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공무원 정기인사 철이다. 상반기 정년퇴직과 명예퇴직으로 공직을 떠나면 그 빈자리로 승진하고, 연쇄적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정년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로연수’까지 포함하면 인사 폭이 커진다.

공로연수는 ‘정년퇴직예정자의 사회적응능력을 배양하고, 기관의 원활한 인사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정년 잔여기간 6개월 이내인 자를 원칙’으로 하되, ‘본인의 희망이나 동의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6개월 초과 1년 이내인 자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년퇴직예정자의 사회적응능력 배양’이라는 목적을 앞에 내세웠지만, ‘기관의 원활한 인사운영을 위해’, 즉 한 사람이라도 빨리 승진시키려는 목적이 더 진실에 가깝다.

이러한 공로연수제도는 “퇴직예정 공무원에게 일을 하지 않음에도 급여를 주는 것은 ‘무 노동 무 임금 원칙’에 반하는 폐단”이라는 주장과 “승진을 바라는 후배를 위해 길을 터주는 효과가 있다”는 두 가지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공로연수, 퇴직 후 사회 연착륙 준비? 후배들 승진 길 터주기?

그렇다면 과연 공로연수제는 타당한 이유를 갖는가? 우선 퇴직 후 사회 연착륙(軟着陸)을 돕기 위해 ‘보상 겸 준비기간을 준다’는 이유는 타당성을 갖는다. 대다수 공직자들은 공무에 전념하느라 퇴직 후 준비를 하기 어렵다. 퇴직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당황하게 되고, 사회물정에 어두워 피해를 당하기 십상이다. 사회 적응 준비 기간을 둔다는 취지에서 본다면 분명 필요한 제도이고 그런 배려쯤은 있어야 한다.

후배들에게 승진의 길을 터준다는 것도 맞다. 공무원도 승진을 갈망하는 직장인이다. 상위직급에 자리가 비는 날을 손꼽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상위직급의 선배가 자리를 차지한 채 머뭇거리지 말고 알아서 비켜주기를 바란다. 후배인 자기도 얼마 후에는 같은 처지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이 인정머리가 없는 것 같지만 그런 현실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이 적정한자는 의문이다. 평생 동안 봉직한 공무원을 대다수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공로’라는 이름을 붙여 등 떠밀어 내보내듯 하는 것이 과연 이에 합당한 대우인가? 더욱이 연수대상자가 승진을 바로 앞둔 경우라면 이 제도의 덫에 걸려 승진대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집에서 세월을 보내다 정년을 맞이하게 되는 사정도 개의치 않는다. 그 기준에 걸린 대상자는 승진을 못하고 다만 후배가 1년 내지 6개월 승진을 빨리하게 될 뿐이다.

인사적체 해소라는 효과도 한 번에 그치고 만다. 조삼모사(朝三暮四)요 입도선매(立稻先賣)와 다를 바 없다. 일하지도 않는 공무원에게 ‘말년 장기휴가’와 급여를 주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무원에게만 있는 특혜성 제도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내년부터 민간기업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규정을 법제화하는 추세에 맞지 않을뿐더러, 시범이 되어야 할 국가나 지자체에서 이를 지속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과도 배치된다. 봉급을 주니 퇴직시키는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 봉급은 국민의 부담을 수반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반 공무원보다 정년 긴 교사나 교수 공로연수제도 시행하지 않아

공로연수 시행도 기관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우선 여러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반면 실시하지 않는 기관도 상당수에 이른다. 대상 직급도 달라서 대부분 6급 이하는 제외하고 5급 또는 4급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기간은 6개월에서 1년인데, 이 기간도 직급에 따라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이 제도의 취지가 타당하고 효과가 좋다면, 실시하지 않는 기관이나 대상에서 제외되는 하위직에게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공정한가? 또 직급별로 차등을 두어 상위직은 장기간 하게하고 상대적으로 하위직은 단기간 실시하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가? 결국 상위직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미 전국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공로연수 발령을 받은 공무원이 소송을 제기하여 직장에 복귀함으로써 혼란을 준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일반직 공무원보다 정년이 2년 내지 5년이 긴 교사나 교수는 공로연수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공로연수 기간 중에도 공무원의 신분을 유지하기 때문에 자칫 법을 어기면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부인이 하는 사업을 돕다가 겸직근무위반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연수’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한 채 집안에서 맴돌게 하거나 등산이나 다니도록 하면서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경계인’신분으로 변질되게 만들었다. 앞으로 보완한다는 이유를 대겠지만 오랫동안 그래왔고, ‘일단 그렇게 내보낸 사람’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퇴직 아닌 퇴직 상태로 있다가 정년퇴임 날 식장에 나가는 것이 쑥스럽다하여 퇴임식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따라서 퇴임식자체가 없어지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공무원 휴가기간 확대해 이 기간에 퇴직 후 준비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도자체가 법적으로 불완전하면서도 인사운영의 수단이 된 공로연수제는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 다만 이왕에 관행화되고 당장 폐지가 어렵다면 우선 기간을 6개월 이내로 단축해야 한다.

대전광역시와 몇 개 구에서는, 20년 이상 재직자에게는 20일, 30년 이상은 30일의 휴가를 주는 ‘장기재직공무원 안식휴가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휴가기간을 확대하여 이 기간 중에 퇴직 후를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연수’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퇴직 후에 활용할 수 있는 자격증 취득과정이나 실제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자체교육기관에 설치 운영하거나 사회교육기관에 위탁하는 방안을 찾아보고, 은퇴자들의 생활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저녁노을이 더 붉듯이’ 수 십 년 쌓고 경험한 노하우를 퇴임 시까지 쏟아 붓다가 정년을 맞이하고, 박수를 받으며 평생을 바쳐 일한 직장의 문을 뿌듯한 마음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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