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경력단절, 여성만의 문제 아니다

‘여성’의 이름으로 감내하는 ‘포기’
‘세종시’ 함축하는 한 폭의 자화상

취재차 방문한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사례 발표’ 현장, 맨 앞줄에 젊은 여성이 앉았다. 품안에는 두 살배기 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 서른 살, 재취업을 시작하는 어린 ‘경단녀’, 전에는 건축 설계 일을 하던 나름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전문직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만큼 경력을 살린 재취업을 원하는지 물었다. 뜻밖에도 “아니오”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전에 해왔던 설계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그 일을 구할 수 없을 뿐더러 육아 병행을 위해서는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대답이었다. 보통은 대형마트, 운이 좋으면 교육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는 게 시간제 일자리의 현실이라고도 덧붙였다.

나이가 어리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40대 후반이라는 여성은 결국 취업이 안 돼 창업으로 길을 틀었다. 조리사든 청소원이든, 공공기관이든 일반기업이든 한 살이라도 젊은 여성을 원한다는 게 그 이유다.

우리가 겪는 ‘포기’는 유형이 있다. 다른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하는 포기와 능력부족을 인정함으로써 발생하는 포기. 무엇보다 가장 힘든 포기는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외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포기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하는 포기, 이것이 경력단절여성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무엇보다 답답한 건 세종시 경력단절여성 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력단절여성 수는 얼마나 되고, 그들은 무슨 이유로 경력이 단절됐으며 연령대는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 기혼여성 대비 경력 단절여성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이것도 출범 4년차를 향해가는 신생도시가 겪어야 할 당연한 불편인가? 여러모로 ‘특수한’ 도시에서 실태조사 없는 일자리정책이 어떤 의미가 있고, 남들 다 하는 정책이 세종시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이다.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에는 세종시가 해결해야 할 모든 숙제가 내재돼 있다. 실타래처럼 얽힌 이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과정은 세종시 전체를 풀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계부처와 기관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서야 옳다. 세종시에 딱 맞는 유효한 정책들을 펴나가야 한다.

다행이도 올해 세종시는 경력단절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연구 사업을 진행했다. 일자리정책과는 연구 결과가 정리되는대로 경력단절여성의 취업 미스매치 현황을 파악할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경력단절여성은 줄어드는 추세다. 마냥 좋은 일이 아니다. 핵심은 결혼과 임신을 포기하는 여성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력단절을 피해 결혼도, 출산도 늦춰야만 하는 사회. 멀쩡히 결혼하고, 멀쩡히 아이를 낳아 키우고, 멀쩡히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현실은 ‘젊은 도시’ 세종에 다가올 미래를 걱정케 하는 대목이다.

어디까지나 답은 우리 안에 있다. 정부도, 시도 부디 세종시 경력단절여성 문제를 단지 여성문제로 국한시키지 말기를 당부한다. 엉킨 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들의 가정, 세종시, 나아가 이 사회의 자화상에 봉착하게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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