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업인(22)] ‘백세인’ 만든 ㈜한국흑홍삼 대표, 파벽 기술 개발…이젠 ‘유통과의 전쟁’

식물세포파벽 혁신기술로 기존 홍삼보다 사포닌 함량 200% 높은 흑홍삼 개발 성공
국내 최초 식약처 허가 받은 나노표기 건강기능식품1호 탄생…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한때 대기업 및 중소유통업자 농간에 쓴맛도…‘유통과의 전쟁’ 시작
국내 인삼산업발전 위한 ‘인삼테마파크’ 조성 꿈 ‘시대적 사명감’

 


‘인삼의 세계화는 나의 사명이다. 사명을 위해 25년이라는 긴 항해를 했고, 인삼세포 파벽기술을 개발, 세계화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한국흑홍삼 이창원 대표(52)가 회사 홈페이지에 자신의 꿈을 향한 여정을 간략히 적은 글이다.

국내 최초로 인삼세포 파벽기술 개발. 인삼 제조 대기업의 유통 및 판매 방해. 일부 중소 유통업자의 농간 등에 십 수 년 간 느낀 처절한 쓴맛. 이 대표가 1990년부터 인삼에 뛰어 든 후 겪은 숱한 시련들이다.

그가 개발한 기술은 인삼세포벽 파쇄에 의해 사포닌이 더 많이 함유된 홍삼을 통째로 먹는, 영양 손실이 없는 가장 뛰어난 방법이다. 물론 국내 최초의 신기술이자 ‘돈’이 보이는 사업이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유통업자들이 달려들었다. 속는 셈 치고 맡겼다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다른 엉뚱한 업체가 짝퉁 제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시련을 맛봤다. 지금도 이 유통업체는 이 대표가 개발한 제품을 겉포장까지 똑같이 만들어 판매해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 이 유통업자와 본격적인 ‘유통 전쟁’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원천기술을 개발하고도 그동안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이유는 무얼까. 인상 좋고, 사람 좋기로 주위에 알려진 그의 인간성을 되레 역이용한 업자들로 인해 그는 자살까지도 고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겐 가족을 넘어 고려인삼의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목표가 남아 있었다. 긴 시련의 터널을 나와 이제 본격적으로 ‘내 것’을 찾아 진정한 고려인삼의 세계화를 외치려고 한다. 지난달 말 그의 고향이자 공장이 있는 홍성에서 그를 만났을 때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고향인 홍성에서 시작된 ‘인삼의 세계화’ 꿈을 향한 여정

이 대표는 충남 홍성의 작은 농어촌 마을 출신이다. 그가 인삼 분야에 올인하게 된 것도 인삼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영향이다. 학창시절에는 가수가 꿈이었다. 그의 집무실은 여전히 고가의 각종 악기들로 장식돼 있었다.

이 대표는 1990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다가 손을 움켜쥐고 무릎을 치며 “바로 이거다!”라고 외쳤다고. 신문기사엔 홍삼 전매제가 폐지된다는 짤막한 내용이 보도됐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홍삼 전매제가 1996년 6월 30일자로 폐지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당시 기사 내용을 보는 순간 가슴이 떨렸고, 인생의 목표가 새롭게 결정됐다”고 했다.

이때부터 인삼 관련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국립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4년을 공부했다. 하지만 인삼을 공부하면서 희망과 걱정이 교차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인삼에 관한 지식과는 정반대의 내용이 많았기 때문.

그는 “고려인삼은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물이자 세계적 명품 아니냐”면서도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인삼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누군가 시대적 소명의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생명의 뿌리인 고려인삼을 지켜내고 국제적 위상을 회복시키는데 한계가 있을 것처럼 보였다.

1000년 고정 관련 ‘붉은 색 홍삼’의 틀을 깨다

고정관념을 깨고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어떻게 하면 증삼(홍삼화) 과정에서 천금같은 인삼의 진액이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 대표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통상 증삼 과정에서 인삼의 진액 중 약 50% 정도가 소실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해결책을 찾아 삼출수 발생이 없는 증삼 공법 개발에 착수했다. 주위에서는 “수백 년 동안 답습해 왔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사서 고생하느냐”며 만류하기도 했다.

