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평화‧여성‧인권 강조하며 내포신도시 "목표 아냐"

안희정 충남지사의 송년기자회견(17일) 이후 정확히 10일이 지나도록 기자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은 것 말이다.

언제부턴가 충남도정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집중되면서 정작 챙겨야 할 것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음을 느껴왔는데, 그날 기자회견 역시 이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누군가는 “왜 너만 그래”라고 따질 수 있겠지만, 지난 10일 간 주위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이런 걱정은 기자 개인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했기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본다.

안희정 충남지사 송년기자회견…“이래도 되나” 싶은 한 가지

안 지사는 이날 모두발언과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2016년은) 여성과 인권이라는 관점으로 도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정비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환황해 연역의 국제적인 자치단체교류를 통해서 이 지역이 평화와 번영의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외교 노력과 연대활동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도의회로부터 “뜬구름 잡기 행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환황해 포럼’에 대한 지속 추진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안 지사는 내포신도시에 대한 질문에 “300만평 도시 개발이 도지사의 목표가 아니다”라거나 “내포신도시 (인구가) 언제까지 몇 만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는 사실상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LH나 충남개발공사 입장에서 걱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물론 안 지사는 “오히려 제가 걱정하는 것은 홍성·예산 및 아산권역까지, 이 광역망 체제 내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발전시키느냐"라며 충남 전체 차원에서 내포신도시를 바라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부적절한 답변이었다는 비판을 면키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평화·인권·여성 등 인류 보편의 가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내포신도시가 여기에 낄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충남도정이 우선순위로 삼을 성질의 것은 아니다.

평화·여성·인권 강조하며 내포신도시엔 “도지사 목표 아니다”

충남도정이 UN사무국이 될 순 없고, 충남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있어 후진 지역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특정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하면 될 일이다. 게다가 인권의 경우 동성애자 문제 등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또 다른 논란이 불가피한 지점도 적지 않다.

여성 문제 역시, 안 지사가 평소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일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4.1%(20명)에 불과한 사무관 이상 도 여성 공직자의 비율은 국정감사 때마다 지적돼 온 사안이다.

기자회견장에서 ‘안 지사는 과연 내포신도시의 현실에 대해 알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당장 주유소가 없어 홍성읍이나 예산 덕산으로 왕복 10km 이상을 나갔다 와야 하고, 병원이 부족해 오전에 가면 “오후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고등학교 입학 문제로 인해 내포신도시에 입주했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는 공직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상당수 공직자는 여전히 새벽잠 설쳐가며 3시간 가까운 출퇴근을 감내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안 지사가 “300만평 도시 개발이 도지사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도정 현안 묻기 주저하는 기자들…안희정은 이미 대권주자

안 지사 스스로 내포신도시 공식 홈페이지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있지 않은가.

“희망찬 내일을 위한 200만 도민의 지혜와 슬기가 모여, 새로운 충남시대를 열어갈 내포신도시가 마침내 2013년 출범했습니다. 우리는 내포신도시를 통해서 지역균형발전과 환황해권의 중추지역으로 웅비하는 충남의 미래를 설계합니다.”

이것은 내포신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부턴지, 기자들이 안 지사에게 도정 현안에 대해 묻기를 주저하거나 꺼리고 있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로 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내 현안을 질문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번 송년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인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 사태와 총선 전망 등 정치적 이슈에 집중됐다. 누군가는 “여기가 국회냐”라는 볼멘소리를 했을 정도다.

안 지사는 더 이상 도지사가 아니고,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충남도정의 입장에서 볼 땐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당진·평택항 도계(道界) 분쟁과, 안면도 관광지 개발 등 충남도정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대선 출마 전제, 임기 1년 남아…인류 보편의 가치 추구할 때 아니다

혹자는 “나머지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수장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공직자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도지사가 이상을 논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가 현실을 따지긴 쉽지 않다.

안 지사가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3선에 도전한다면 이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렇다면 평화·여성·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가 일부나마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도정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안 지사의 이 같은 모습은 황당하게 느껴질 정도다. 대선 출마를 전제로, 사실상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안 지사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해도 될 정도로 충남도정이 여유롭지는 않다.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잘 한 것도 있지만, 미흡한 부분은 바로 잡아서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박동철 금산군수의 소회를 곱씹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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