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진심이 없는 인관관계는 속빈 강정과 같다.” 

초등학교 때(70년대 중반)다. 그 시절 우리세계에서 힘의 평가기준은 무엇보다 부모의 직업이었다. 지금이야 의사나 변호사 같은 소위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폼 나지만 그때는 외형적인 것에 더 무게를 두었다. 이를테면 슈퍼마켓 사장, 식당 사장, 같은 거다.

5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내 옆에 앉은 친구의 부모님은 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의 주인이었다. 그러니 그 친구의 가방에는 딱지, 구슬, 학용품들이 가득했고 우린 그걸 하나라도 얻기 위해 녀석의 환심을 사야만했다.

하지만 그 친구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동네구멍가게가 아닌 슈퍼마켓 말이다. 녀석의 가방에는 ‘젤리’나 ‘사탕’같은 것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우리 반의 ‘서열일위’를 너무도 쉽게 쟁취해 버린다.

한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1학기 중간쯤 한 친구가 전학을 오며 모든 순위를 바꾸어 놓는다. 그 친구 부모님은 ‘중국집’ 사장이었다. 그 녀석이 “너, 오늘 우리 집에 놀러 갈래?” 라는 말이 그 시절 우리에겐 제일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 의미는 자장면을 공짜로 준다는 말이었으니까.

가게와 붙어있던 그 녀석의 집에서 먹던 녹색으로 된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던 그 자장면이 어찌나 맛이 있던지. 면을 다 먹고 난 뒤에도 나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려 그릇 주위를 혀로 핥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는 커다란 단점이 있었다.

자장면을 이용해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다 보니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무뢰한’이었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친구들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한껏 뻐기기까지 했다. 축구를 할 때도 마음대로 편을 짰고, 자기편한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도 우린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장면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했으니까. 

올라 갈 때가 있으면 내려와야 할 때도 생기는 법. 학년이 바뀔 무렵이 되자 녀석의 위력이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그의 횡포에 시달리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어졌고 결국 녀석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질 않았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모두가 멀어졌던 이유. 그 녀석에겐 바로 인간관계의 ‘진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내가 시켜준 자장면을 먹다보니 세상의 냉정함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그 녀석 생각이 난다.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어린마음에 상처받진 않았을까?

더불어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는 말과 행동이 똑같은 ‘언행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빈껍데기처럼 겉으로만 살살거리며 진심이 없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만약 그렇다면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진심이 없는 행동의 끝은 비참하다. 그걸 일찍부터 경험했던 나다.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백퍼센트 공감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4년 전 일이다. 그때 나는 방송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정치’에 발을 들여 놓고 싶었다. 선출직에 출마하면 당선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주위사람들은 이런 나를 극구 말렸지만 나는 뜻을 꺾지 않았다. 내가 고집을 굽히지 않자 방송국 편성국장님은 이런 충고를 해줬다.

“정치? 그거 아무나 하는 건줄 아니? 너는 마음이 약해서 정치와는 맞지 않아. 네가 정치를 한다면 분명히 상처 받을 거다. 그러니까 괜히 마음 다치지 말고 마음 돌려 먹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방송을 하는 것이 가장 좋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웠다. 그때 내가 국장님께 말씀드린 것이 ‘환승이론’이다.

“국장님께서 저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환승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열차를 타려면 지금까지 타고 있던 기차에서는 내려야 합니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십시오. 어디서든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러자 국장님은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신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뒤로하고 막상 방송국을 떠나려고 하자 너무도 아쉽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때론 서운함도 있었지만 내가 20년 동안 몸담았던 곳이니 당연하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의 시동을 켜니 또 다시 마음이 먹먹해진다. 참 많은 추억들이 있었는데. 차를 몰아 정문을 나가는데 도저히 그냥 갈수가 없다. 회사 밖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정문 앞 광장에서 대전MBC 사옥을 향해 땅바닥에 넓죽 엎드리며 큰 절을 올렸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밖에 나가서도 이곳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겠습니다. 유명해지면 그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너무도 아쉬워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도 갈 사람은 가야 한다. 입술을 깨물고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나는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세상일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인생을 다시 배워 나갔다. 시간이 지나며 국장님이 말씀하셨던 너하고 정치하고는 맞는 않는다는 말도 뼛속 깊이 실감했다.

얼마 전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는데 대전MBC 이상욱 피디와 방송국 후배 상혁이와 찬규까지 식당으로 들어왔다. 상혁이와 찬규는 평소 예뻐했던 후배들이고 이상욱 피디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니 반가운 것은 당연한 일.

“앗! 김경훈 선배님 아니신가요. 정말 오랜 만이예요?”
 역시 방송하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만나자 마자 오버액션이다. 

“우와, 너희들 이게 얼마만이냐. 아참, 요즘 아침방송에서 찬규 네 얼굴 자주 보고 있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방송을 맛깔스럽게 잘하더라?”

오랜만에 만났으니 별별 얘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국장님 얘기부터 작가들과 선배들 동향까지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젠 일어나야겠다, 라고 생각 할 즈음 상혁이가 난데없이 묻는다.

“아참, 선배님이 방송국 그만 두던 날에 정문에서 절 하셨다면서요?”
 아, 맞다. 그랬었지. 정장차림의 남자가 방송국 건물을 향해 넓죽 엎드려 큰 절을 올리던 모습.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다. 놀란 내가 물었다.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러자 상혁이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여기 있는 이상욱 피디가 그러던데요? 그날 무심코 창밖을 보고 있다가 선배님이 회사에 큰절 하는 모습을 봤데요. 그걸 보고 마음이 찡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상욱 피디가 말을 꺼낸다.

