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호수공원 위해 갑천우안도로 몰래 되살려

김학용 주필
대전시가 추진하고 있는 호수공원 조성사업에는 5000여억 원이 들어간다. 아무리 따져 봐도 700억 원 정도- 1000억 원 이상으로 보는 의견도 있음- 모자란다는 게 대전시의 계산이다. 700억 원의 조달 방안을 찾지 못하면 사업이 어렵다. 

호수공원은 불요불급한 사업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대줄 리 없고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돈도 아니다. 지금으로선 700억 원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힘든 사업이다. 그런데 대전시가 그 막대한 돈을 손쉽게 조달하는 기막힌 꾀를 냈다. 시가 23일 발표한 ‘시(市)의 재정투입 없이.. 명품공원 조성’이란 부제를 단 보도자료는 문제의 700억 원을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대전시가 마련한다는 호수공원 부족분 700 억의 정체
 
대전시는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생각보다 쉬웠다. 당초 호수공원을 지나도록 돼 있는 폭 30m의 갑천천변고속화도로(좌안도로) 부지를 폐지함으로써 택지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다. 도로를 낼 땅을 택지로 파는 것이다. 폐지된 좌안도로는 현재 가수원4가에서 유성 쪽으로 뻗어있는 6차선의 ‘도안동(東)로’와 폭이 같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폭이 30m나 되는 대로(大路)를 함부로 없애버려도 괜찮은 것인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도안신도시는 지금도 교통체증이 매우 심하다. 도안신도시 인구가 도안동로에 의존하면서 심한 교통불편을 겪고 있다. 오죽하면 주민들이 도안동로의 시내버스중앙차로제를 없애달라고 소송까지 하겠는가? 호수공원 조성과 함께 5500 세대의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추가로 들어가면 교통지옥으로 변할 게 분명하다.

위아래로 3개의 도로가 보인다. 왼쪽은 현재 사용중인
호수공원 조성을 위해 도로 부지를 없앤다면 그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대전시의 ‘700억 원 해결 보도자료’는 이 부분에 대해선 일체 언급이 없다. 도로(좌안도로) 폐지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지 대전시에 물어봤다. 처음엔 “(충남대 정문에서 나와) 목원대와 건양대병원을 잇는 ‘도안서(西)로’가 완성되면 걱정 없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말이 안 되는 답변이었다. 동대문 쪽 교통이 혼잡한데 남대문 부근 도로를 넓힌다는 말 아닌가? 대전시 관계자는 결국 실토했다. 호수공원을 지나도록 돼 있던 ‘갑천좌안도로’를 ‘갑천우안도로’로 바꿨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도솔산 쪽으로 도로를 내겠다는 것이다.

갑천은 도솔산과 월평공원을 바짝 붙어서 흐르고 있다. 우안도로로 건설되면 도솔산은 심각하게 파괴될 수밖에 없다. 그 길이가 3.8km나 된다. 도솔산도 갑천도 다 망치는 최악의 도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안도로는 홍선기 시장 때부터 시민단체 등에서 결사반대했고 결국 대전시는 포기했다. 그런데 염 시장이 호수공원을 위해 이 우안도로를 몰래 되살린 것이다.

도솔산-갑천 망가뜨리는 '우안도로' 되살려

이런 내용이 담긴 도시계획 변경 고시가 2014년 5월16일자로 공고됐다. 염홍철 전 시장 때다. 임기를 불과 한 달 반 남겨 놓은 시점이다. 후임 권선택 시장이 지난주 보도자료로 내놓은  ‘700억 원 해법’ 아이디어도 이미 염 시장 때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700억원 해결’은 대전시로선 자랑거리였으나 도솔산과 갑천을 파괴하는 방법이라는 점 때문에 기자회견은 물론 보도자료도 낼 수 없었다. 도시계획 변경 자체를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염 시장 때 만든 관련 공고문은 마치 암호 같다.

작년 5월16일 공고된 ‘대전광역시고시 제2014-71호’ 9번 항목은 ‘도로 정비기본계획을 변경하여 기능이 중복된 도로 폐지’라는 설명과 함께 폐지되는 도로 구간을 ‘교통광장58호~대로3-58호 구간’(3817m)으로 표시했다.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이게 ‘갑천우안도로의 부활’이란 사실을 전문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지난주 대전시가 700억 마련을 자랑하면서 비로소 도로 폐지 사실을 공개했지만 그것이 ‘도솔산과 갑천 파괴의 대가’라는 사실은 아직도 숨기고 있다. 보통, 도시계획 업무의 경우 악용 가능성 때문에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갑천도로 문제 같은 경우는 전적으로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들어 추진할 사항이다. 비밀리에 추진할 일이 결코 아니다.

환경국장도 몰랐던 ‘갑천우안도 부활’ 도시계획

좌안도로 폐지는 도시계획위원회 등 법적 절차를 거쳤겠지만 시민들 몰래 추진한 게 분명하다. 지난해 말까지 2년 간 대전시 환경국장을 역임한 이택구 기획관리실장조차 ‘갑천우안도로의 부활’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모든 걸 환경단체와 긴밀하게 협조했다”면서 “우안도로든 좌안도로든 갑천천변도로 문제는 논의된 적도 없다”고 했다.

