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한번 다녀가라.”
컴퓨터 수리 점을 하는 순조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부탁했던 중고 노트북이 들어왔으니 와보란다. 늦게 가면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당장 달려갔다. 노트북을 보니 맘에 들어 구입했다.

그런데 이걸 집에 가져오니 갈등이 생겼다. 기존에 사용하던 노트북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허긴 이 녀석과 10년을 함께 해왔으니 헌신짝 버리듯 정을 떼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 책을 쓰는 동안은 내 손때 묻은 기존의 노트북을 사용하기로.

비슷한 일이 또 있다.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세숫대야가 있는데 벌써 20년째다. 뭐든 오래 사용하면 닳듯이 이 플라스틱 대야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는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 틈으로 물이 샜다. 그래서 새로운 대야를 구입했다. 그런데 오래 된 것을 버리려하니 왠지 마음이 짠하다. 우리 가족의 손때가 묻은 정든 물건이란 생각에 버릴 수가 없었다. 서운한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발코니에 놓았더니 그걸 보고 아내가 말한다.

“이거 아직 안 버렸어? 뭘 이까짓 걸 가지고 아까워해. 하긴 우리가 신혼시절에 산 것이니 참 오래도 썼다. 그치?”
아내의 말에도 서운함이 느껴진다. 아쉽긴 마찬가지겠지. 그러나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기존의 것은 자리를 내 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내 곁에는 낡고 오래되어 수명이 다 된 것이라도 소중한 것들이 있다. 책가방(8년), 필통(10년), 안경(8년), 신발(5년), 자동차(11년). 참 정든 물건들이다. 하나하나에 사연들이 다 있다. 이런 물건들을 막상 버리려면 아쉽고 서운하다.

그런데 아는가? 사람들은 모두 똑 같단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유효과’다. 보유효과는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 물건을 계속 지니려고 하는 마음이다.

실험을 해봤다.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게 머그컵을 주고 가격이 비슷한 초콜릿과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89퍼센트가 머그컵을 그대로 가지겠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그룹에게는 초콜릿을 먼저주고 머그컵과 바꿔주겠다고 했더니 90퍼센트가 초콜릿을 선택했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단 자기 것이 된 물건을 다시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TV 홈쇼핑에서 물건이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반품하라고 얘기해도 반품 율이 거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살다보면 애착을 느끼는 물건일지라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놓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최근 우리가족은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적금과 보험 해약은 물론이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장롱 깊숙이 넣어놓았던 패물을 모두 꺼내 팔았다. 패물이랄 것도 없다. 결혼식 때 장만한 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아이들 돌 때 받은 반지가 전부였으니까.

그 중 가장 아쉬웠던 것이 아내가 무척이나 아끼던 순금 쌍가락지였다. 이 반지에는 사연이 있는데 결혼 때 우리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순금반지를 녹여 보탰으니 팔기엔 아까운 예물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패물만은 도저히 팔수가 없어 마지막까지 남겨두었었다. 하지만 내야 할 돈은 많고 가진 돈이 없었으니 팔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달 아파트 관리비와 보험료 낼 돈이 부족한데 장롱 속에 있는 당신 쌍가락지를 팔면 안 될까?”

설거지 하던 아내는 못 들은 척 말이 없다. 무언의 시위겠지. 조금만 기다려줘.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날 오후, 나는 대형마트(홈플러스) 안에 있는 금방으로 순금 쌍가락지를 들고 갔다. 막상 오긴 왔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생각해보라. 평일 오후에 순금 반지를 팔러 온 중년 남자를. 무능력도 이런 무능력이 없다. 할 일 없이 매장을 뺑뺑 돌았다. 그냥 갈까, 아냐, 부끄러움은 잠시다. 이걸 참아내야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용기를 내어 금방 안으로 들어갔다.

“순금 반지를 팔수 있을까요?”
주인아주머니가 꺼내 보란다. 반지를 꺼내니 저울위에 올려놓는다.
“6돈이네요. 150만원 드릴게요. 파시겠어요?”
"예, 팔겠습니다."

100만원이든 150만원이든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주인 말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속이지 않을 거다.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더니 현금을 건네준다. 처음엔 그 돈만 받고 얼른 나오려 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그런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저 쌍가락지는 우리 어머니의 사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무척 아끼던 반지였는데…….’ 라고 생각하니 서운하고 또 서운했다.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유리 진열장 위에 놓여 있는 쌍가락지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주인 여자가 흠칫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른손에 쌍가락지를 쥐고 눈을 감았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마음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우린 이렇게 작별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만 우리 곁에 20년 동안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어.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다오. 안녕.”

눈물이 핑 돈다. 쌍가락지를 주인 여자에게 건네줬다. 죄송합니다. 헤어지기 아쉬워서요. 이렇게 말하니 그제야 주인여자가 고개를 끄떡인다. 촉촉해진 내 눈도 봤겠지. 그녀가 말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이런 일이 가끔 있거든요.”
“헤어지기가 아쉬운데 반지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주인여자가 흔쾌히 허락해줘 사진을 찍고 반지를 다시 건네준 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어떤 것 일지라도 이별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조금 빨리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자.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처제가 결혼 후 서울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나는 법이라고, 1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정을 떼려니 무척이나 서운했다.

그래서였을까. 결혼 며칠 전부터 몸살이 나더니 결혼식 당일에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안 갈수도 없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는 그저 식은땀만 흘렸다. 내 모습을 본 집안 어른들은 정을 떼기 위한 아픔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알았다. 마음이 서운하면 몸도 안다는 것을.

인생은 유한하다. 영원토록 살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 그러니 이별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이나 지위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을 계속 누리고 싶지만 그건 욕심일 뿐.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순환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아끼던 것들이 무척 아쉬워지고 정든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는 이 계절에 나는 또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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