“선배님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진실함이 느껴졌어요. 그걸 보며 나는 회사에 얼마만큼의 애정이 있는지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찬규도 “우리도 그 얘기 듣고 마음이 짠했어요.”라며 한마디 거든다.

그랬구나. 그 모습을 누가 볼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아무튼 나 때문에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고마운 일이다. 더불어 그 일로 인해 내 진심을 알아줬다면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이미 방송국을 그만둔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날 그때의 내 행동은 내 ‘진심’이 시켰던 행동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내 마음에 충실했었던 거니까. 
 
살아가며 이런 순간들은 무수히 많다. 갑자기 생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다. 예를 들어볼까? 지갑을 잃어버려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 지갑을 주워 나에게 고스란히 돌려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감사의 보답으로 주는 사례금은 누가 시키지 않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다.

이뿐이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 교회 헌금, 복지단체의 기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안다. 저 사람이 진심으로 행동하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올해 4월, 나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이 되었다. 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살기 좋은 아파트를 가꾸어 나가는 일이다. 여기에는 ‘투명함’과 ‘공정함’은 물론 ‘공개’도는 기본이다. 난 목소리가 커서 잘할 수 있을 거다.

임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다. 결재를 끝내자 관리소장이 내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아파트는 미화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용역회사에 의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화원들의 근무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너무나 열악합니다. 신경을 좀 써주면 어떨까요?”

나는 이런 사람들이 좋다. 약자를 배려하는 사람들을. 그래서 관리소장과 그곳에 가봤다. 미화원(정식명칭이다)들의 휴식공간은 아파트 지하실에 두 개의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환풍기도 없는 곳이다 보니 탁한 공기와 습기 때문에 목이 따가웠고 벽지는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미화원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60~70대가 많다. 이 연세에도 이렇게 일을 하는 이유는 한 푼이라도 벌기위한 것이리라.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래, 내 어머니도 예전에 이런 일을 했었지. 그 작은 체구로 아파트 미화원, 고물장수, 과일행상, 병원 미화원, 고속버스 내부청소 등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돈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손톱이 빠져라 허리가 휘어져라 일을 했었다.

우리 어머니처럼 이분들도 집에 가면 누군가의 아내이고 훌륭한 어머니일 거다. 그런데 여기서 일한다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이런 걸 개선해주는 것이 회장인 내가 할 일이리라.
 “휴식공간이 열악해서 죄송스럽습니다. 이번 동 대표 회의에 방바닥 전기 판넬과 도배에 관한 미화원 개선사항을 안건으로 올려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실 수 있도록 힘써보겠습니다.”

내말이 끝나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고마워한다.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아님 열악한 환경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그분들께 따뜻한 밥을 한 끼 사주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그래서 미화원 28명(여자26명, 남자2명)을 전부 모시고 식당으로 가서 8천 원짜리 갈비탕을 대접해드렸다. 내 돈으로 말이다.

“아이고, 관심 가져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이렇게 돈을 써서 어떻게 해요?”
 미화원 반장님이 점심을 먹으며 연신 고마워한다. 

“별말씀을요. 입주자 대표 회장 앞으로 나오는 판공비가 조금 있습니다. 그 돈은 이런데 쓰라고 있는 겁니다.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사실 이것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조금 들었다. 아들의 수업료 낼 돈도 없으면서 남들에게 선심을 썼다고. 하지만 아내도 이쯤은 이해해줄 거다. 그러니 나하고 사는 것이겠지.

그런데 좋은 일의 보너스 일까? 유쾌한 일이 생긴다. 밥값을 계산 하려는데 ‘대들보 함흥면옥’의 김재숙 사장님이 “회장님이 좋은 일을 하니까 저도 동참할게요.” 하더니 음식 값을 깎아주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분이라서 내가 좋아하는 누님이다. 재숙 누님, 고맙습니다. 아, 참 기분 좋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고 나는 슬픈 현실과 마주친다. 미화원들에게 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다.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미화원 환경 개선’ 안건이 상정되자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용역회사와 계약했기 때문에 벽지도배나 물품구입은 용역회사가 할일이다.”라고. 맞는 말이다. 그게 세상이니까.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찌 그런 논리대로만 살 수 있겠는가? 해주자 해주지 말자, 양쪽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다 결국 이 안건은 통과되지 못했다.

나는 이런 순간이 싫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 주장을 설득시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의는 끝이 났고 이 때문에 나는 심한 갈등을 겪는다. 상심하고 있던 내게 내 마음의 목소리가 묻는다.

흥, 목소리가 커서 잘할 수 있다더니 꼴좋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야?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데 이젠 어쩔 거냐고?

다시 미화원들을 찾아갔다. 죄송하다는 구차한 핑계를 대기위해서 말이다. 그분들은 이 소식을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약속을 했는데도 지키지 못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죄송합니다.”

그 순간 ‘뇌경색’과 ‘치매’로 세 살배기 어린애가 되어버린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건 꼭 해주고 싶었는데.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때 아주머니 한분이 나를 따라온다. 들어가시라고 말하는데도 입구까지 따라온 그분이 내 얼굴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들은 이미 회장님 마음을 받은걸요…….”
 그때였다. 참았던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진다.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어 고개를 다른 쪽으로 휙, 돌렸다. 그랬구나. 내 진심을 알고 있었구나. 캄캄한 밤을 나 혼자만 걸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그래, 두려워 할 것 없다. 처음의 마음으로 밀고 나가는 거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 그때마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견뎌나가면 되는 거다.

그날 그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는 상심해 있던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고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누군가가 내 진심을 알아준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 생각을 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기운도 솟는다. 하지만 내 진심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내 행동을 보며 판단하겠지.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그러니 내 진심을 알아달라고 상대에게 결코 강요할 순 없을 거다. 그저 나는 행동으로만 보여주면 된다.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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