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정용기, 염홍철을 모셨나 가뒀나

김학용 주필
새누리당 대전시당위원장인 정용기 의원이 염홍철 전 시장을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정 의원은 염 전 시장을 위해 위즈덤 클럽이란 당내기구를 특별히 만들어 의장직을 제안했고 염 전 시장은 수용했다. 작년 지방선거 때 자당의 염 시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피해를 본 것으로 여기고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조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방목 상태’ 염홍철 새누리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당직 맡기기는 문서상으론 새누리 소속이지만 ‘방목 상태’에 있던 염 전 시장을 일단 새누리 목장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가두는 효과가 있다. 나아가 내년 선거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염 전 시장의 도움이 아니면 내년 선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란 소문도 있다.

정 의원이 원수처럼 대하던 염 전 시장을 찾아간 이유는 내년 4월 총선이다.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도와줄 어른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총선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권선택 시장이 끝내 시장직을 잃는다면 시장 재선거도 치러야 한다.

내년 총선용보다 대전시장 재선거용

총선보다는 시장 재선거가 두 사람의 만남을 만들었을 것이다. 총선에서 염 시장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설사 그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고 해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역 선거판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 시장선거는 조직의 동원력부터 총선과는 차이가 크다. 시장선거에선 염 시장 자신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재선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지역정가에는 염 전 시장의 재출마설이 줄곧 회자돼 왔다. 그의 측근들은 “대전시를 위해서는 염 시장이 다시 나서야 한다”는 말들을 해왔다. 재선거가 치러지게 된다면 염 시장이 나서 잔여임기를 마무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선거는 잔여임기만으로 끝낼 사람이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측근들이 주장하는 ‘잔여임기 마무리론’이다. 그 다음 본선거까지 의식해야 하는 사람이 당선되면 잔여임기 동안 제대로 시정을 펼치기 힘들기 때문에 잔여임기만 마치고 나갈 사람이 낫다는 논리다.

염 전 시장 측근들의 ‘잔여임기 마무리론’

염 전 시장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얘기는 없다. 염 전 시장의 일부 측근들한테 나오는 말로 보이지만 염 시장이 ‘재선거가 있다고 해도 나는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하게 표명했다면 그런 말이 계속 나올 리 없다. 재출마설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염 전 시장도 ‘여지’는 남겨두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염 전 시장은 언론이나 정관계 인사 등을 활발하게 접촉해왔다. 근래에는 염 시장이 다른 당으로 넘어간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가 다른 당으로 영입돼 출마하는 것도 시중에 떠도는 ‘복귀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염 시장 측에선 “다른 당으로 출마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염 전 시장이 다른 당으로 옮겨 재출마하는 건 쉽지 않다. 후보로 받아들일 당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있다고 해도 본인은 또 한번 ‘철새’가 돼야 하고 당선 가능성도 더 떨어지게 된다. 염 전 시장이 재출마를 원한다면 새누리당 안에서 승부를 보는 게 낫다.

하지만 그는, 새누리당에선 내놓은 사람 같은 처지였다. 정 의원이 염 전 시장에게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그런 상태에 있었다. 정 의원의 제안은 염 전시장 입장에선 불감청고소원, 즉 자신이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원하던 바였을지 모른다. 위즈덤 클럽 의장으로 정치활동이 가능해진 만큼 뭔가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는 만들어진 셈이다.

정용기 의원이 염홍철 전 시장 개인 사무실을 찾아아 도움을 요청했다.

염홍철의 재출마 가능성과 장벽들

그러나 염 전 시장의 재출마에는 장애물이 많다. 우선 불출마 선언을 뒤집을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추대 형식으로 후보를 결정하지 않는 한 당내 경쟁도 불가피하다.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이 후보 경쟁까지 뛰어드는 것도  난센스다. 그가 내년에 72세라는 점도 약점이다.

더 큰 걸림돌은 청와대다. 염 전 시장이 2013년 8월 느닷없이 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청와대 쪽의 비토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불출마 이유로 예측 가능한 선거풍토 조성 등을 들었지만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한 중앙지는 “과거 염 시장과 박근혜 대통령 간 불편했던 관계가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정치권 반응을 불출마 선언의 배경으로 보도했다.

상황 변화가 없다면 청와대는 여전히 장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고 앞으로는 청와대의 힘이 자꾸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우 철옹성 같은 지지세력 때문에 임기 후반에도 장악력이 현격하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지역에선 염 시장의 측근들 말고도 그를 응원할 수 있는 외부 세력이 있을 것 같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대전시장 도전을 노리는 정치인들은 내년 재선거에는 잔여임기만 마치고 물러날 사람이 후보가 되길 바랄지 모른다. 작년에 시장선거에 뛰어들었던 정용기 의원 자신을 비롯, 이장우 의원, 이재선 전 의원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염-정 오월동주의 또 다른 용도

‘정용기의 염홍철 모시기’는 박성효 전 시장에겐 반길 만한 일이 아니다. 박 전 시장은 작년 선거에서 실패하긴 했으나 현실적으로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다. 그는 2018년 대전시장선거를 노리는 예비후보들과도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다. 여야의 모든 대전시장 예비후보들은 재선거에서 염 전 시장과 박 전 시장의 경쟁 양상이 벌어지면 염 전 시장을 편들 가능성이 있다.

정 의원은 ‘염홍철 모시기’ 이벤트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이미지와 존재감을 높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 염 전 시장도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자신과 측근의 이해보다는 당과 지역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새누리당 내엔 작년 지방선거 실패 때문에 염 전 시장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다. 그러면서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양쪽이 서로 이용만 하려고 한다면 또 실패할 것이다. 둘 다 패자가 되고 만다. 새누리는 물론 염 전 시장도 결국 작년 지방선거의 패배자가 된 꼴 아닌가?

한때 앙숙이던 염 전 시장과 정 의원이 한 배를 타기로 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다. 선장은 정 의원이다. 염 전 시장을 배 안으로 모시려는 건지, 가두려는 건지 정 의원의 생각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염 전 시장도 모를 리 없겠지만 설사 ‘모시기’가 아니라 ‘가두기’이라고 해도 지금은 상관없다고 여기고 있는지 모른다.

정 의원의 ‘염홍철 모시기 이벤트’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모시기’보다는 ‘가두기 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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