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솔개 이야기를 아는가? 솔개는 70년을 살며 장수하는 새다. 솔개가 오랫동안 살기 위해서는 40세에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시기가 되면 솔개의 발톱과 부리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화되고 깃털은 무거워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게 된다.

이때 솔개에게 두 가지의 선택이 기다린다. 그대로 죽던지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다시 태어날 것인지. 다시 태어나기를 선택한 솔개는 산 정상부근으로 날아가 갱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먼저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쪼아 부리가 빠지게 만들고 그 자리에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면 다음으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곳에 새로운 발톱이 자라나면 마지막으로 깃털을 뽑아낸다.

이런 고통은 무려 6개월 동안 이어지는데 이 과정이 끝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구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찾아온다. 새로 태어나기를 원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내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원하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경제적인 부침을 겪으며 성격이 날카로워졌다. 그때의 나는 링 바닥에 벌렁 누워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나를 걱정해주었다.

“넘어지는 것보다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고, 세월이 흐르면 지금의 이 순간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때가 있을 거다.”

나도 안다. 하지만 일어설 수가 없다. 아니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일어서면 뭐하겠는가. 다시 넘어질게 뻔한데.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으니 한줄기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상처 입은 마음을 부여잡고 매일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걸으면서 내 인생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하루에 두 번씩, 꼬박 10개월 동안 강변을 걸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희미한 것이 잡힌다. ‘글쓰기’였다. 지금의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보탬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이름으로 된 책도 내고 싶었다. 좋은 글을 써서 나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쉽던가?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난다. 학교 다닐 때 문학 동아리 한번 안 들어봤고,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본 적 없는 내가 어찌 글을 쓴단 말인가? 게다가 글쓰기는 단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훈련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나 같은 풋내기가 어떻게 책까지 낼 수 있단 말인가? 보나마나 내가 쓴 글들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쓰레기가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이였다. 오십의 경계에서 서본 사람은 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것을. 내가 지금 49살인데 언제 실력을 쌓고 언제 책을 낸단 말인가? 아, 딱 10년만 젊었어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이런 생각이 들자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다.

그때였다. 하늘의 도움이었을까? 이즈음 내 마음을 확, 바꿔주는 사람을 알게 된다. 이분을 만나며 내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분 때문에 나는 글쓰기에 대한 용기를 얻었고 나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은 바로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김한기’ 라는 어르신이다.

“헉! 그분의 나이가 그렇게 많았어요?”처음엔 반신반의했었다. 매일 아침마다 강변에서 만나는 그 어르신이 1926년생, 그러니까 올해 90세란다. 씩씩한 목소리와 건강한 모습 때문에 대략 70대 중반쯤 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아흔 살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90세가 넘으면 무릎연골이 닳아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늘 어떻게 그 나이에 새벽 4시30분부터 6시까지 1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원으로 운동을 나올 수 있는 거지? 나이를 알고부터는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느낌이 새로웠다.

“어르신 참 대단하십니다.”라는 말을 건네면, “이젠 나이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라고 말하면서도 아침운동을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다.

어느 날, 아침운동 때마다 만나는 어르신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생겼다. 다섯 분이 모이셨는데 나를 빼면 69세 어르신이 막내였다. 그분이 장난스런 말투로 말문을 연다.

“김한기 어르신 때문에 나 같은 60대는 애들이요. 애들…….”
그러자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옆에 있던 호쾌한 성격의 78세의 어르신도 거든다.
“저 김한기 어르신 때문에 우리도 매일 운동을 나간다니까. 하루라도 안보이면 전화를 하시니 안 나가고는 못 배겨.”

그 말에 또 까르르. 이 말 나도 동감이다. 내게도 어르신의 전화가 왔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날 어르신의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된다. 아침에 만나 나누는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새벽에는 간단한 인사만 나누지만 밖에서 만나보니 어찌나 유쾌하게 말씀을 잘하시던지, 또 아는 것이 어찌나 많으시던지 말씀이 줄줄 이어진다. 상위에 올라온 생선을 보더니 웃긴 얘기도 할 줄 아신다. 

“옛날에 아주 가난한 집의 며느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생선 장수가 온 거야. 며느리는 생선을 사고는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 살수가 있나. 순간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거야. 내 손에 생선냄새를 많이 묻혀서 국을 끓이면 생선국이 되겠구나. 그 생각에 생선을 주물럭거렸고 그 손을 냄비에 담긴 물에 씻고 국을 끓여 시아버지에게 대접했지. 그런데 시아버지가 며느리로부터 생선국을 끓이게 된 연유를 듣더니 막 화를 내더라는 거야.”

“똑똑한 며느리 같은데 왜 혼을 냈을까요?” 그러자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아가, 아쉽구나. 그 손을 우물물에 씻었더라면, 생선국을 1년 동안 먹을 수 있었을 텐데…….”그 말에 우리 모두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90세 어르신이 이런 유머를 하다니. 대단한 에너지를 소유한 분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사모님의 안부를 묻자 어르신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사모님은 ‘치매’로 투병중이신데 벌써 13년째. 이 어르신께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구나. 그런데 이게 웬걸. 어르신이 사모님을 직접 돌보신단다. 그 말을 듣자 입이 쩍 벌어졌다. 아흔 살이나 되신 분이 치매 환자의 병간호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치매’는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병이다. 우리 외할머니가 그러셨고, 내 어머니가 치매이기에.

“사모님 간호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요양원에 모시면 편하실 텐데.”
 “처음에는 그랬는데 마음이 허전하더라고. 빚진 것도 같고. 자식들 신세지는 것도 싫어서 내가 보살피기로 했어. 그래도 지금은 편해. 정부에서 파견해준 요양보호사가 오전 3시간을 돌봐주기 때문에 한결 수월해졌어. 더구나 아들이 옆에 살아서 자주 오는걸 뭐.”

그랬구나. 갑자기 내가 부끄러워진다. 90살 어르신도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50살도 안된 사람이 늦은 나이라고?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어디다 대고 나이 타령이었단 말인가? 늦게 깨달았으니 엄살도 심한 법. 앞으론 나이 때문에 망설이지 않을 거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그깟 나이는 절대 중요하지 않을 거다.

제 생각을 바꿔주신 김한기 어르신,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은 존재만으로도 에너지를 주십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어르신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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