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교장들이 챙긴 민망한 특강료

김학용 주필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태도는 일본과는 대비된다. 독일의 철저한 반성은 때론 지나칠 정도로까지 비쳐진다. 독일 사람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과거 독일군이 미군에게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 만세를 부를 정도라고 한다. 올봄 지역대에 특강을 왔던 한 독문과 교수에게 들은 얘기다.

독일 국민, 독일군이 미군에 당할 때 만세 하는 이유

아무리 과거사라고 해도 자기 나라 군대가 적군에게 패하는 장면에 박수까지 치는가? 특강이 끝난 뒤 독일 국민이 그 정도까지 된 이유를 물어봤다. 그 교수는 ‘교육’이라고 보았다. 독일은 어릴 때부터 나치 독일의 잘못을 철저히 가르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지역의 A씨(여)는 청와대를 방문했다가 박근혜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기념품을 가져와 거실의 진열장에 놓았다. A씨의 고등학생 아들이 이를 발견하고 엄마에게 인상을 썼다. “선생님이 박근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던데 왜 이런 걸 가져왔느냐”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교육’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와 논거들은 무수히 많다. 청소년 시절 선생님에게 들었던 한 마디가 평생 삶의 나침판이 되기도 하고, 선생님의 칭찬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도 된다. 요즘 그런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A씨 아들을 보더라도 교육의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계의 현실은 크게 달라져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추락을 거듭해왔다. 교실이 붕괴되면서 교사는 가르치지 못하고 학생들은 배우지 못하는 학교가 되어 있다. 학생들은 진학을 위해 학교가 아니라 학원으로 달려가거나 과외를 받는다. 공교육은 죽고 사교육이 활개를 친다.

정부는, 과외는 EBS 과외로 통일하고 선행교육을 금지시키는 등 공교육 살리기에 나섰다. 예습은 공부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지만 지금은 불법 선행학습에 해당할 수도 있다. 미리 공부하면 벌을 받는 세상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교육조차 빈부의 대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니 그런 ‘공부 규제법’까지 만들어졌다. 교육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문제이고 시대가 낳은 고육책이다.

제자들 교육하고 특강료 챙기는 교장들

그러나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도 있다. 충남도의회(맹정호 의원)가 충남교육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일부 교장들의 민망한 특강 행태가 드러났다. 교장들이 다른 학교와 서로 교차특강을 하는 방식으로 강사료를 챙겼다. 자기 학교 제자들에게 강의하고 돈을 받은 교장들도 있었다. 교장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번 사례가 충남에서 227회나 됐고 많게는 1회 50~60만원의 특강료를 받았다.

충남도 교장들의 ‘민망한 특강’은 충남도의회의 충남교육청 감사에서 맹정호 의원(새정치·서산·오른쪽)에 의해 드러났다.

특강 중에는 ‘학부모 청렴 지키기 연수’나 ‘영재학교 수료식’에 참석하고 돈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학부모 청렴 지키기라면 교장이 학부모에게 당부해야 할 본연의 업무인 데도 돈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학교 수료식 특강은 축사 해주고 돈을 받은 꼴이다.

특강은 가치있는 정보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짜 특강이 주변에 넘친다. 정치인과 힘있는 공무원들이 하는 특강도 대개 그렇다. 정치인의 특강은 돈과 표까지얻는 수단이고, 공무원 특강은 이해관계가 있는 기관단체의 촌지 전달용인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교장들의 경우처럼 눈먼 돈을 챙기는 수단도 된다.

학업성적에도 인성교육에도 실패하는 교육

교장들만 돈을 밝히는 건 아니다. 일부 교사들은 보충수업(방과후 학교) 수당 때문에 ‘스승의 도리’를 잃고 있다. 수당 분배를 놓고 교장과 교사들간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수업도 안하는 교장까지 수당을 떼 가자 교사들의 불만이 컸다. 결국 교장은 손을 뗐지만 보충수업에 대한 실질적인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아 반강제적으로 듣는 학생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인성교육은 어렵다. 끊이지 않는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 등은 인성교육 부재의 산물이다.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교육은 지금 불가능에 가깝다. 교사도 학부모도 오로지 성적만을 강조하면서 좋은 대학, 좋은 학과만 외친다. 그렇다고 학업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다.

지역의 모대학 영문과 교수는 신입생을 받을 때마다 같은 시험문제로 테스트 해본다. 꽤 오래 해왔다. 성적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교육이 독해보다 어학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뀐 영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수학강사를 했던 사람이 있다. 그에게 배워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에 입학했던 학생이 대학에서 수학과목을 따라갈 수 없자, 여름방학 때 그 강사에게 수학 과외를 다시 받았다. 이젠 서울대 공대 입학생조차 대학에서 수학 과목을 별도로 마련해서 가르쳐야 할 만큼 수학도 성적이 떨어졌다.

우리는 어떤 교육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품성’을 기르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 교실이 붕괴되면서 학생들은 배울 만한 스승이 없고, 진짜 스승이 있더라도 제자들을 가르칠 여건이 못 된다.

자괴감 느껴 학교 떠나는 교사들

자괴감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제자들 앞에 서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내 주변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고교 교사였던 한 친구는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작년 결국 명퇴를 했다. 그는 “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앞으로 30년 동안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 교사는 “지금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핵심은 입시제도와 (교사의) 승진제도 2가지로 이를 개혁하지 않는 한 해법이 없다”고 했다. 학생은 입시에 매달리고 교사들은 교육보다 승진경쟁에 내몰리면서 학교가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물론 모바일 환경의 일상화, 가족해체 현상, 취업난 등도 교육 문제의 원인(遠因)이다.

교장의 특강료 챙기기는 이런 구조적 문제와 무관하다. 개인의 양식과 양심의 문제일 뿐이다. 말로 가르치면 서로 싸우기 쉽고, 몸(행실)으로 가르쳐야 따른다는 말이 있다. 교장의 특강은 말로만 -그것도 돈을 받고- 가르친 것이다. 지금도 말보다 몸으로 가르치는 스승이 있어야 한다. 교사보다는 교장이, 교장보다는 교육감이 먼저 그런 스승이 돼야 한다. 그런 교장 교육감이 몇이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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