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사면의 득실 객관화 해봤으면

김학용 주필
“후세의 임금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에 따르기를 힘써서 경사가 있으면 사면을 한다. 그러면 권귀(權貴)에 줄을 대어 비밀리에 뇌물을 써서 요행으로 죄를 사면시켜 주기를 바라니 다시 징계할 수 없다. 이것이 도둑들에게는 다행이겠으나 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원통함만 더할 뿐이다. 어찌 경사를 함께 한다 이르겠는가? 나는 비록 사면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어리석은 백성에게만 베풀고 녹을 먹는 사람에게는 베풀지 말아서 염치를 기르고 기강을 새롭게 하는 것도 경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이익 성호사설>

이익 “사면 없애지 못하면 어리석은 백성에게만 베풀어야”

“수많은 범죄가 묵과되는 것은 퇴폐한 국가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로마공화국에서는 원로원도 집정관들도 절대로 특사(特赦)를 내리려 하지 않았다. 사면이 빈번하다는 것은 조만간 범죄에 대한 사면마저 필요없게 된다는 징조이며,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으리라는 것도 익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 어느 한 구석에서는 붓대를 꼭 잡고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지금까지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고 따라서 한번도 사면의 필요성을 느낀 바 없는 정의로운 사람에게 맡겨두자.’”<루소 사회계약론>

“사면은, 이익은 작고 해로움은 크기 때문에 오래되면 그 화(禍)를 감당하지 못한다. 사면은 도망가는 말의 고삐를 버려두는 것과 같고, 사면하지 않는 것은 부스럼과 등창에 약과 같다. 백성에게 큰 과오가 없는 것은 사면이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작은 과실을 마음대로 사면하면 백성들이 중죄를 많이 범하니 이는 작은 과실이 쌓인 결과다. 백성에게 은혜와 사면을 베풀면 감옥이 꽉 차고 죄인을 죽이는 일이 많아져도 간악함을 감당하지 못한다.”<관중 관자>

당태종 “인(仁)을 꾀하는 자는 커다란 인[大仁]의 적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면은 소인의 다행이요 군자의 불행이니 일년에 두 번 사면하면 선량한 사람이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한다. 잡초를 기르는 것은 아름다운 곡식을 해치는 짓이며, 죄가 있는 사람을 사면하는 것은 어진 백성을 해치는 짓이다’고 하였다. 제갈량이 촉나라를 다스릴 때 10년 동안 사면하는 일이 없었어도 촉나라는 크게 변화되었다. 양무제(梁武帝)는 사면을 자주 했는데 마침내 망했다. 대개 인(仁)을 꾀하는 자는 더 큰 인[大仁]의 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천하를 가진 이래로 절대로 사면하지 않았다.”<당태종 정관정요>

동서를 막론하고 사면 찬성론자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사면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논란이 된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과거에도 사면이 자주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사면의 해악과 부작용을 알면서도 사면이 자주 시행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사면은 권력자가 가진 ‘대중적인 정치 수단’

사면은 권력자가 가진 대중적인 정치 수단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는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된다. 민심을 얻지 못한 권력은 불안하다. 사면은 민심을 얻는 좋은 수단이다.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주는 데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권력자라면 사면의 유혹을 피해가기 어렵다.

독재 권력조차 민심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정통성과 도덕성이 부족한 권력일수록 사면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 때는 사면이 가장 자주 이뤄졌다. 사면은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지금 대통령들에겐 지지율이 곧 자신의 정치적 파워다.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은 힘을 쓰기 어렵다. 허수아비가 되기 십상이다. 사면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대통령이 인기가 떨어졌을 때도 사면이 이용되곤 한다.

국민통합 명분에 ‘득인심(得人心)의 수단’

국민통합은 사면의 좋은 명분이다. 한두 번의 실수로 죄인의 처지를 면치 못하는 국민을 온전하게 만들어주어 생활하고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는 정권이 민심을 얻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국민통합의 목적이 된다.

이번 사면에는 딱 한 번의 음주운전으로 고통을 받던 사람도 구제되었다. 딱 한번이라도 음주운전을 하면 사면 없이 법대로 처벌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칙이다. 하지만 상습적인 음주운전이 아니라면 사면을 통해 처벌을 감해줄 수도 있다는 의견에 차마 “그것도 안돼!”라고 몰인정하게 굴기는 어렵다.

그런 사면마저도 안 된다는 것이 사면 반대론자들의 생각이다. 전례를 보면 사면 때마다 음주운전은 포함됐다. 이제 국민들은 한번 정도의 음주운전은 법대로 끝까지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가는 끝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희미해지게 돼 있다.

한번이라도 음주운전을 했다가는 가혹한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록 1회 음주운전에 대한 사면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음주운전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높아지게 돼 있다. 음주운전 사고와 희생자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착한 의도의 ‘선정(善政)’이 불러오는 화(禍)다.

우리나라 국민은 법을 우습게 여긴다. 웬만한 문제에선 법을 지키는 사람이 도리어 바보다. 사면은 ‘법 무시 풍조’도 부추긴다. 법이 무시되는 나라에선 경제 발전도 사회 안전도 그만큼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경제 기여’ 명분 사면 ‘기여-부패’ 영향 따져봐야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사면에선 정치인과 공직자는 제외됐고 기업인도 ‘엄선’해서 일부만 포함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포함시키면서 한화와 LIG회장은 뺐다. 이전과 비교하면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적용된 사면으로 평가된다.

국민통합, 민생, 경제 기여 등 사면의 명분은 맞다. 효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의 크기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음주운전 사고가 사면과 어느 정도의 함수관계를 갖는지, 기업 총수의 사면이 기업 부패와 경제 기여 어느 쪽에 더 영향을 주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한때 사면은 ‘정치인 사면’이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권력자가 내 편만 봐줄 수 없으니까 상대편도 끼워넣고, 정치인만 풀어주기 어려우니까 경제인과 일반 국민까지 포함시키는 식의 사면이 많았다. 이런 식의 사면은 안된다. 사면의 득과 실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따라 사면의 기준과 원칙도 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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