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반년 넘도록 정례기자회견 없어

어제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취임 1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1년간의 성과를 발표하면서 기념 기자회견을 가진 곳이 많다. 회견을 당겨서 한 곳도 있고, 그간의 성과와 계획을 자료로만 내놓은 곳도 있다. 재선의 안희정 지사는 민선 6기에서 1년을 보냈으니까 재임 5주년이다. 그런데 충남도는 관련 기자회견도 없었고 성과 자료도 내놓지 않았다.

취임 1주년 그냥 넘긴 안희정 지사

기념일에 맞춰 기자회견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회견을 하는 게 정상이다. 충남도도 애초엔 일주일 전에 회견을 할 예정이었으나 메르스 때문에 연기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그동안 안 지사가 기자회견을 기피해온 점에 비춰보면 메르스는 구실에 불과해 보이고 유네스코 방문도 회견의 연기 사유는 못 된다.

도청 출입 기자에 따르면 안 지사는 작년 말 송년회견 이후 ‘정례 회견’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당진-평택 도계분쟁 사건이 불거지면서 어쩔 수 없이, 그것도 뒤늦게 기자들 앞에 섰고, 메르스 정국을 맞아 다른 시도지사들과 함께 메르스 브리핑을 한 것 빼고는 없다. 정례회견을 통해 일반 도정 현안을 도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는 6개월이 넘도록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본인이 매주 기자브리핑을 갖고 있고, 이시종 충북지사도 매월 3회 정도는 도정 현안을 가지고 기자들을 만난다. 권선택 대전시장도 기자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안 지사가 가장 만나기 어렵다.

SNS 참여엔 활발 도청 기자들에게만 인색

충남도는 정무부지사가 매주 기자브리핑을 하고 실국장들도 자주 브리핑을 하기 때문에 굳이 도지사가 자주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한다. 진짜 이유로 보긴 어렵다. 안 지사는 민선 5기에 취임하면서 도지사 위에 도민을 놓은 ‘거꾸로 된 직제표’를 만들었다. 도민을 진정한 주인 즉 오너로 섬기겠다는 뜻이었다.

회사로 치면 도민은 ‘오너 회장’이고 도지사는 ‘월급 사장’이다. 사장이 회장을 진정으로 받들어 모신다면 사장이 자기 부하를 시켜 회장에게 보고하지는 않는다.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사장이 직접 회장에게 보고해야 맞다.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늘 아래 사람에게 ‘대타 보고’만 시킨다면 그 사장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부지사가 직접 도지사에게 보고해야 될 일을 늘 국장이나 과장을 시켜 보고하게 한다면 도지사는 그런 부지사를 인정하겠는가?

취임 1주년인 1일 안 지사의 업무 일정을 보면 월례모임(오전9시)과 충남국방발전협의회 출범식 참석(오후 5시)이 전부였다. 도지사의 공식 일정으론 회견조차 못할 정도로 바쁜 날은 아니었다. 안 지사는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있는 외부 특강은 거의 빠지는 법이 없다. 거기에 들이는 시간의 반만 할애해도 월 1회 정례 회견이 가능하다.

안 지사는 기자회견을 기피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도청 출입기자들이 정례회견을 자주 하자고 요청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 소통을 강조하는 도지사라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중앙언론과는 인터뷰 등을 통해 잘 소통하는 편으로 보이고 SNS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청 기자와 도민들에게만 인색하다.

기자회견 기피 ‘도정 비정상’ 증표 아닌가?

그가 적극 발언하는 분야는 주로 ‘정치’ 쪽이고, 현재 자신의 본업인 ‘도정’에 관해선 소극적이다. ‘중앙 정치’에 관심이 많고 ‘도정’에는 거의 무관심한 사람처럼 보인다. 도지사로서 언론을 대하는 태도만 보면 그런 의구심까지 갖게 만든다.

기자회견 기피는 충남 도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표일지 모른다. 회사에서도 업무 실적이 좋지 않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 간부는 업무보고 시간이 두렵다. 나도 그런 경험이 많다. 지금 안 지사가 도지사로서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은 혹시 아닌가?

도지사의 정례회견은 자신의 주인인 도민들에게 정기적으로 업무보고를 하면서 도민들의 의견도 듣는 자리다. 도정이 원활하지 못하면 피하고 싶은 자리지만 대부분의 단체장은 아무리 거북해도 기자회견까지 회피하지는 않는다. 안 지사가 유독 심하다.

도지사 회견 안하면 도정 더 나태해져

도지사가 기자회견을 피할수록 도정은 더 어렵게 돼 있다. 업무 보고도 제대로 못하는 간부가 실적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과 같다. 업무보고조차 안 하면 업무는 더 게을러지기 쉽고 성공할 일도 실패로 끝나기 쉽다. 황해경제구역 지정 실패나 당진-평택 도계분쟁도 느슨한 업무가 화를 불렀다는 평가가 많다.

안 지사는 도정의 현황을 직접 도민들에게 보고하며 협조를 부탁해야 한다. 도지사의 브리핑은 부지사나 간부의 브리핑과 차이가 크다. 같은 말이라도 발언의 무게와 책임감은 천양지차다. 부지사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브리핑한다고 해도 도지사 자료와 부지사 자료는 공무원의 준비 과정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안 지사는 자신의 약속대로 도민을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 도민에 대한 업무보고인 정례기자회견부터 성실하게 해야 한다. 대통령도 아닌 도지사가 간부에게만 보고를 시켜놓고 자신은 빠지는 식으로 도민을 대하면 안 된다.

기자회견 기피는 도민들 우습게 여기는 것

외부 특강 가서 대학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도 좋기는 하다. 하지만 자신의 본래 업무인 ‘도민 보고’는 게을리 하면서 특강에만 공을 들인다면 도지사 본분을 게을리 하는 것이다. 잘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고 남의 회사 대표가 된 뒤,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기 일에 신경을 쓴다면 어떤 오너가 이해하겠는가?

기자회견은 단순히 도지사가 기자들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다. 도지시가 도민과 소통하는 기본 수단이다. 따라서 도지사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취임 1주년, 재임 5주년은 도지사 자신이 축하받을 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간의 성과를 도민들에게 보고하는 날이다.

벌써 수개월째 ‘도정 보고’를 안하고 있는 안 지사가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고 있다. 혹시 그게 도민들을 우습게 보는 데서 연유한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계속 이런 식이면 도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안 지사는 기자회견을 정상화하고 도정에 매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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