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의 공감소통] 방송인

미국의 팝스타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 가수다. 그가 톱스타로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까?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하기까지는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공부하는 교실에 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소동이 있었다. 한바탕의 소동이 지나갔지만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쥐가 교실 한쪽구석으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쥐가 뛰쳐나올지 모르는 상황. 그러자 선생님은 시각장애인은 청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생각했고 소년 스티비 원더에게 도움을 청한다.

“너에게는 우리 반의 그 누구도 없는 능력이 있어. 그건 바로 특별한 귀란다. 쥐를 잡을 수 있게 도움을 다오.”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선생님이 고마웠다. 자신감도 생겼다. 소년은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듯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 벽장 속에 숨어 있던 쥐를 찾아냈고 퇴치하는데 성공한다. 그후 소년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고 훗날 세계적인 팝가수가 된다.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이렇게 큰 용기를 준다. 문득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가? 생각해본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런데 따뜻한 말이 아니라 상처로 다가온 말이다. 누군가의 한마디 때문에 상처를 받은 기억이다.

2015년 3월 27일.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국가대표축구 평가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한껏 흥분해 있었다. 대전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A매치였고 국가대표 경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 앞에 커다란 벽이 다가온다. 대전축구협회 홍보이사로 활동하던 내게 ‘2백만 원의 입장권 판매’ 권고가 내려온 것이다. 말이 권고지 사실상 강매나 다름없다. 2백만 원이면 도대체 몇 장을 팔아야 하는 거야? 한 번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었기에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보는 수밖에. 먼저 축구관람을 좋아 할 것 같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대전에서 10년만의 A매치 성사.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3월 27일 저녁 8시. 대전월드컵 경기장. 입장권 구입을 원하는 분은 연락바람.’

하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전화 한통이 없었다. 그렇다면 발로 뛰는 수밖에. 10년 동안 함께 운동했던 조기축구회를 찾아갔다. 회원들을 한데 모아놓고 홍보를 시작했다.

“10년 만에 대전에서 A매치 경기가 열린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대전월드컵 경기장은 축구전용구장이라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티켓이 매진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1등석 5만원, 2등석 3만원, 3등석 2만원입니다.”

말이 끝나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지. 일대일로 한명씩 붙잡고 애원과 읍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네댓 장 주문이 들어오는 걸 보니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제 몇 명만 더 설득시키면 분위기가 넘어오겠구나, 싶었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창수 차례다. 이 녀석은 매사 삐딱한 취향이긴 해도 나를 잘 따르던 녀석이라 한결 수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수야, 너는 발도 넓으니까 3만 원짜리 다섯 장만 사줘라. 거래처 사람들하고 함께 가면 너도 점수 딸 수 있는 기회잖아.”

그러자 이 녀석이 나를 쳐다보며 전혀 엉뚱한 말을 한다.
“에이, 형. 그걸 누가 돈 주고 봐요? 집에서 텔레비전 보면 되지.”

아니, 이 녀석이 사기 싫으면 안사면 되는 거지.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화가 치밀었다. 사람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때까지 넘어올 것 같던 분위기는 창수의 말 때문에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그걸 누가 돈 주고 보냐고? 그럼 표를 판매하는 나는 뭐란 말인가? 창수의 그 한마디는 내게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하지만 화를 내고 싶진 않았다. 녀석도 고의는 없었을 테니까.

그 사건이 있고 나자 더 이상 입장권을 팔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다들 관심도 없는데 나만 이게 뭐란 말인가? 티켓을 다시 축구협회로 반납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황 탓을 한다면 나는 바보다. 이까짓 입장권 팔지 않으면 편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는 더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명 후회할거다.’

마음을 고쳐먹은 나는 다시 도전하기로 결정한다. 문자보다는 전화로, 전화보다는 직접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병원을 운영하는 신재규 원장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반가운 대답이 나온다.

“너 표 팔러 다니느라 힘들겠구나. 마침 잘됐다. 내 주변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50만원 어치 팔아줄게. 티켓 가져와라.”

