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노벨상 배출하는 일본의 지방대

김학용 주필
주역(周易)은 동양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다. 복희씨와 문왕이 짓고 공자가 해설을 달았다고 한다. 최소 2500년을 거치면서 기라성 같은 천재들의 도전과 시비에도 건재해온 책이다. 성인(聖人)들이 미완의 이론으로 남겼든, 비결(秘訣)로써 후대 문인들의 숙제로 남겼든 그래도 연구할 부분은 많다.

경전의 문자와 구절 하나의 해석에 매달리는 공부가 많지만 이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연구에까지 도전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2500년 된 고전에 ‘도전하는’ 학자들이다. 우리 주변에도 있다.

60년 공부해서 책 한 권 남긴 충남대 류남상 교수

류남상(柳南相) 충남대 명예교수도 그런 학자였다. 지난 2월 88세로 임종했다. 그는 공자가 밝히지 않은 문제를 푸는 데 평생을 바쳤다. 공자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 전문직이면 공자의 말을 빌려 학위를 받고 공자의 말로 강연을 하고 공자의 말로 논문을 쓰기 위한 공부가 대부분이다.

류 교수는 달랐다. 그의 공부는 공자가 알려주지 않은, 그러나 꼭 알아내야 할 부분을 알아내는 것이었고, 류 교수의 제자들에 따르면 그는 결국 그것을 해냈다. 류 교수가 평생 매달렸던 공부는 주역과 정역(正易)이다. 그는 『주정역경합편(周正易經合編)』을 냈다. 그가 60년 동안 연구해서 낸 한 권의 책이다.

‘만물(우주)의 존재 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핵심이론이다. 류 교수의 제자들에 따르면, 그는 사람과 물체가 어떻게 구성돼 있고, 생명체가 어떤 원리로 생명활동을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원리를 공자의 ‘주역 해설서(계사전)’를 통해 알아냈다. 제자들은 공자 이후 2500년 만의 학문적 성과로까지 평가한다.

류남상 충남대 명예교수. 2015년 2월 88세로 작고했다.
“주역 연구로 ‘존재 원리’ 규명.. 사상의학 원리 제공”

주역을 점서(占書) 쯤으로만 여기고, 정역을 특정 종교의 교리 정도로만 보는 사람들에겐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류 교수의 후학들은 그가 남긴 이론을 바탕으로 철학과 한의학 등의 분야에서 학문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류 교수의 학문적 성과는 특히 사상의학에 대한 철학적 원리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주역과 사상의학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이면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는 데 인색할 수도 있다. 여기에 문외한인 필자도 솔직히 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류 교수가 이룩한 학문적 결실을 그의 후학들이 배우며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전은 물론 서울 대구 광주 전주 천안 등지에도 류 교수의 이론을 공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대학교수 한의사 약사 등이 철학은 물론 사상의학 같은 실용학문에까지 적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세미나를 열어 치험례를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

석사 학위도 없던 촌부 같던 대학교수

류 교수는 강원도 춘천이 고향이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입학했다가 6.25를 거치면서 스승을 따라 충남대 철학과에 편입했다. 충남대 민태식 총장과 이정호 총장이 은사다. 그는 이정호 교수를 쫓아 계룡산 국사봉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때 주역을 깨우치지 못하면 소나무에 목을 매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공부였다. 충남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충대교수를 지냈지만 석사학위도 박사학위도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공부였지 학위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공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내는 게 필생의 목적이었지 석·박사가 아니었다.

1960년대에는 석·박사 학위가 없어도 조교 생활을 하면서 교수를 할 수 있었다. 나중 어떤 총장이 박사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교수직을 박탈하려 했다. 그러나 류 교수의 학술발표회를 지켜본 뒤론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의 학문적 전성기는 충대 철학과가 전국적 명성을 얻던 때였다.

류 교수는 1993년 충남대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유성에 작은 연구실을 마련해 제자들과 함께 공부를 계속했다. 팔순의 노학자가 되어서도 연구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평생의 목표였던 ‘존재의 원리’를 규명해 냈다.

전공은 주역이었지만 유불선에도 막힘이 없을 만큼 그의 공부는 넓고 깊었다. 그런데도 학자 티가 나지 않았다. 류 교수의 바로 옆 사무실을 쓰는 교수도 그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저 일개 촌부 같은 학자였다.

류남상 교수가 남긴 책 『주정역경합편』. 후학들은 ‘만물의 존재 원리

“이름을 얻기 위한 공부라면 그만둬라”

그는 무엇보다 명예욕을 경계했다. 대위로 예편한 데다 당시에 대학졸업 학벌까지 있었으니 자유당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해왔다. 물론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대학교수 땐 보직을 맡아본 적도 없다. 그는 늘 제자들에게도 “이름을 얻기 위한 공부라면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6.25 때는 군수 물자를 담당하는 보직이었다. 전시니까 정부 예산의 3분의 2를 주무르는 자리였다. 그의 서랍에는 늘 뇌물이 쌓였다. 뿌리쳐도 소용없었다. 저녁때면 그 뇌물 서랍을 바닥에 확 뒤집어 놓고 퇴근하곤 했다. 군은 이런 그를 더욱더 붙잡아두려 했고 이 때문에 예편도 늦어졌다.

그가 추구한 것은 오직 진리 탐구였다. 돈도 명예도 벼슬도 관심 밖이었다. 모든 학자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도 류 교수 같은 길을 가는 학자, 연구원들이 왜 없겠는가? 충대 공대의 이보성 명예교수(85)는 탄소섬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정년을 그만둔 뒤에도 20년 가까이 대학 실험실에 나와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일본 지방대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오는데

금년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2명 모두 일본의 지방 국립대 출신이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11개 일본대학 중 8개는 지방 국립대라고 한다. 한결같이 한 우물을 판 학자들이었다. 올핸 중국에서도 처음으로 과학분야 노벨상을 받았다. 개똥쑥에 40년을 매달린 학자였다.

충남대는 올해 처음 교수 실적을 석차로 매겨 본인에게 통보했다. 1등보다는 꼴찌에 대한 채찍질이다. 노벨상 후보감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방법이다. 지방대는 재정 인력 장비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하다. 그러나 류 교수나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지방대라는 게 학문의 결정적 장애요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실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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