성공한 CEO들이 그렇듯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쉽게 갈 수만 있을까. 이 대표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인삼 관련 공부를 하면서 수백 번을 찌고 말리고 분석했다. 그렇게 반복적인 연구를 7년간 이어갔다.

그는 결국 1996년 기존의 홍삼보다 사포닌 함량이 200% 증가된 흑홍삼 개발에 성공했다. 특허도 받았다. 그는 “1000년 동안 내려 온 ‘홍삼은 붉은 색이다’라는 고정관념의 틀을 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의 과제가 다가왔다. 인삼은 수용성 물질이 약 50% 정도로 열수 추출시 그 절반이 버려진다는 것. 어떻게 하면 내린 홍삼 본연의 모든 영양소를 통째로 이용할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세상이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올인했다.

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은 만만치 않았다. 또 다른 의문이 시작됐다. 기술 개발이 쉬웠다면 기존 홍삼 회사들이 증삼과 추출 등 홍삼 제품 제조과정에서 고유성분이 약 70%나 손실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겠는가.

고민과 연구 끝에 식물 세포벽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

‘식물세포벽 물질은 셀룰로즈, 즉 섬유질이다. 이 물질은 체내에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추출시 물 분자가 용이하게 세포벽 내로 침투하지 못해 유효물질을 쉽게 얻을 수 없다.’

방법은 오직 하나, 식물의 뼈에 해당하는 세포벽을 여는 것이라고 봤다.

‘일반추출보다 파벽추출이 350% 정도 홍삼 성분 함량이 높아지고, 전체 성분의 생체이용률이 극대화된다. 체내 섭취된 용해물질은 2차 대사물로 효율적으로 전환돼 보다 뛰어난 고려인삼의 효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인삼의 효능은 사포닌 외에도 수많은 비사포닌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또 다시 9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이때는 그에게도 어느 정도 인내심의 한계를 절감하는 시기였다.

홍삼 전체성분의 생체이용률 극대화한 ‘파벽기술’ 개발 성공

그는 2003년 드디어 식물세포파벽 나노기술을 개발 완료했다. 이듬해인 2004년 8월 고향인 홍성에 GMP 설비를 갖춘 공장을 건립했다. 인삼농장을 운영하며 연구기술을 견고히 했고, 우여곡절 끝에 국내 최초의 나노 표기 건강기능식품 1호 제품이 식약청 품목제조허가를 받고 탄생했다.

그는 꿈의 식품으로 ‘미니멀리즘(최소한주의)’, ‘일물전체식’ 등의 다양한 기술로 인삼의 세계화를 실현해 가고 있다.

이후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M&CT(분자및세포독성학회지, 2007)와 IJMS(국제분자과학학회지, 2008)에 SCI 논문을 경희대 한의대, 순천향대와 공동으로 발표해 국제적으로 기술의 우수성도 인정받았다. 한국 흑홍삼의 세계화 진출 기반을 다진 셈.

그는 세계 최초 파벽발효 흑홍삼 특허기술을 보유한 공으로 2007년 12월 11일 한국신지식인협회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국내 첫 인삼가공분야 신지식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는다. 올 들어 지난달 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15 세계명품인증 글로벌럭셔리어워드 시상식에서도 신문화신창조기술 대상을 수상한다.

그는 영양의 효율적 가치를 존중하는 ‘내추럴 힐링 파벽전체식’이라는 새로운 영양학을 완성했다고 자부한다. 이런 자부심은 1937년 세계 최초 비타민C 분리추출과 1999년 식품활성인자(Food Vital Factors) 발견으로 각각 노벨의학상을 받은 센트 되르디와 귄터 블로벨 두 거장의 과학적 학문이 기술의 토대가 됐다.

즉 자연 그대로 조성된 영향의 효율적 가치를 존중하는 네추럴힐링 파벽발효전체식이란 새로운 영양학을 완성했다는 것.

