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대통령이 대전시장 안 만나는 이유

김학용 주필
우리나라 인구는 약 5000만 명이다. 서울(수도권)에 2400만이 살고, 영남에 1300만 충청과 호남에 각각 500만이 산다. 인구수로 보면 대통령은 ‘서울’ 눈치를 가장 많이 봐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구가 작은 ‘지방’에 더 신경을 쓴다.

대통령이 신경 쓰는 ‘지방’ 대구 광주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서울은 전체적으로 보면 정치적 편향성이 적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에는 각 지역 출신들이 모여살기 때문이다. 서울 인구가 절반을 차지해도 대통령은 서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인구는 작아도 ‘지방’에 더 신경이 간다. 정치 세력의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편향성도 두드러진다. 한 지역에서 대통령을 지지하면 경쟁 지역에선 그를 견제한다. 영호남은 정치적 패권을 다투는 라이벌이다. 모두 지역성이 강하고 정치성향도 뚜렷하다. 어떤 대통령도 이들 지역을 무시하기 어렵다.

충청은 영호남과는 다르다. 정치적 지위에선 영호남을 따라가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영남 패권주의 아래 호남의 견제로 굴러가는 상황이다. 영호남은 양대 세력이다. 충청도 한때 독자 노선을 추구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인구수로 보면 충청은 호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년부터는 충청권 인구가 호남을 추월했다. 이를 계기로 이시종 충북지사는 ‘영충호(嶺忠湖) 시대’로 가야 한다고 외쳤다. 영호남 패권 시대를 끝내고 충청도가 선두에서 이끌어 가자는 취지다.

‘영충호 시대’ 오기 어려운 이유

충청도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말이지만 현실화되긴 힘들다. 충청 인구가 호남의 2배에 이른다 해도 ‘영충호 시대’가 올지는 미지수다. 서울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서영호 시대’로 가지 않는 것과 같다. 서울은 캐스팅 보트 지역일 뿐 정치세력의 근거지가 아니어서 그런 말은 나올 수 없다.

충청은 인구가 늘고 있지만 서울을 닮아가는 ‘서울화(化) 현상’이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특히 대전은 충청과 영호남인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열린 도시’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충남의 천안 아산권마저 수도권에 빨려들어 가는 상황이다. 천안시는 ‘서울시 천안구’라는 별칭이 붙었다.

충청은 인구 규모로 보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구 구성비의 측면으로 보면 독자 세력화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충청도 인구가 훨씬 늘어난다 해도 정치 세력의 주체로 나서기는 어렵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호남 신당’은 파괴력을 발휘해도 ‘충청 신당’은 시도조차 어려운 이유다.

서울은 지방에 비해 지역의 이해 문제에 둔감하다. 주민들 구성이 다양할수록 단합된 힘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이런 특징은 대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서대전역 홀대’에도 대전시민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광주 사람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청와대까지 올라갔으나 대전 사람들은 대전역 앞의 안방 시위에 그쳤다.

대전은 광주보다 인구가 많지만 국회의원 수는 적다. 대전은 6명 광주는 8명이다. 대전보다 인구가 훨씬 적은 울산도 6명이다. ‘대전도 광주만큼은 늘려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시민이 많아야 정상일 텐데 대전시민들은 오히려 심드렁하다.

대전발전연구원이 올초 대전시 선거구 증설에 대한 시민 의견을 조사한 결과 찬성 34%, 반대 56%로 반대가 더 많았다. 조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여겨 재조사를 했으나 찬성은 45%에 불과했다. 대전은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수도권과 흡사하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 때문이고 그렇다면 전국적인 현상일 수 있다. ‘국회의원 늘린다고 대전에 도움이 되겠나?’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광주와 대전이 뒤바뀌어 있는 상황이라면 광주시민의 반응은 아마 다를 것이다. 서대전역 경유 문제를 대하는 두 지역의 태도를 보면 짐작이 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인천에서 열린 ‘2015 지역희망박람회’에서 권선택 시장의 안내로 대전시 전시관을 찾았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대전을 방문해서 전임이든 현직이든 대전시장의 업무보고는 받은 적이 없다.
대전시장 대전시민만 안 만나는 박근혜 대통령

대통령이 충청을 대하는 태도도 영호남과는 달라 보인다. 특히 대전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대통령의 시도 방문은 사라진 듯하지만 대신 지방행사 때 그 지역 시도지사에게 간단한 브리핑을 받곤 한다. 혹은 시민들과 오찬자리를 갖거나 재래시장을 찾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을 만난다. 박 대통령은 대구 부산 광주 울산 청주 등을 방문할 때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시도지사 업무보고도 안 받고 지역 주민들도 안 만난 곳이 대전이다. 계룡대나 대덕특구(카이스트)에서 열리는 행사 때문에 대전에는 어느 지역보다 자주 오는 편이지만 모두 기관방문에만 그쳤다. 내 기억으로 대전시장이나 대전시민들과 대화한 적이 없다.

전임 염홍철 시장 때도 현직 권선택 시장 때도 모두 외면당했다. 전임은 대통령과 한때 껄끄러운 관계였고, 현직은 ‘재판받는 야당시장’이란 점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이유다. 그러나 시장보다는 대전 전체의 ‘정치적 위상 문제’라는 생각이 더 든다. 만일 광주나 대구가 대전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해도 대통령이 그랬을까 싶다.

과거 어떤 경제 전문가는 대전은 지방도시가 아니라 수도권 도시로 성장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다. 그 진단이 옳든 그르든 대전은 수도권에 빨려들어 가는 듯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분야 뿐 아니라 정치적 위상도 수도권을 닮아가고 있다.

국회의원선거구 증설에 대한 시민들의 시큰둥한 반응은 많은 시민들에겐 의외의 결과였다. 대전이 영호남 사람들이 함께 섞여 사는 ‘융합 도시’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런 결과가 나온 데는 지역의 정체성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대전의 얼굴’ 찾아 미래 전략 바꿀 수도

대전은 과연 어떤 도시인가?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의 개통으로 탄생한 대전은 한때 교통도시 상업도시로 불렸고,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도시가 되었다. ‘선비의 도시’라는 이름도 붙여봤다.

하지만 ‘이게 대전의 얼굴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는 듯하다. 대전발전연구원이 지역대학과 함께 ‘대전의 정체성 연구’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학술 연구로는 처음이다. 앞으로 3년여에 걸쳐 대전의 기업사, 대전의 사회운동사, 대전의 정치사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전의 얼굴을 찾아보는 노력이다.

지금까지 대전은 대구 광주와 같은 ‘지방 대도시’ 입장의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대전의 ‘서울화 현상’이 분명하다면 미래의 전략도 바꿔야 할 것이다. 서울화 현상이 대전의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대전의 얼굴을 찾는 일이 더 힘들 수도 있다.

대전은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는지 모른다. 철도와 충남 도청이 들어오면서 대전은 순탄하게 발전해왔다. 이제 호남선 철도가 떠나가고 도청이 충남으로 되돌아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대전의 위기다. 먼저 대전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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