는.

손 : 국가는 법에 따라 공익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권한이 없다. 보상도 못 받는고, 세금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다. 자발적으로 사적인 개인이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합치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상당히 발전된 사회다. 일본 같은 사회는 상당히 뒤져있다. 모든 걸 국가가 다 한다. 우리나라는 시민사회가 활발해서 국가가 할 일을 대신한다. 오늘날 국가라는 것이 너무 복잡해서 일일이 공무원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의식이 깨어있는 시민들이 언론과 힘을 합쳐 계속 감시해야 한다. 국가권력은 감시하지 않으면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다. 시민사회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통합해서 국가정책에 반영하는 역할도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

신 : 시민운동 자체에도 변화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닌가.

손 : ‘모든 힘은 부패한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니까 부패하는 거다.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운동이 필요한 정도가 되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에서 시민사회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강조한 것이 ‘방해도 하지 말고, 돕지도 마시오’였다. 시민운동은 그대로 둬야지 도와줘도 타락하고 망해도 안 된다. 감사하게도 김영삼 대통령은 그것을 유지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때 시민운동을 도와준다고 할 때 내가 반대했다. ‘비록 힘들지만 버텨나가야지 재정적인 도움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재정적 도움이 들어가니까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정치세력과 결탁이 됐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의 신임을 못 받았고, 제대로 된 시민단체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신 : 정치 권력과 시민운동과의 관계는 어떤가.

손 : 나는 ‘시민운동 하는 사람은 정치권에 들어가지 말자’고 줄기차게 얘기했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그런 주의가 필요하다. 정치는 개인이 희생을 하면서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권력을 탐하고 권력을 이용해 자기 명예와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민운동 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간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그렇게 미안해 한다.(웃음)

신 : 최근 삼포, 오포, 칠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청년들이 취업도 안 되고, 결혼도 못하고, 연예도 못하면서 ‘나약하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손 교수 자녀들의 경우 혼인할 때 혼수 문제를 대해 어떻게 해결했나.

손 : 두 번째 질문부터 먼저 답하면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데, 아들 결혼식 때 청첩장을 일체 보내지 않고 사촌 이내로 (제안하고), 축의금도 일체 받지 않았다. 혼수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데, 대전 분인 사돈이 동의해 주셨다.(웃음) 친구들이 욕도 많이 했다. 나는 호화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반대를 많이 해왔다.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조금 검소하게 사는 것이 약한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고 본다.

또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게 포기하는 젊은이들이다. 우리 사회는 서양처럼 계급이 형성되면 안 된다. 다행히 해방 이후 토지개혁을 통해 계급이 없어졌다. 그런데 요즘 ‘삼포’,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 계급론’이 나오는 것 보니 겁이 덜컥 난다. 우리나라도 계급이 형성되고 있는 것 아닌가. 모두가 걱정해야 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이런 주장 좀 하고 싶다. ‘자존심 좀 가져라’라고. 자존심 갖고 끈질기게 달려들어야 한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사람 좀 도와보자는 생각으로 젊은이들이 나서줬으면 좋겠다. 가진 것을 갖고 으스대면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는 않고 질투한다. 진정 존경받고 사랑받으려면 내가 가진 특권을 갖고 어떻게 하면 더 약한 사람을 도울까 하는 생각을 하면 존경도 받고 훨씬 보람된 삶이 되지 않겠나.

신 : 천민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런 병폐가 국가나 사회에 암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 좀 해 달라.

손 : 돈을 가진 것이 자기가 잘나서 번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가령 어떤 기업이 돈을 번다고 하면 그렇지 않나. 도로를 어디 자기 돈으로 닦았나.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닦은 거다. 그 도로를 이용해서 자기들이 돈을 번 것이다. 자기들이 세금 내는 거 아니냐고 말해도, 사실 세금을 충분히 내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속세를 적게 내더라도 기부를 많이 해서 사실상 세습이 이뤄지지 않도록 돼 있다. 자기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부자가 됐으면 모르지만 부모님 덕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 안 된다.

신 :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 신앙도 갖고 있다.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이라는 활동 자체가 기독교 내부의 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

손 : 기독교도 사회의 부정적인 것을 극복하고 경쟁보다는 사랑, 지배보다는 봉사를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만드는데 기독교가 과거에는 공헌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회 세력이 커졌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했다. 사랑, 희생, 봉사보다는 돈, 명예, 권력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사회도덕적 권위를 상실했다. 그래서 내가 ‘우리부터 먼저 도덕적 권위를 세우자, 사회가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하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를 군림하고 지배하는 세력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이 두 가지인데, 첫째는 ‘정직’이고 둘째는 ‘검소’다. 검소와 절제가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의 모토다. 요즘은 ‘자발적 불편운동’, 즉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스스로 좀 불편하게 살자는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신 : 사례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나.

손 : 아주 간단하다.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가 걸어가자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 불편하게 살고 다른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살자는 거다. 작은 것이지만 그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삶 전체에 그런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신 : 샘물호스피스나 나눔국민운동본부는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

손 :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들이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통증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 받고 떠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23년 전에 시작했다. 지금은 병상이 100개 넘게 되는 기관으로 자랐다. 

신 : 실제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건가.

손 : 그렇다. 영리 목적이 아니고, 고생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순간만이라도 사랑받고 존중받고 떠날 수 있게 모시자는 목적이다. 지금껏 감사하게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나눔국민운동본부는 3~4년 정도 됐는데, 사회에서 뒤떨어진 기부문화를 활성화하자는 목적에서 시작했다.

신 : 가정은 돌보지 않고 바깥 일만 신경쓴다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손 : 감사하게도 우리 가족들이 잘 협조해줬다. 아이들도, 아내도 감사하게 동의를 했다. 예컨대 우리 집에는 부엌의 난방을 다 꺼버렸다. 춥게 산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자동차도 우리가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 아내도 적극 협조해서 별 문제 없다.

신 : 좌우명이 있다면.

손 : 의식적으로 어떤 좌우명을 정하거나 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실천하는 것은 가능한 한 ‘공정하자’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도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다른 사람들이 늘 쳐다보고 있으니까 가장 중요한 게 공정성이다. 다른 하나는 투명하고 정직하려고 노력한다. 

신 : 대전·충청 지역민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손 : 대전·충청지역이 영남이나 호남보다 훨씬 우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쪽은 돈과 권력을 지나치게 추구한다. 그건 고상하지 못하다. 대전·충청은 전통을 잘 유지해서 그런지 점잖은 편이다. 악한 사람에게 벌을 많이 주고, 불쌍한 사람을 돕고 의젓하게 행동하는 것이 점잖은 것 아닌가. 대전·충청지역이 도덕적으로 훨씬 우수하고 다른 사람을 훨씬 배려함으로써 존경을 받는 지역이 되는 게 멀리 내다보면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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