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이 만난 사람] <16> 화가‧시인 백혜옥

제1회 세종미술대전 종합대상 주인공

『누더기 더미 밖으로 / 발갛게 움직이는 손 / 뭉툭해진 칼끝으로 / 무심히 벗겨놓은 마늘 / 한켜한켜 / 뽀얀 속살 드러내는 쪽파 / 미동 없는 그녀 얼굴』

사람과 사물의 이미지가 잘 표현된 시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시는 백혜옥이 쓴 ‘장인의 손’의 일부다. “색채가 살아있는 글자들을 엮어 시를 그렸다”는 길상호(시인)의 표현처럼 그는 시인이기에 앞서 화가다. 최근 세종특별자치시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제1회 세종미술대전 종합대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백혜옥의 출품작은 ‘꿈꾸는 세종.’ 세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꼴라주(collage) 기법으로 오리고 붙이고 그려서 표현한 반구상 작품이다.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화된 세종시를 화폭에 담았다.

바탕의 사각형은 자투리 천으로 만든 조각보를 연상시킨다. 조각보는 전통적인 한국의 미를 상징한다. 한지에 오려붙인 훈민정음과 함께 세종의 과거를 나타냈다.

화면 중앙 물방울 모양의 원형은 실이 감긴 한지를 붙여 표현했다. 태동하는 세종의 현재다. 골판지와 꽃무늬 천을 붙여 우측에 표현한 항아리 모양은 세종의 꿈을 담은 그릇이다. 세종의 미래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이 꽃무늬 항아리에 담길 듯하다. 세종미술대전특별전은 지난 7일 세종시청에서 개막해 15일까지 열린다.

백혜옥(52). 그는 꽃을 주제로 한 반구상 작품을 주로 선보인 작가다. 꽃은 꽃인데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꽃이 아니다. 심상(心象)의 꽃이다. 기억 속에 저장된 꽃의 이미지가 작가의 심적 상태를 통과해 화폭에 표현된 것이다. 저장된 기억은 바로 어제 본 꽃이기도 하고, 어릴 적 고향 장흥 너른 들판을 뛰놀며 본 꽃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중첩이다. 분명 서양화인데 한국화의 요소가 엿보이는 건 작가의 전통적 감수성이 풍부해서다.

백혜옥을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 대전예술가의집에서 열린 10번째 개인전 ‘꿈꾸는 정원’전(展)에서다.

‘꿈꾸는 정원 - 如如(여여)꽃’의 연작 중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보랏빛이 도는 핑크색 꽃밭이었다. 타일 위에 형형색색 아크릴물감으로 한 편의 시(詩)같은 풍경을 그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괜스레 눈망울에 이슬이 맺힌다. 그 속을 마음껏 뛰노는 한 소녀가 그려졌기 때문일까.

눈앞에 펼쳐진 들판엔 자운영 꽃이 만개하다. 줄기의 흰 털은 설탕가루를 뿌려놓은 듯하다. 그 위편으로 유채가 서서히 꽃을 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아득하게 보이는 집들이 작은 마을을 이뤘다. ‘집들 중 하나가 소녀의 집이겠거니’ 생각에 이르자 작품이 머금고 있는 사연이 궁금해졌다.

궁금증은 작가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풀렸다.

화가는 1963년 전남 장흥에서 농부의 2남 5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 예쁘다며 담임선생님이 환경게시판에 게시했다. 그게 동기가 돼 일찌감치 화가를 꿈꿨다. 어린 딸이 그림을 보여주면 아버지는 환하게 웃어줬다.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는 마흔 아홉을 일기로 사랑하는 딸과 영원히 이별했다. 작가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는 아버지의 따뜻한 얼굴을 나는 그림 속에서 봤다. 작가와 나의 무의식적 교감이었던 셈이다.

단언컨대 작품들에 부제로 붙은 ‘如如(여여)꽃’은 작가의 다양한 변형 시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창작의 원천, 즉 아버지와 소녀의 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백혜옥의 작품들에 흐르는 일관성이다. 그것이 꿈 작업(Dreamwork)을 통해 스펙트럼이 넓은 작품세계로 이어졌다. 작가는 “여여꽃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내 마음 상태가 표출된 것”이라고 했다.

백혜옥은 다양한 오브제를 사용하는 작가다. 작품의 변형 수단이기도 하다. 한지와 패브릭, 아크릴, 커피 등 재료의 활용 폭이 상당히 넓다. 캘리그라피(1급), 리본아트(사범자격), 도자기 핸드페인팅, 바리스타 등 다양한 취미생활이 잉태할 더 많은 화가의 변주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절대 고독의 상태에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그림과 시”라는 작가는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 다음 전시를 구상하고, 시집도 출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혜옥은?

1982년 충남대 미술대학(서양화전공)에 입학, 1회 졸업생이 됐다.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조형미술학과를 나와 석사청구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대전수채화협회전, 대전여류작가 15인 초대전, 수채화 10인 초대전, 신개념 전환전, 충남대 교수작품전, 한‧중‧러 교수합동 교류전, 북경올림픽 기념전 등에 참여했다. 대전미술대전 초대작가이고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조형연구소 연구위원이다. 미술심리상담(1급) 자격을 취득하고 카운슬러 과정을 이수한 뒤 대전시교육청에서 8년째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최근엔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 지인들과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시를 이야기하는 생활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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