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남 부여군 부군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성인이 되면 사자사냥에 나선다는 아프리카의 용맹한 마사이족 말이다. 

맹수가 많은 자연환경 속에서 ‘혼자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빨리 가는 게 좋다’는 말인지, ‘목적지가 멀어도 여럿이 함께 가면 안전하다’는 말인지, 아니면 ‘멀리 가는 길도 두 명 이상이 함께 가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인지, 그 속뜻까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산행도 혼자 하면 굽이져 펼쳐지는 길도 멀어 보이고,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여럿이 함께 하면 서로 대화들을 나누며 걷기 때문인지 같은 길이라도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엊그제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던 날, 여럿이 즐겨하던 도솔산 산행을 모처럼 혼자하게 되었다. 한가로웠다. 작심하고 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가급적 오고가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길만을 택해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걸었다.

산길 가에 철모르고 핀 개나리꽃도 볼 수 있었고, 나무 사이에 두세 송이 수줍게 핀 진달래꽃도 볼 수 있었다. 또, 아직 서리를 아랑곳 않는 듯 붉은색과 노란색에 녹색 잎들까지 달고 있는 한그루 단풍나무도 보았다. 참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그 모습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산 속의 대부분 나무들은 잎들을 모두 떨어내고 홀가분해 하고 있었다. 나신을 드러내고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어 자연스러웠다. 소나무와 잣나무와 노간주나무는 변함없이 푸른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산중의 나무들 중에는 벌써 낙엽이 되었어야할 잎들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이들 나무에 붙어 있는 잎들은 하나같이 말라비틀어진 모습이었다. 보기에 추했다. 

엉뚱하게도 문득 인간 캥거루족이 생각났다. 취직이 안 되니까 부모에게 의지해 산다는 젊은이들 말이다. 나무는 겨울철에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나뭇잎이 얼마나 성가실까. 노인들은 노후가 돼 살기 힘든데 자식마저 독립하지 않으려 하니 얼마나 힘들고 안타가울까. 

도솔산에서는 또 다른 나무들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서리가 내리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여름날처럼 새파란 잎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나무, 아카시와 오리목과 참나무와 밤나무들이었다.  

놀라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들 나무는 어미목이 아니라, 간벌 때 몸통이 잘려나간 자리에서 움을 티운 어린 줄기들과 잎새들이었다. 볼수록 신통했다. 찬 서리가 하루 이틀 내린 것도 아닐 텐데 고난을 이겨내며 버티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와 끈기가 무척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역경과 고난을 겪어야 삶에 대한 의지가 더 굳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허우대는 크지만 의지가 너무 약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젊은이들이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처럼 부모에게 붙어 있지만 말고, 당장 만족하지 못해도 눈높이를 한 단계 낮춰 직장들을 가졌으면 좋겠다. ‘젊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하지 않는가. 

인생의 성공 목표를 너무 빨리 잡고 가려하지 말고, 조금 멀리 보고 단계를 밟으며 느긋하게 갔으면 좋겠다.

도솔산에는 아직도 푸른 잎을 지탱하며 겨울을 버티려는 나무들이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가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