그는 “식물세포의 벽을 깨고 발효를 더해 흡수율을 최적화시킨 파벽발효기술은 인삼의 생명력을 담아내는 최상의 건강법”이라고 했다.

이젠 판매·유통 성장통 극복 위한 몸부림

모든 일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은 순간, 또 다시 큰 시련이 닥쳤다. 기득권을 가진 유통과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된 것.

이 대표는 작년 12월 회사명을 NT&BT㈜에서 농업회사법인 ㈜한국흑홍삼으로 바꿨다. 여기엔 수많은 아픈 사연들이 있다. 이 대표가 “초창기 14년간은 파벽발효 흑홍삼을 개발하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면 이후 11년간은 유통 부분에서 타인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홍삼 제조 대기업과의 처절한 사투였다. 이 대표는 1990년대 중후반 당시 TV에서 드라마 황진이가 뜨자 자사 홍삼 제품인 ‘황진이’ 브랜드에 대한 홈쇼핑 판매 제의를 연이어 받았다. 이후 2006년 A홈쇼핑 측과 판매 계약을 맺고 2만개의 제품을 제조해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A홈쇼핑 측에서 갑자기 판매를 거부했다. 이유를 알아본 결과, 인삼 관련 국내 대기업의 ‘갑질’로 인해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된 것. 이 대표는 2만여 제품의 제조비용을 고스란히 날렸다. 이 대표의 파벽발효 흑홍삼 제품의 기술이 알려질 경우 대기업이 자사가 만드는 제품의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두 번째 시련도 곧바로 닥쳤다. 당시 경희대 한의대 연구진이 찾아와 파벽기술을 극찬하며 브랜드명에 ‘경희대’를 넣기로 합의한 뒤 만든 또 다른 제품을 B홈쇼핑 측에 판매키로 했다. 하지만 이때도 5000상자의 완제품을 만들어 출시를 앞두고 있었으나 판매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역시 대기업의 갑질이 숨은 이유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두 번의 완제품 출시 후 좌절을 겪는 사이 살던 집도 어느새 70평대에서 원룸으로 줄어 있었다. 서울 한강다리 위에서 몇 차례 극단적인 선택도 고민했었다. 

C업체와 유통 판매 시작 그리고 ‘배신’

수차례 판매 유통에서 좌절을 겪은 이 대표에게 2013년 4월경 가까운 지인과 연이 닿는다. 이 지인은 기획부동산 분양과 휴대폰 매장 등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자신의 아들을 소개했다. 이 지인의 아들 L씨와 그 친구 S씨와 흑홍삼 판매를 시작한 브랜드가 바로 ‘C업체’다.

L씨와 S씨가 새 사업을 모색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들과 한 배를 탄 것. 이 대표는 사실 인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 두 사람에게 제품 기획부터 판매까지 모든 걸 가르치며 논의해 가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지난 23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C사의 홈페이지 쇼핑몰에 담아 2013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흑홍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C사는 그렇게 지난 1년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온라인에서 고가(高價)가 먹히지 않는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깬 것. 온라인에서도 고품질 전략이 먹힐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업계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대표가 개발한 파벽발효 흑홍삼의 효능에 대한 입소문이 난 탓이 컸다.

L씨와 S씨는 이 대표와 연을 맺은 후부터 제조 관련 많은 정보를 습득했다. 2014년 초중반부터는 흑홍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은밀하게 이 대표가 만든 제품의 ‘짝퉁’ 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C사 대표 S씨는 이 대표에게 10여 종류의 새 제품을 개발토록 독려하는 연막도 폈다고 한다. 이처럼 ‘이중 플레이’를 하는 사이 C사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

