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돈과 권력 - 종교 시민운동의 차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을 생각하면 자꾸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연상된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돈을 벌 때는 천한 일이라도 하면서 벌고 쓸 때는 떳떳하고 보람 있게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돼 있다. 돈에 관한 말이지 정승 얘기는 아니다.

그럼 정승이란 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 속담을 뜯어보니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이 속담의 주제인 돈을 권력이나 지위로 치환해도 뜻이 통한다. ‘상가집 개처럼 (비루하게 권력을) 얻었어도 (훌륭한) 정승처럼 잘 써야 한다’는 말로 바꿔도 말이 된다.

구차하고 매정한 돈과 권력

권력을 얻는 방법은 구차하고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 더 높은 권력자에게 애완견처럼 굴다가도 그가 힘이 떨어지면 그를 물어뜯는 투견이 돼야 한다. 뇌물과 배신은 다반사요 때론 사람까지 죽이는 게 정치다. 과거 정치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한 서울시의원은 살인교사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구차하고 매정하기는 돈도 권력과 다르지 않다. 대단한 부자일수록 그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를 알게 되면 존경심이 사라진다. ‘개처럼 벌어서~’라는 말은 돈을 버는 방법과 수단의 비열함까지 용인하는 뜻이 포함돼 있는지 모른다. 단순히 하찮고 천한 일로 돈을 버는 것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빌 게이츠는 ‘Window Xp’가 훌륭한 데도 Window7을 내놓고 Xp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는 욕을 먹으면서 그런 방법으로 큰 돈을 번다. 어떤 교수는 사석에서 이런 빌 게이츠에 대해 나쁜 놈이라고 거품을 물었다. 나도 공감했다. Window7은 신제품이지만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Xp에 대한 서비스가 중단되니 어쩔 수 없이 신제품을 써야 한다.

빌 게이츠는 그렇게 번 돈으로 엄청난 기부를 하고 있다. 못되게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셈이다. 물론 그는 그 많은 돈을 평생 써도 다 쓰기 힘들다. 기부가 돈으로 평판을 사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엄청난 부자라도 기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정승처럼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정승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면 가장 좋겠지만 돈이라는 게 정승처럼 버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빌 게이츠의 방법이 욕은 먹지만 경제적 관점으론 문제가 없는 경제 행위이다. 돈의 속성이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비열한 방법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권력(지위)을 얻는 방법과 쓰는 방법 4가지

정치도 그렇다. 정치에도 권력(지위)을 얻는 과정과 권력을 쓰는 과정이 있다. 경우의 수로는 모두 4가지다. 첫째는 정승다운 방법으로 권력을 얻어서 정승처럼 행사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천자의 자리를 사양했던 유능한 임금 요순이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에서 어렵다. 집권 과정이나 승진 과정이 비교적 떳떳하고, 목표를 이룬 뒤에도 도덕성을 잃지 않으면서 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둘째는 비록 비루하고 비겁하게 자리를 얻었어도 권한을 정승처럼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다. 현실에선 이게 최고 수준의 정치일지 모른다.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선 욕을 먹더라도 일단 자리를 차지하면 자기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자리를 차지하기까지는 간 쓸개 다 빼주고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결국 목표를 이룬 뒤에, 뭔가를 보여주는 유형들이다. 보기는 드물지만 이런 정치인들도 분명 있다.

셋째는 정승의 방법으로 권력에 올라 개처럼 구는 경우인데 그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의롭게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더럽히는 행동을 할 까닭이 없다. 대신 ‘정승의 탈’을 쓰고 자리에 올라 본색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은 부지기수다.

넷째는 자리를 얻을 때도 그 권한을 쓸 때도 ‘정승’이 못 되는 경우다. 누군가에게 뇌물을 바치며 아첨과 아부로 자리를 차지한 뒤에 이젠 본인이 뇌물을 요구하거나 세금을 훔쳐 먹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성과도 없이 물러나는 딱한 인생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류일 것이다.

정치는 과정 못지않게 ‘결과’가 중요

우리 지역에도 책임이 무거운 정치인과 관료들이 많다. 힘깨나 쓰는 기업인들도 꽤 있다.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에도 무시 못 할 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가게 된 과정이나 과거를 너무 따질 필요는 없다. 개처럼 벌더라도 정승처럼 쓰면 된다.

문제는 정승의 자리에 가서도 정승 노릇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떳떳하고 정당하게 그 자리를 획득했어도 제대로 정승 노릇을 못하면 그 조직과 사회를 망치게 된다. 차라리 욕을 먹으면서 자리를 얻었어도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게 더 낫다.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은 정적의 우두머리(환공)를 죽이려다 실패했으나 친구(포숙아)의 천거로 정적의 우두머리한테 재상 자리를 얻었다. 떳떳하지 못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룬 성과 때문에 공자는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오랑캐(미개인)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에서 결과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결과만 가지고 평가해선 안 되지만 성과가 없다면 실패한 지도자다. 자리를 얻는 것보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다. 현재 무거운 책임을 진 지도자들은 늘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 종교 시민운동 언론에선 ‘과정’이 더 중요

늘 결과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교육 종교 시민운동 언론계 등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들은 윤리를 저버리는 순간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사기꾼 같은 교수의 강의를 어떻게 믿겠는가? 교회가 권력을 빌려 교세를 확장한들 신앙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권력의 도움을 받는 시민단체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겠는가? 광고와 기사를 바꾸는 언론사의 기사를 누가 믿어주겠는가?

요즘 대전시의장과 몇몇 시의원들의 행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당사자들은 왜 그 자리에 갔는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할 일은 못하면서 떳떳하지 못한 청탁을 하러 그 자리까지 갔나? 정승 자리에 갔으면 정승 노릇을 해야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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