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길을 걷는데 웬 외제 차 한 대가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기분이 나빴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던가? 교양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리는데 운전석 창문이 내려진다.
“오빠, 오랜 만이예요. 저 아시겠어요?”

밝은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는 여자. 가만? 누구였더라? 맞다. 그녀다. 야간대학 다닐 때 내 마음속에 있던 그녀.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본 그녀는 참 예뻤다. 이복구비가 뚜렷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도 마음은 있었지만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못 붙이고 1년이 후딱 지나갔다.

우린 2학년이 되었고 내가 과대표가 되었을 때 일부러 총무를 그녀에게 맡겼다. 그러면 더 가까워 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녀는 개강파티, MT, 신입생 환영회, 졸업여행, 사은회 까지 어려운 일도 야무지게 척척 해냈다. 그런 그녀가 더 좋아졌지만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우린 그렇게 전문대를 졸업하며 그녀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세련된 원피스 차림에 목걸이, 귀걸이, 팔찌까지 금으로 한껏 치장하고 있었다.
“어머, 오빠는 하나도 안변했네?”
“왜 안 변했겠니?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넌 뭐하며 지내니?”

내 물음에 가방을 뒤척이던 그녀는 명함 꺼내더니 건네줬다.
“내가 원래 명함을 잘 안주는데 오빠니까 드릴게요. 팔자가 그래선지 요즘도 하는 일이 많아요.”
금박으로 된 명함에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샐러드 뷔페의 대표, 체육센터의 대표로 이름이 올려 있었다. 아, 외제 차에 화려한 차림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제야 궁금증이 풀린다. 한데 묘한 기분이 든다. 그녀가 바쁘게 살고 돈을 많이 번다면 마땅히 박수를 쳐주고 기뻐해 줘야 하는데 내 기분이 유쾌하지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잘사는 것에 대한 시샘인 것 같다. 하지만 겉으론 쿨 한 척 너스레를 떨었다.

“너는 예전에 뭘 해도 잘 해내더니 지금도 그렇게 지내는 구나? 보기 좋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다. 어디에 사니? 아이들은 몇 살이니? 남편은 뭐하니? 내 입에선 쉴 새 없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 남편이요? 오빠도 알걸요? 졸업하기 전에 나 따라다니던 사람 있었잖아요?”
“그 남자 네가 싫다고 도망 다니지 않았니?”
“오빠도 기억하는구나. 맞아요. 그 사람하고 결혼 했어요. 자기는 한번 찍은 것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서 저를 6개월 동안 매일매일 쫓아다녔거든요. 그 정성에 내 마음도 흔들렸죠 뭐. 호호호.”
그랬구나. 그 끈질김에 그 남자와 결혼 했구나.

“한번 찍은 것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최근 내 가슴속에 꼭 새겨 넣고 싶은 말이다. 나는 요즘 애타게 기다리는 전화가 있다. 책을 출판하기 위해 그동안 쓴 원고를 네 곳의 출판사에 보내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벌써 3주가 지났다. 아, 이젠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경우 인간은 마땅히 그래야 했거나 그럴만한 이유를 찾는다. 잘 되면 내 탓이요, 못 되면 조상 탓처럼 나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차한 핑계거리 말이다. 유명한 작가들도 처음엔 다 그렇다는데 나 같은 초보 작가는 오죽 하겠어? 다니엘 데포의 《로빈손 크루소》는 20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작품이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는 완성하는데 12년이나 걸렸다고 하잖아. 아마 내 원고는 출판사에 쌓이는 글들이 너무 많아 보지도 않았을 거야.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 하지만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은 숨길 수 없다.

글쓰기는 내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서 시작했다. 이 후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포기한 채 날마다 도서관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며 내가 쓴 글들로 인해 감정적 보상과 물질적 취득이 뒤따라 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글들은 허접했고 출판사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나는 왜 생기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며 헛된 꿈에 부풀었을까? 희망이 사라진 지금 매사 시큰둥하고 의욕이 없고 사람만나기도 싫고 모임이나 약속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하고 있다. 마치 마음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묵직하다. 설상가상으로 감기몸살 기운도 있어 열도 나고 목소리도 잠겼다. 이렇게 끝날 것만 같아 불안하다. 현실도 위태롭게 느껴진다.