갑천과 도솔산의 생태계가 거덜나는 도시계획 변경을 담당 환경국장조차 모르게 진행했다는 뜻이다. 도솔산 쪽으로 계획된 갑천우안노선은 1990년대부터 논란이 됐던 지역 최대의 환경문제였다. 이런 사안을 다시 꺼내 쉬쉬하며 몇몇이 계획을 뒤집었다면 법적 절차를 거쳤다고 해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호수공원을 위한 도로계획 변경으로 갑천 우측 도솔산쪽으로 폭 30m의 도로가 나게 돼 있다. 도솔산과 자연생태습지 지정을 준비중인 갑천은 심각하게 파괴될 수밖에 없다.

대전시는, 좌안노선 폐지는 친수구역 지정 협의 과정에서 국토부 허락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천(갑천)과 호수공원 사이에 도로를 두면 공원과 하천이 단절되는 문제가 있는 만큼 도로를 없애는 게 낫다’는 게 국토부의 의견이었다는 것이다.

국토부가 정말 그런 의견을 냈는지 의문이지만 설사 사실이라 해도 좌안노선 폐지는 대전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선택이다. 더구나 좌안노선 폐지로 도솔산이 크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국토부도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토부가 도로 폐지를 받아들였다면 대전시의 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150만 시민들도 숨기는데 정부엔들 솔직했겠는가?

환경부는 2013년 8월 월평공원과 도솔산을 끼고 흐르는 갑천 일대를 습지보호 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대전시와 합동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갑천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도심 속에 위치해 있는 습지생태계다. 천연기념물인 미호종개도 서식하고 있다. 700억 원은 도솔산과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과 맞바꾸는 돈이다. 중앙 정부가 그런 계획에 찬성할 까닭이 없다.

대전 같은 대도시에 제대로 된 호수 하나쯤은 있는 게 좋지만 도안호수는 그런 호수가 못된다. 하천 옆의 땅을 파서 물을 끌어들이는, 마치 커다란 둠벙 같은 ‘인공호수’다. 갑천에서 물을 끌어들여 가뒀다가 흘려보내야 한다. 수질 관리도 어렵고 운영비도 많이 들 게 분명하다.

호수가 정말 필요하다면 차라리 갑천을 막아 보(洑)처럼 만드는 게 낫다. 하천을 옆에 두고 뭐 하러 멀쩡한 논밭을 파서 ‘100% 인공호수’를 만드는가? 그런데도 대전시가 이런 호수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호수’보다는 ‘개발’이 목적이다. 누군가를 위한 개발이다.

물론 도심 한 가운데 수십만 평의 녹지(호수공원 부지)를 그냥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호수공원이라도 하지 않으면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도심 녹지의 난개발 우려 때문에 녹지 건너편의 도솔산과 갑천의 자연생태계를 완전히 망가뜨리면서까지 인공호수를 만들 수는 없다.

대전시는 호수공원에 쓰기 위해 도솔산과 갑천을 죽여 700억 원을 빼내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그 피해는 700억 원이 아니라 수천억 원이 넘을 수도 있다. 누구라도 제정신이면 이런 식의 행정은 하지 않는다. 도대체 호수공원이 누굴 위한 사업이길래 이렇게까지 하는가?

전임시장 따라가는 후임시장.. 700억 내용 알고는 있나?

호수공원은 심각한 교통문제와 치명적인 환경문제 외에 원도심과의 균형개발 문제도 있다. 대전시 전체 인구가 줄면서 빈 집들이 늘고 있고, 도안3단계처럼 기일개발 택지도 수요가 없어서 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택지 공급에 안간힘을 쓸 이유가 없다. 호수공원은 이런 현상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행정이다.

그런데도 전임시장은 호수공원 조성에 발 벗고 나섰었고, 후임시장도 그를 뒤쫓아 가고 있다. ‘폐지한 도로부지를 사업구역에 넣으면 사업비 700억 원 문제가 해결되므로 명품 호수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지난주 보도자료가 권선택 시장 몰래 나온 게 아니라면 권 시장은 염 시장 계획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중이다.

시장이 되기만 하면 전임자의 것을 무조건 뒤집으려는 세상이니, 전임 시장의 정책을 존중하여 따르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따라가선 안 되는 일까지 따라가는 건 미덕이 아니라 바보짓이다. 호수공원은 권 시장 자신의 공약도 아니었다. 권 시장은 ‘700억 원이 도솔산 파괴의 대가’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남의 재산을 몰래 훔치는 자를 도둑이라 한다. 150만 시민의 귀중한 자연환경 재산을 훔쳐 700억을 만드는 사람은 뭐라고 해야 되나? 시민들 모르게 비밀리에 중요한 도시계획을 변경하였다면 도시계획 도둑질이요, 도솔산 절도범 아닌가?

호수공원도 시민의 재산이요, 도솔산도 시민의 재산이니 절도범은 아니라고 하면 안 된다. 왜? 파괴되는 도솔산과 갑천은 전 시민의 재산이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최소 700억 원이 투입되는 호수공원은 누군가에게만 훨씬 많은 이익을 내는 ‘이권 사업’이다. 따라서 몰래한 도시계획 변경은 누군가를 위한 ‘도시계획 도둑질’이고, 이를 주도한 사람은 ‘도시계획 절도범’이다. 도시 계획 변경에 관여, 도솔산과 갑천을 훔쳐 판 주범과 공범을 밝혀 고발해야 한다.

전임 시장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호수공원에 집착하였나? 호수공원은 도대체 누굴 위한 사업인가? 거기에 덩달아 춤을 추는 후임 시장은 또 뭔가?

대전환경운동연합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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