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경제발전 광주에도 뒤진 ‘패권도시’ 대구 부산

김학용 주필
우리나라 정치는 지역패권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영남을 대표하는 정당이 늘 있었고,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이 항상 있었다. 당을 대표하는 사람과 당명이 바뀌곤 했으나 ‘영남당’과 ‘호남당’은 존재해왔다. 현재는 새누리당이 영남당, 새정치연합이 호남당이다.

정치적 패권 누려온 영남

우두머리를 차지한 사람 또는 집단의 힘이 패권이고, 그 권력을 계속 확대, 유지하려는 술책이 패권주의다. 우리나라에선 영남 출신 권력자들과 영남당이 정치적 패권을 누려왔다. 지금도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고 영남당이 제1당이다.

근래 『아주 낯선 상식』이란 책을 낸 김욱 교수(서남대)는 “그간 ‘지역감정’ ‘호남차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영남 패권주의’”라고 했다. 호남차별을 이용한 영남패권주의가 지속돼 왔다는 주장이다. 호남당에서도 두 번 - 한 번은 영남 출신을 호남당에서 밀어 대통령이 된 케이스이긴 하지만- 대통령을 배출했다. 따라서 ‘영호남 패권주의’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이 옳다면 충청도 등 다른 지역도 호남과 함께 영남 독식을 막을 의무가 있는 것이고, 영호남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양상으로 본다면 기타 지역은 제3자 혹은 구경꾼의 입장이 된다. 한때 ‘충청당’에선 “영호남 패권주의를 깨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어느 표현이 맞든 선거 때마다 호남은 절박한 심정으로 임한다. 김욱 교수는 “호남은 1980년 이후 줄곧 뚜렷한 반(反)영남패권주의 투표를 해왔다. 호남의 투표 경향은 명백히 그들을 계승하는 정당들(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호남은 영남패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당에게 표를 몰아준다. 작은 게임에선 무소속이나 심지어 영남당 후보의 손도 들어주지만 ‘호남당을 위한 담금질’이지 진짜 호남당을 버리는 건 아니다. 당의 구호가 무엇이든 호남당을 무조건 밀어줬다. 이 점에선 영남에서도 다르지 않다. 영남에선 호남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 무조건 영남당을 찍는다.

호남의 분열은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묵인

그런데 호남 쪽엔 언제부턴가 문제가 생겼다. 강준만 교수(전북대)는 “새정치연합 내분사태의 주요 원인은 문재인-안철수의 문제라기보다 호남 유권자의 분열이다. 호남은 노무현 시대 이후 더 이상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견해가 같은 과거의 호남이 아니다”고 진단한다. 호남의 분열은 사실상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묵인인데 그게 가능할까? ‘선수’가 마땅치 않아 생기는 혼선이지 호남의 분열이라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호남은 새정치연합의 능력을 불신하고 있다. 새정치는 선거만 나가면 지는 정당이 돼 있다. 호남당인 데도 ‘영남 친노(문재인)’가 당을 장악하고 있는 점도 탐탁지 않다. 김욱 교수는 영남 친노에 대해, 겉으론 영남패권주의에 맞서는 척하지만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 점에선 ‘비노 영남’ 안철수도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친노의 약점, 문재인의 위기를 노리면서 호남을 파고들고 있다. 호남이 선수를 교체할지 여부는 아직 모른다. 호남은 영남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 똘똘한 선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분열되면 안 되지만 장담할 수 없다. 호남의 고민이다.

안철수가 새정치연합을 탈당, 독립해 나오자 영남당 지지율도 약간 떨어지긴 했으나 영남당은 즐거운 표정이다. 호남당에 문제가 생기면 영남이 웃고, 영남당에 문제가 있으면 호남이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의 내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계청은 지난 22일 16개 시도별 2014년 지역내총생산(GRDP)의 변동 내역을 발표했다. 경기도가 서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전년 대비 성장률에서 전남이 꼴찌를 기록했다는 내용도 눈에 들어왔다. ‘전남 꼴찌’는 역시 패권경쟁에서 밀린 호남을 반영하는 것인가 싶어 통계청 포털에서 과거 30년간의 시도별 지역내총생산을 찾아봤다. 결과는 의외였다.

지난 25년간 GRDP 지방 4개 도시 중 광주 1등, 대구 꼴찌

통계자료는 1985년 이후 30년 치만 나와 있다. 영호남의 중핵도시 대구 부산 광주와 충청의 대표 도시 대전까지 포함된 통계는 1989년부터다. 2014년까지 25년간 전국평균 GRDP 증가율은 3.67배다. 이 기간 중 대구는 2.49배, 부산은 2.53배 증가에 그쳤다. 광주는 3.33배, 대전은 2.96배 증가했다. 경북은 3.63배, 경남은 2.83배였으며, 전남은 2.79배, 전북은 2.83배였다.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 지방의 4개 대표 도시를 비교하면 영남패권의 심장 대구의 성장률이 꼴찌이고 오히려 호남의 광주가 1위다. 지리적 조건이 비슷한 영호남의 수부도시 경쟁에서 오히려 패권지역 도시가 밀리고 있다. 농촌 지역에선 영남이 다소 높지만 영호남 모두 전국평균에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열매는 영남도 호남도 아닌 수도권에서 가져가고 있다. 경기도는 5.59배, 수도권과 가까운 충남은 6.22배나 증가했다. 인천도 3.42배로 다른 4개 지방도시보다 높다.

지역패권과 지역경제가 늘 상관없는 건 아니다. 박정희 집권 시기 경상도 주민의 소득 변화를 보여주는 통계(『지역패권주의연구』·남영신)가 있다. 1960년 경상도 주민소득은 전국 평균의 88.5%에 불과했으나 1980년엔 전국 평균보다 36%나 높았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25년 간 패권지역 주민들은 보답을 받지 못한 셈이다. 성장률 꼴찌 도시 대구는 시민들이 선거 때마다 열심히 영남당을 밀어주는 대가 치고는 너무 허무한 결과다. 덕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싸울 이유가 없다. 누군가는 덕을 보고 있다.

지역패권주의 덕을 보는 사람들 정치인과 관료

누구인가? 그 지역 정치인들이고 관료들이다.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5대 권력기관장은 거의 영남 출신이 맡는다. 중앙정부 요직도 영남 출신들이 많다. 이들은 동향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승승장구한다. 영남 인맥에 치여 호남과 충청 등 기타 지역 출신 관료들은 기를 펴지 못한다. 이런 현상이 경제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는 ‘패권의 떡고물’이 패권을 만들어주는 보통 주민들에겐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호남의 주민들은 생각해볼 문제다. 패권주의는 권력 부패와 행정 비효율의 커다란 원인이다.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습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내 편 네 편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편가르기가 너무 심하면 승자에게도 독이 된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정치인 안철수가 다시 꿈틀거린다. 성패는 호남의 선택에 달렸다. 호남은 안철수도 문재인도 내키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영남패권에 맞설 싸울 선수로선 둘 다 부족하다고 보지만 다른 대안도 없어 보인다. 제대로 된 ‘선수’를 끝내 찾지 못한다면 호남은 영남과의 싸움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호남이 먼저 물러나면 기를 쓰고 영남당만 밀던 영남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순진한 바람인가? 물론 브레이크 없는 영남공화국으로 가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랬다간 영남은 호남뿐 아니라 전국을 상대로 싸워야 할 수도 있다. 그 땐 제대로 싸움이 될 것이다. 작금 ‘호남의 고민’은 지역패권주의 문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호남의 고민은 호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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