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남 부여군 부군수

부여군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무량사(無量寺)에 가면 매월당 김시습의 자화상을 볼 수 있고, 부근에서 그의 부도탑도 볼 수 있다. 세종대왕도 아꼈던 천재 매월당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알고부터 전국을 떠돌다 삶을 마감한 곳이 부여의 무량사다. 김시습은 천재답게 다섯 살 때 벌써 이런 시를 지었다 한다.

복사꽃 붉고 버들잎 푸른 봄철도 저물었는데(桃紅柳綠三月暮)/푸른 바늘에 꿰인 구슬은 솔잎에 맺힌 이슬이로다(珠貫靑針松葉露)

부여군에서 현직으로 근무할 때 이 고찰에 가끔 들렸었는데, 가볼 때마다 안온함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동행했던 공무원으로부터 “원래 무량사 주변 산에는 큰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찼었는데, 탄광 갱목으로 모두 벌채돼 지금은 잡목만 우거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었다.

유서 깊은 무량사를 둘러싼 산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들어차 지금도 솔숲을 이루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도 부여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려가는 코스가 되고, 지역주민들에게도 좋은 휴식처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다.

필자는 미덥지 않아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묻고 산들을 뒤돌아 봤었다. 그 당시는 개발이 우선이었고, 관광 휴양 개념도 없었겠지만, 당시 행정가들의 안목이 짧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컸었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되돌리기 어렵지 않은가.

“앞으로는 관광과 문화산업이 주민들을 먹여 살릴 것”이라며, “자연이던 인공이던 자원을 잘 보존해야한다”는 필자 나름의 소신을 피력했었다. 우리는 별 관심 없이 보는 것도 외국인의 시각으로는 색다르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고, 정도 깊은 나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애국가 가사(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에도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붉거나 산머루 빛 소나무 줄기가 죽죽 뻣어 올라간 숲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니겠는가.

지난 10월 초에 강원도에서 하루를 묵고 온 일이 있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의 봉평을 지나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아주 산촌이었다. 지대가 높아선지 그 지역은 이미 나뭇잎들이 물들고 있었다. 산 아래 관광지 은행나무 숲은 이미 노랗고, 산들도 붉으락푸르락 하며 얼룩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감탄하고 좋아한 것은 역시 우리 소나무였다. 도로변에 흘러가는 소나무 숲도 좋았지만, 심심산천에서 보는 소나무들은 자태가 더 늠름했다. 하천변에 비스듬히 누웠어도 꿋꿋한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들은 우리 민족혼이 스며있는 것 같아 그냥 마냥 좋았다.

그런데 이런 우리 소나무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엊그제 언론에 ‘단풍인줄 알았는데 말라 죽은 소나무’ 운운하는 보도가 있었다. 내용인즉슨 제주도에서 과거 2년간 930억원을 들여 100만여 그루를 제거했는데, 올해 29만여 그루를 더 베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돼 말라 죽었다는 것이다.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100% 고사하기 때문에 소나무 에이즈라 불린다. 이를 바다 건너 제주도의 일이라고 안심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내륙에도 재선충이 발생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재선충이 들어온 것은 1988년도다. 원래 소나무 재선충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전파됐다. 1988년 금정산 자락의 범어사 울타리용 목재를 일본에서 수입했는데 여기에 재선충이 묻어왔다는 것이다. 이후 부산,경북,경남,전남 등으로 급속히 번졌고, 지금은 거의 모든 시.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만이나 일본처럼 소나무를 포기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민족혼이 깃든 나무, 서민들의 정이 깃든 나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선, 매개 곤충인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적기 방제를 실시해 이들 곤충을 박멸해야 한다. 이들 매개 곤충의 최대 이동거리는 2km 정도라 한다. 방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고사목 처리를 완벽히 해야 한다. 소각하거나 농약 훈증 처리를 철저히 해 이들이 번식할 수 있는 빈틈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목재를 파쇄 해 재활용하려면 세밀한 파쇄규격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세 번째는, 소나무 관상수나 목재의 유통 시 감염목이 반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필요하면 소나무 관상수의 유통을 금지시키는 방안도 강구돼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병해충에 강한 우수 종 고유 소나무를 육종해 지속적으로 식재해야 한다. 베어낸 것보다 더 많은 식재를 해야 소나무를 보존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열대화하는 등 기후 변화로 인해 소나무 생장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지역 대에서는 과감히 소나무를 포기해 더 이상 불필요한 비용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소나무 생육에 지장이 없는 고지대에서 소나무를 보존시키는 것이 더 나을 것 아닌가.

정부와 각 지자체가 소나무 재선충 확산을 확고히 막아 우리 고유의 수종인 소나무가 생활주변에서 영구히 보존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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