어찌해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럭저럭 사는 인생에 안주하며 지낼 것인지, 아니면 진심을 담아 나의 경험과 철학을 담은 글을 다시 쓸 것인지. 삶은 언제나 잔인하다. 둘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니까.

흔히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이 주어지고 그걸 취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길이 주어지고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엇갈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중요한 길목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이것을 취할 것인지 저것을 버릴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서 매번 흔들리고 고민된다.

친구들은 “도대체 네가 그 나이에 책을 써서 뭘 할 거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쉰 살이 늙은 나이일까?” 물론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시기가 존재한다.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시기다. 하지만 일찍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늦게 결혼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시기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늦은 시기란 없다.

물론 생물학적인 나이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해보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나이가 백세라고 봤을 때 나는 이제 겨우 전반전을 마친 상태다. 나머지 후반전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지금 다시 설계하면 되는 것이다. 모두의 삶이 빛나는 이유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내 인생도 제2의 인생에서 꽃피우면 된다.

그리고 이건 처음으로 공개하는데 사실 책 쓰기는 내 종착지가 아니다. 인생 2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나의 최종목적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책 출판을 기점으로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리고 내 스토리를 사람들에게 말하며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은 것이 나의 목표다.

“다시 한 번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
결정했다. 다시 글을 쓰기로. 출판사에서 한번 퇴짜 맞았다고 그 잠깐의 망신이 두려워 여기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다. 포기하는 순간부터 찾아오는 패배감도 두렵다. 내 경험상 노력하고 있던 것을 힘들다는 이유로 모두 접는 순간 몸은 자유로워 졌지만 그때부터 찾아오는 패배의식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 것처럼 조금만 더 하면 되리라 믿는다. 지금이 99도 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 순간이 마지막 고비일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포기한다면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단언컨대 절대로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거다.

성공한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는 나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그가 평생 동안 보물처럼 아끼던 그림이 있었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부자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림이라면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유명화가의 그림도 아니었고 골동품적 가치도 없는 평범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모래사장에 나룻배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그림이었다. 사실 카네기가 이 그림을 아꼈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의 카네기는 외판원을 했던 적이 있는데 어느 노인의 집에 걸려있던 이 그림을 보고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된다. 그림을 소장하고 싶었던 카네기는 다음날 노인의 집을 다시 방문했고 그림을 자신에게 물려주면 평생 동안 아끼겠다며 노인을 설득했고 그림을 얻게 된다. 카네기는 이 그림을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꿈을 키웠고 스스로를 복 돋았다. 그런데 이 그림 속 나룻배 밑에는 작은 글씨로 이런 글이 적혀있다.

‘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가리라.’

카네기처럼, 나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한마디를 내 가슴 속에 새겨 넣고 싶다. 다시 글을 쓰기로 결정한 이 선택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또 책을 출판하기 위해 내가 가진 자원을 얼마나 더 쏟아 부어야 할지, 또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 대신 힘들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책을 완성하면 나에게도 상을 내리기로. 누구나 숨 쉴 구멍은 마련해 놓고 산다는데 나도 그쯤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어떤 상을 내릴까? 흐음, 해외여행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요즘 꼭 가보고 싶은 곳은 두 곳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과 중국의 황산. 텔레비전 화면에 이곳의 풍경이 나오면 눈을 떼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린 채 바짝 다가앉았던 기억이 난다. 오늘부터 두 곳의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해두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꺼내 보리라.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 중에 사막에 사는 호피 족은 기우제를 지내면 백퍼센트 성공한다고 한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재능보다는 굳은 의지와 확고한 신념이 더 중요하다고. 그래서 나도 될 때까지 할 거다. 한번 문 것을 절대로 놓지 않는 ‘불 독’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다. 지긋지긋하고, 넌덜머리가 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할 거다. 실천력이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을 이용해 스스로를 통제한다고 하던데 나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했으니 이젠 안 할 래야 안할 수가 없겠지.

글을 쓰다 보니 이전과 달라진 게 보인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내 마음이 예전보다 더 단단해 진 것 같은 느낌이다. 자, 내 꿈을 위해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엉덩이는 배신을 안 하겠지….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