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지역민에 걱정 끼치는 정치 오래 못가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어수선한 지역 정치권에 대한 충청권 의원들의 역할과 책임이 커지고 있다.
#1. 며칠 전 충청향우회 오장섭 총재와 만나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근 터진 ‘성완종 리스트’와 그 여파로 낙마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해 언급했다.

이곳저곳에서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느라 곤혹스러웠다는 말도 했다. 그가 누구인가. 3선 국회의원에 건설교통부장관을 지냈다. 64세의 초로(初老)에도 5000여명의 충청향우회를 이끄는 수장이다. 따라서 그가 내쉰 ‘한숨’을 개인적인 감정으로 볼 순 없다.

식사 중간 중간 그의 ‘무용담’을 듣는 내내 감탄사가 나왔다.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니 왠지 모를 서글픔도 떠밀려왔다.

“전북 군산과 충남 장항을 일컬어 ‘군장지구’라고 한 적이 있었지. 그걸 왜 군장지구라고 부르냔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의원할 때 ‘장군지구’로 고쳤어. 그런데 얼마 지나니까 도로 군장지구가 됐대. 지금 누구하나 이걸 문제 삼고 고치려는 의원이 없어. 쯧쯧.”

#2.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12일 헌정 사상 최초로 정부 예산 미반영 사업을 추려 모아 백서를 발간했다. 타 지역에서 접수하지 않은 건수를 따져보면 별 차이가 없다지만 충청권에 미반영예산이 단연 많았다.  

최근 충청권 의원들이 특별교부세 확보 소식을 앞 다퉈 홍보했다. 기자는 얼마 전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기사를 썼다. 특교세는 정부가 의원들에 대한 선심성 지원으로 변질된 면이 없지 않다. 그걸 두고 의원들은 “다 내가 했다”는 식이다. 하긴 그조차 못하는 의원들도 있으니 욕을 하긴 어렵다.

의원들께 묻고 싶다. 국회 예결위가 펴낸 백서에서 확인됐듯 충청권은 꽤 많은 사업을 정부 예산에 반영하지 못했다. 그건 누구 책임이냐고.

#3.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 상황은 국민들(지역민)에게 걱정만 끼치고 있다. 이완구 전 총리는 14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소위 이 전 총리와 ‘친하다’는 의원들은 성완종 파문 이후 옴짝달싹 하지 않고 있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만든 충청포럼은 또 어떤가. 그가 죽고 난 뒤 “난 충청포럼이 뭔지 모른다. 일방적으로 가입된 것”이라며 발을 빼려는 인사를 여럿 봤다. 단언컨대 그런 정치인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이 전 총리가 검찰에 소환되는 날, 서울에선 충청도 정치의 대부인 ‘JP’(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일대기를 담은 화보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JP는 이 자리에 참석은 하지만 현실정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근현대사 충청 정치사에서 JP는 존재하는 신화다. 이완구든 성완종이든 다 거기서 나온 가지고, 줄기다. 노구(老軀)로 ‘해결사’는 어렵더라도 ‘현자(賢者)’는 될 수 있지 않은가.

어린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부모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회초리를 맞았다. 그러면 할머니가 다가와 꼭 끌어안으며 “다신 안 그런다고 빌어”하며 편들고 감싸며 달래는 게 가족의 모습이다.

지금의 난관을 풀어갈 인물이 없다고만 푸념할 게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할을 할 사람도 있고, 찾질 않아 그렇지 대성할만한 신예도 곳곳에 많다.

똘똘 뭉쳐 지혜를 모으려는 노력보다 “나만 잘되면 되지. 굳이 앞에 나설 필요 있나?”는 마음이 커 보인다. 의원들의 특교세 확보가 대단하다면, 날마다 공부하는 학생이나 새벽바람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나 밤잠 못자며 아이 키우는 부모는 위대한 것이다.

적게는 한 개, 많게는 여섯 개까지 가진 의원 배지를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부끄럽다는 생각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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