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한 보험회사에서 고객의 걱정을 덜어주는 ‘걱정인형’을 선보인 광고를 했다. ‘걱정은 내게 맡기라’며 과테말라에서 전해오는 ‘워리 돌(Worry Doll)’에서 착안해 광고와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이를 상품화해 출시했고, 많은 고객들은 자신의 걱정을 가져가 주길 바라며 인형에게 걱정을 털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보험회사는 걱정인형 덕분에 기업 홍보는 물론 브랜드이미지 상승에도 좋은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매일 밤 사람들의 한숨과 걱정을 들어야 하는 걱정인형은 얼마나 피곤했을까.

매일 밤 사람들의 걱정을 가져가는 ‘걱정인형’을 자처한 사람들이 있다. 걱정인형이야 주인이 자신의 걱정을 말하니 들어준다지만 그들은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남 걱정이 지나치게 많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자신의 일인양 참견하고 간섭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표현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내 코가 석자’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한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한 아파트에 몇 년 이상을 살아도 이웃사촌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마주치는 게 전부인 이웃은 서로 어색할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이웃’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블로그에서 이웃을 맺고, 아파트 단지나 동네주민 카페에 가입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SNS 등을 통해 언제든지 상대방의 상태가 확인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전과는 다른 개념의 이웃관계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더욱 폭넓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 같다. 오히려 흉이 될까봐 털어 놓지 못했던 고민들을 온라인상에서 솔직히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오지랖 넓은 사람은 어디가나 표가 난다.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관심이 너무 지나친 탓에 자신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힘들다. 좋은 마음으로 한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기분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이 무슨 일이든 참견하고 간섭한다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들리지만 나쁜 의미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때론 오지랖 넓은 사람 때문에 어떤 문제가 개선되기도 하고,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생기는 모습이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면도 많다. 사람에게 무관심한 것보다 타인의 일에 깊이 공감해 주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솔선수범하는 성향이 훨씬 좋을 수 있다.

다만 할머니처럼 남 걱정에 깊은 주름이 생기지 않으려면 오지랖 이후 스스로 마인드 관리가 돼야 한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슬픔의 반이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슬픔을 나눈 상대방이 반을 가져가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 하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듣는 사람이 ‘걱정인형’처럼 그 힘든 감정을 나눠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힘든 이야기를 하는 사람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더 힘들 수 있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느라 자기 내면의 이야기에는 소홀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혼자 걱정하고 맘 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나의 오지랖 덕분에 남 걱정이 내게 맡겨졌으면 내 마음 사후관리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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