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신상필벌 강조하는 신임 총리

김학용 주필
이완구 총리가 처음부터 ‘악역 총리’로 나서는 것 같다. 신상필벌이 취임일성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공직개혁의 시작은 공직기강의 확립이라고 생각하며 신상필벌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했다. 신상필벌이 강조될 때는 ‘필벌’에 방점이 가 있는 법이다.

“조직 기강 위해 신상필벌 해임건의권 행사”

첫 국무회의에서는 공직기강에 대한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이 총리는 “앞으로 총리실에서는 장차관과 청장 등 기관장의 노력과 성과를 상시 점검하고 연 2회 종합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기강이 해이하고 성과가 부진한 기관의 장차관, 청장 등 중앙행정기관의 장에 대해서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어진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과 인사조치를 포함한 지휘감독권을 엄정하게 행사하겠다”고 했다.

엄포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 총리로서는 군기를 잡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특단의 조치나 액션이 없으면 리더십을 상실하고 ‘식물 총리’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공직기강은 지금 이 총리가 쓸 수밖에 없는 카드다. 정치에선 선배격인 황우여 최경환 장관 등 일부 실세 장관들에 대해서도 상관(上官)으로서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도 담겼을 것이다.

정책 인심은 1인자가 쓰고 욕은 2인자가 들어먹는 게 현실정치에선 바람직한 역할 분담이다. 총리의 군기 잡기는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임기 3년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개혁 드라이브에 공무원들이 적극 협조해주기를 바라지만 잘 따라주지 않고 있다. 대통령에겐 누군가 총대를 메고 관료들을 휘어잡을 사람이 필요하다.

이 총리도 박 대통령도 필요한 ‘군기잡기’

대권을 잡으면 관료들을 금방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도 규제개혁 등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료와의 싸움에 지쳐가고 있는 상황이다. 전임 정홍원 총리는 이런 분야의 일에는 애초부터 적임이 아니었다.

새 총리가 ‘군기 반장’으로 나서고 있으니 대통령으로선 다행한 일이다. 이완구란 사람을 총리감으로 선택할 때부터 그 점을 유념해 봤는지도 모른다. 현역 의원으로 원내대표까지 맡고 있어서 인사청문회는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 점과, 거기에다 충남지사 등을 거치면서 보여준 ‘추진력’이 총리 발탁의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이른바 장(長)의 추진력은 종종 ‘악역’을 마다하지 않을 때 발휘된다. 이 총리는 충남지사 때 그런 능력을 보여주었다. 도청의 내포 이전 문제가 현안이었을 때 이 지사는 추진 일정을 지키지 못하면 담당국장은 사표를 내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안면도꽃박람회 때는 준비에 차질이 있을까봐 강하게 독려하는 이 지사 때문에 현장 책임자가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사표까지 냈다.

관료와 정치권에 ‘강한 총리’ 메시지

오늘은 국회 파트너였던 우윤근 대표와 만나 눈물의 상봉을 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아들 때문에 눈시울을 붉혔고, 세월호 가족을 만나서도 눈물을 훔쳤다. 이 총리는 눈물도 꽤 잘 흘리는 사람이지만 ‘악역’도 얼마든지 가능한 사람이다. 이 총리의 군기잡기가 시늉에 그치지는 않을 것 같다.

군기 잡기는 ‘강한 총리’가 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충남지사 때는 ‘강한 충남’을 모토로 삼았다. 이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총리실이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고 한 것도 ‘강한 총리실’을 주문하는 것으로 읽힌다. 역시 강한 총리에 대한 의지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서운할 수 있는 소리도 했다. 총리실 간부들에게 “국회 때문에 공무원들이 세종에서 서울로 몰려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총리실은 가능한 1급 이상 간부들만 국회 상황에 대응하도록 하고 이 같은 분위기가 다른 부처에도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치인 총리’가 아니면 초반부터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든 말이다.

내각은 물론이고 정치권(국회)을 상대로도 물렁한 총리는 되지 않겠다는 게 이 총리의 취임 메시지로 읽힌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도 강한 ‘실세 총리’를 주문했다. 대통령한테 쓴 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리도 “직언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에도 강한 ‘실세 총리’는 힘들어

하지만 그 점에선 의문이다. DJ와 정치적 파트너였던 JP를 빼곤 우리나라에서 그런 총리는 없었다. 이회창 총리가 정치판에 처음 들어와 대쪽 법관 이미지로 실세 총리 해보려다 바로 쫓겨났고, 이해찬 총리가 인재풀이 부족했던 노무현 대통령 때 실세 총리에 가깝게 보좌한 정도가 전부다.

이완구 총리가 ‘실세 총리’의 역사를 새로 쓰기는 힘들다. 정치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세 총리’는 불가능한 주문이다. 그러나 이 총리가 악역을 마다 않고 몸을 던져 노력해서 국정의 효율성을 크게 높인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업적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총리도 별로 없었다.

총리로서의 성공 여부가 군기잡기에 달린 것은 아니다. 기강확립은 수단일 뿐이다. 이 총리한테는 분명한 임무가 주어져 있다. 박 대통령은 어제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구조개혁과 경제혁신 등이 포함된 24개 개혁과제를 공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가늠하게 될 과제들이다. 이 총리의 성패는 이를 제대로 뒷받침해서 성공하느냐에 달렸다.

이 총리 ‘미래’는 총리로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총리로서의 성패가 그의 ‘미래’도 결정할 것이다. 이 총리는 도지사 때부터 ‘큰 꿈’을 꾸는 사람으로 회자되었다. 총리까지 올랐는데 ‘꿈’을 쉽게 포기할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에게 총리 이상을 꿈꾸는 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들도 많다.

하지만 역대 총리들이 하지 못한 역할을 보여준다면 그에게도 미래에 대한 도전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결점 때문에 처음부터 ‘미래’가 없는 총리로 출발한다면 뭔가 해보겠다는 노력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가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총리라고 해도 ‘미래’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은 먹히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결국 아무 일도 못하는 이름뿐인 총리가 되는 걸 원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를 총리로 앉힌 이상 총리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응원해줘야 하고, 이 총리는 이에 보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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