이 대표는 “C사는 군사작전을 펴듯 비밀리에 내가 개발한 신상품 배합비율과 상품명 등을 도용, 사전에 어떠한 통보도 없이 흑홍삼의 짝퉁 제품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이 같은 사실을 안 건 올해 1월말쯤. 당시 C사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퇴사한 뒤 이 대표에게 납품 제의를 하면서부터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이 대표가 그 직원에게 계속 캐묻자 “C사는 이미 짝퉁 제품을 만들어 물류창고에 입고를 마치고 설 명절 특수가 발생하기 전에 온라인과 가맹점에서 일시에 판매키로 했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C사는 곧바로 짝퉁 제품의 판매를 강행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지인의 아들이 나를 기만하고 속인 것은 물론 자존심마저 무참히 짓밟은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아들 같은 젊은이들의 인격은 고사하고 그 부친과의 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이 친구들이 양심의 가책마저 느끼지 않는데 대해 정말 참담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표는 C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젊은 사업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한다. C사와 독점공급계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타사에서 제품 공급요청이 오면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던 그다. 또 경쟁사의 트집잡기와 블랙컨슈머의 민원까지도 이 대표가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여기다 지난해 8월 말 중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인삼포럼에 의장으로 초대받아 갔을 때도 C사의 브랜드를 직접 나서서 홍보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C사의 모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흑홍삼과 관련한 모든 제품의 디자인을 이 대표가 직접 개발해 만든 디자인을 그대로 쓰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개발자와 제조사를 바꿔도 소비자들이 모르도록 꼼수를 부렸다”고 했다.

또 C사는 최근까지 자신들이 판매하는 흑홍삼의 모든 인터넷 판매처를 이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 주소로 명시해 놓기까지 했다. 혹시 모를 각종 민원 등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 

이 대표는 “지금도 C사의 홈페이지에는 이 대표가 7년간 799번의 실험을 한 인삼 개발 역사를 그대로 도용해 쓰고 있다”며 분개했다. 그러면서 “짝퉁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사실을 정작 소비자들이 모르고 있어 답답하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C사가 이 모든 사실이 들통났음에도 불구, 여전히 이 대표가 개발한 흑홍삼 제품을 마치 자신들이 개발한 것처럼 소비자들을 속여 판매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이 대표는 “C사가 한국흑홍삼의 짝퉁 제품을 만들어 가맹점과 온라인 등에서 판매하면서 올해 약 2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며 “젊은 친구들과 ‘통상적으로 한 계약’을 악용해 나를 곤경에 빠트리는 처사에 화가 나는 것은 차치하고 소비자의 알 권리와 인삼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이제 이 모든 실체를 알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짝퉁 제품을 먹는 소비자들과 가맹점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은 물론 고려인삼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 이번 사태의 본말을 만인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인삼의 세계화 위해 ‘인삼테마파크’ 조성 꿈

C사와의 아픔을 딛고 지난 25년간 준비한 대한민국의 보물인 고려인삼을 단독 테마로 세계 시장에서 해가지지 않는 고려인삼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게 이 대표의 꿈.

이를 위해 글로벌융복합 한국인삼산업단지, 즉 ‘인산테마파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여기에는 ▲홍삼건강기능식품 ▲일반 홍삼식품 ▲홍삼화장품 ▲홍삼술 ▲인삼을 테마로 한 생활용품 ▲아트(공연) 등 6가지 테마를 결합한 인삼파크를 구상하고 있다. 부대시설로 온천 워터파크가 결합된 호텔숙박시설을 비롯해 생산, 제조, 판매 및 체험장과 함께 역사, 문화, 전시·공연 등 볼거리가 있는 말 그대로 ‘인삼랜드마크’를 건립하겠다는 것.

그에게 인삼은 인생 그 자체다. 국내는 물론 세계인을 불러 들이는 건강기능식품부터 일반식품, 화장품, 테마온천욕 등 인삼으로 끝나는 삶을 추구하겠다는 것. 그의 부드러운 인상에는 이미 인삼으로 시작해 인삼으로 끝을 맺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배어 있다.

이 대표의 이런 꿈은 6차 산업화는 물론 3농혁신의 하나다. 그와 인삼을 얘기하면서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쳐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듯이 그에게 인삼은 이미 미쳐 있는 대상 그 자체였다.

기자와 헤어지면서 인삼 하나로 시작해 인삼의 세계화는 물론 세계 최대 규모의 인삼테마파크가 지어지는 그날이 ‘꿈’만은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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