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전 서산시 부시장 | 수필가

사물에는 명칭이 있고, 명칭은 그 사물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용어가 가지는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사물이나 상징에 가장 적확하고 인식하기 좋은 명칭이나 용어를 붙이고자 궁리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와 관련한 용어가 과연 그런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부시장
지방자치는 헌법 제117조 및 제118조에 근거를 두고, 지방자치단체의 기능과 자치입법, 자치단체의 종류, 지방의회의 설치, 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하여 법령제정의 근거와 범위를 정하고 있다. 즉, 헌법에 지방자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 ‘지방’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지방은 공간적으로는 서울이외의 지역을 일컫는 말이고, 기능상으로는 중앙의 지도나 감독을 받는 아랫단위의 기구를 뜻하면서, 아울러 변두리거나 종속적인 관계라는 느낌을 준다. 지방에서 서울에 가는 것을 ‘올라간다’고 하고, 서울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지난해, 행정자치부장관은 “지방자치단체가 국가기관과 상하관계라는 인식자체를 바꾸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직급이나 기관 명칭에서 ‘지방’을 삭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얼마 후 그 직을 떠나면서 유야무야되었다.

지방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 지방자치기관, 주민자치기관으로 표기해야

지방자치단체라는 명칭은 어떠한가? 사전적으로 ‘단체’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일정한 조직체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으로 사회단체, 민간단체, 친목단체 등을 포함한다. 지방자치단체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성립된 법인이면서 공공적 사무의 집행을 존립의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법인과 구별되는 공법인(公法人)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그 자치단체를 대표하고, 행정수반으로서의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며 고유사무를 처리한다. 아울러 국가사무를 수임 처리하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겸한다. 지역에서 행사를 할 때, 참석한 기관‧단체장을 소개하면서 대체로 자치단체장을 맨 먼저 소개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장’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처럼 민간으로 구성된 단체와는 성격과 기능이 다름에도, 지방자치단체 또는 자치단체, 줄여서 ‘지자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갖는 단체로서 중앙정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볼 때, ‘지방정부’, ‘지방자치기관’ 또는 ‘주민자치기관’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국회(國會)처럼 시의회는 시회(市會), 도의회는 도회(道會)로 바꾸는 게 타당

지방자치단체의 의결기관인 지방의회도 마찬가지다. 지방의회의 명칭은 시의회, 도의회, 군의회, 구의회이고, 구성원인 지방의원을 시의회의원(시의원), 도의회의원(도의원), 군의회의원(군의원), 구의회의원(구의원)이라고 한다. 국회는 국의회(國議會)가 아니고, 국회의원은 국의원(國議員)이 아닌데, 같은 대의기관의 명칭을 무슨 이유로 다르게 했는지 의문이다.

지방의회라는 명칭을 ‘자치의회’ 또는 ‘주민자치의회’로 바꾸고, 시의회는 시회로, 도의회는 도회로, 군의회는 군회, 구의회는 구회로 하며, 시의회의원을 시회의원으로, 구의회의원을 구회의원으로 고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명칭으로, 광역자치단체의 장은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이고 기초자치단체의 장은 시장‧군수‧구청장이다. 이 가운데서 광역자치단체인 특별‧광역시의 장을 약칭으로 ‘시장’으로 호칭하다보니, 기초자치단체인 시의 장인 시장과 혼동을 하게 된다. 따라서 특별‧광역시의 시장을 ‘지사’(知事)라고 하여 ‘시지사(市知事)’로 할 것을 제의한다. 시장‧도지사간담회를 '시‧도지사간담회'라고 약칭하는 관행에서 보더라도 전혀 생뚱한 의견은 아니라 하겠다. 또한 특별‧광역시가 모두 도에서 분리·설치되었으므로, 지사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특‧광역시의 자치구(自治區)와 대도시에 설치된 행정구(行政區)의 장을 모두 ‘구청장’이라 하여, 자치구청장과 행정구청장이 혼동되고 있다. 일례로 경기도의 어느 일반 시에서 행정구청장이 물의를 빚자, 구민들이 구청장을 잘못 선출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행정구청장은 시장이 임명하는 자리라는 것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따라서 자치구와 행정구를 구분되도록 장의 호칭을 바꾸는 것이 마땅하다. 행정구의 장은 구청장 그대로 두고, 자치구의 장은 구장(區長)으로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의 청(廳)단위 관서의 장을 청장(廳長)이라하고, 그 지방기관의 장을 지방청장(地方廳長)이라고 하는데, 이는 특정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을 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방’ 관련 용어부터 바꿔 지방자치 의미 살려야

이에 비하여 지방자치단체는 일정한 구역의 종합행정을 수행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그 구역의  장으로 표기하는 것이 적정하다. 다만, 읍면의 하부조직인 리(里)가 있고, 그 리 가운데 인구가 많거나 면적 등이 큰 경우 예전에는 구(區)로 나누어 각각 구장(區長)을 두었다가, 구장을 모두 이장(里長)으로 일원화하였고 이후 구를 리로 바꾼 유래가 있는데, 혹시 그런 연유로 구장이라는 명칭을 기피하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반세기 전의 구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음을 감안할 때, 구청장을 구장으로 고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방의회가 부활된 지 24년,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주민의 손으로 선출한지 20년이 되었다. 그리고 10월 29일은 지방자치에 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한 ‘지방자치의 날’로 법정기념일이며, 올해로 3회째를 맞이했다. 모처럼 제정한 지방자치의 날을, 그저 하나의 행사로 기념하고 넘길 것이 아니라, ‘지방’과 관련한 용어에 관하여도 고찰해 보는 계기로 삼아 본다면 나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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