우와, 50만원이나? 참 고마운 형님이다. 이 양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품위’다. 언제나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배려와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말을 건넨다. 이건 정말이지 나도 배우고 싶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닐 거다. 노력하면 언젠간 되겠지.

이게 좋은 징조였을까? 거듭 희소식이 날아온다. 지인호 후배 1백만 원, 김광선 후배 1백만 원, 박창용 형님 50만원, 친구 김동선 20만원. 일주일 사이에 320만원이나 팔았다. 마무리도 깔끔하게 처리해야 할 것 같아 경기시작 일주일전에 모든 돈을 축구협회로 송금해줬다. 그러자 내 일처리를 보며 한다운 대리가 “이사님이 최고예요.”라고 말한다. 뭘 이정도 가지고 칭찬까지. 아무튼 기분이 좋다. 그러자 내 마음속의 목소리가 말한다. 거봐, 이렇게 하길 잘했잖아? 그때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어. 그때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창수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창수야, 그걸 누가 돈 주고 보냐고? 4만 명이 넘게 왔는데?

그런데 이렇게 마무리가 좋으면 모든 게 좋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들으면서도 참아야 하는 순간이다. 직장, 조직, 군대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기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도 그냥 넘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몇 달 전 나도 그런 일이 있다.

우리 집 전기밥솥에 문제가 생겼다. 김만 새고 밥이 되질 않았던 거다. 할 수 없이 그 밥솥을 들고 AS센터를 찾아갔다. 유명한 회사라서 그런지 그곳에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때부터 갈등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온 밥솥들을 보니 모두 번쩍번쩍한 최신형인데 우리 집 밥솥은 10년이나 된 구형이었으니 비교가 될 수밖에. 꺼내놓기도 민망하다. 접수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내 번호가 불린다. 그래도 이왕 가져왔으니 고쳐가자고 마음먹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어요?”
“김만 새고 밥이 되질 않아요.”

밥솥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AS기사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고무 패킹이 삭아서 그렇습니다. 패킹은 소모품인데요. 다른 건 문제없으시죠? 금방 교환해 드릴게요.”

금방 끝난다니 용기내길 잘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AS기사가 쓸데없는 소릴 지껄인다. “아이고, 밥솥을 엄청 오래 쓰셨네요. 조만간 하나 사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우르르 내 밥솥에 쏠린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우씨, 내가 사고 싶으면 사는 거지.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 제품을 이렇게 오랫동안 사용해줬으면 나한테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입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인간의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 뒤에 있던 다른 사람의 밥솥을 보더니 똑같은 말을 한다.

“아이고, 고객님 제품도 마찬가지네요. 오래 쓰셨으니까 이젠 바꾸셔야죠.” 그러자 밥솥을 가져온 아주머니의 얼굴이 조금 전의 나처럼 빨개진다. 그녀도 밥솥을 들고 나처럼 망설였을 텐데. 못된 인간 같으니라고. 새로 사야 된다고? 웃기고 있네. 나는 고장 날 때까지 쓸 거다. 그리고 새것을 사도 너희들 제품을 사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다. 당신이 이런 말을 하는데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겠어? 생각 같아서는 그 인간과 한바탕 일전이라도 벌이고 싶었지만 흥분된 마음을 꾹 눌렀다. 내가 아니어도 여기서 ‘갑 질’ 할 사람은 충분히 많을 테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집 전기밥솥을 볼 때마다 자꾸 그 인간이 떠오른다. 만약 그 인간이 우리 집 밥솥을 들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우와, 우리 제품을 이렇게 오랫동안 사용해 주시다니 고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자, 여러분 여기 이 밥솥은 10년 동안 사용한 제품입니다. 여러분들도 충분히 10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제품의 자랑입니다. 이 고객님께는 저희가 보답으로 패킹(6천원)을 무료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한사람 때문에 제품이 좋아지기도 하고 혹은 회사 전체가 싫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이런 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전기밥솥을 기회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따뜻한 말들을 했을까? 한숨이 나오는걸 보니 그동안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한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한다. 특별히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뭐든 적극적으로 좋아하기로. 그리고 그걸 좋은 말과 함께 마음껏 표현하기로. 처음엔 힘들겠지만 노력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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