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충남도 노조가 성명서를 내는 진짜 이유

김학용 주필
충남도청에는 노조가 2개다. 훨씬 많은 직원들이 가입해 있는 ‘충남도 공무원노조’가 최근 단행된 도인사에 대해 혹평하는 성명서를 냈다. “충남도 인사는 전례없는 신적폐”라는 제목을 달아 성토했다. 아무리 잘해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게 인사다. 어떤 인사든 서운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자들이 내놓는 인사평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충남도 노조가 성명을 내는 진짜 이유

그럼에도 이번 성명서는 좀 센 듯했다. 노조에 사정을 알아보니 인사보다는 ‘도지사와의 불통’이 문제였다. 성명서는 도지사와 대화를 요구하는 수단이었다. 노조는 지사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만 지사가 응해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화는커녕 도지사와 마주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다. 성명서는 이번에도 헛수고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 지도부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안 지사가 대화와 토론을 강조하는 ‘대화론자’라는 점에서 노조와의 불통은 의외의 일이지만 필자가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다. 작년 초에도 노조는 “안 지사가 노조를 만나주지 않아 고충이 크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노조는 이번에도 “지사님이 도민들은 잘 만나는지 모르지만 안(도청 직원들)에서는 다르다”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도지사를 1년에 한번 만나기도 힘들다. 2010년 7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안 지사가 노조와 만난 횟수는 다 합쳐도 4~5 차례에 불과하다. 그 중 노조의 요구나 사전 약속에 따라 만난 적은 한 번뿐이다. 나머지는 도지사가 만나고 싶을 때 만들어진 자리였다.

2011년 12월에는 도지사와 노조가 분기별로 한번 씩 만나자는 데 합의했다. 그 약속에 따라 2012년 3월 한 차례 만난 뒤 사실상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약속대로라면 그해 하반기에 한 번 더 만나야 했으나 도지사로부터 10월까지 소식이 없었다. 노조는 비서실을 통해 2번이나 면담을 요청했지만 답이 없었다.

타 시도 노조도 놀란다는 ‘안 지사의 불통’

노조는 내부 통신망에 도지사가 만나주지 않는다며 항의성명을 냈다. 그래도 도지사의 반응은 없었다. 이후 양쪽은 한두 번 자리를 같이 한 적은 있으나 의미있는 면담은 없었다는 게 노조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도지사 얼굴 보기가 힘든 때문인지 만난 날짜와 횟수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전국 모임에서 간혹 충남의 사정을 얘기하면 타 시도 공무원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누구보다 대화를 외치는 도지사가 노조에겐 ‘불통 지사’로 불만을 사고 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는지를 거듭 물어봤다.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노조의 설명대로라면 안 지사는 노조를 잘 안 만나주고 있고, 노조는 그 이유조차 잘 모르는 상태다.

이 정도면 심각한 불통이다. 어떤 사안을 가지고 일시적으로 서로 갈등하고 소원할 수는 있으나 노조가 도지사에 대해 원인도 모르는 소통 장애를 겪고 있다면 중증이다. 노조는 “심대평 지사나 이완구 지사 때는 이렇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노조가 만나자면 언제든지 만나줬고 격의 없는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안 지사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노조

노조는 안 지사가 노조를 무시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럴 만한 일도 있었다. 2013년 내포 도청사 개청식에 각계 인사들이 초청됐지만 노조는 빠져 있었다. 작년 민선 6기 출범식에도 노조 자리는 없었다고 한다. 노조에겐 모두 도지사가 노조를 물먹인 행사였다. 이런 현상들도 도지사와의 불통 문제와 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노측의 불만이 이 정도면 사측인 안 지사가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만일 지사가 노조의 불만이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해도 변명이 될 수 없다. 무관심은 불통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자기 직원들이 뭘 고민하는지 관심조차 없는 도지사가 충남도와 충남도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안 지사의 소통 의지가 문제라고 본다. 노조 얘기를 들어보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나 안 지사가 노조를 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안 지사가 밟아온 길을 보면 누구보다 노조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에 지장이 없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 도지사가 보수적인 선배 도백들도 잘 한 노조와 소통을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최악의 상태에 빠진 내포의 충남도 직원들

‘노사 불통’으로 노조가 애를 태우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더 아쉬운 쪽은 도지사다. 안 지사가 자신이 내세우는 ‘3농혁신’ ‘행복한 충남’을 실현하는 데 가장 앞장설 사람들이 도공무원들이다. 이들의 머리와 손을 거치지 않으면 도정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충남도 공무원들의 사기는 최악으로 떨어져 있다. 도청을 대전에서 내포로 옮기면서 거의 전 직원들이 ‘악전고투’의 상태에 있다. 대전과 내포에서 두 집 살림을 하든 2시간이나 되는 출퇴근 전쟁을 치르든, 도 공무원들에겐 과거의 평범한 일상이 도리어 필사적인 목표가 되었다. 도공무원들은 “내포로 오는 순간부터 불행해졌다”고 말한다.

노조로선 지사와 면담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내포 청사 이전부터 그랬다. 그러나 지사에도, 노조에도 기대를 접은 직원들이 많다. 세종시 전입 경쟁에도 충남도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뛰어들었다. 직원들이 뛰쳐나갈 궁리만 하는 조직에서 무슨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안 지사는 노조와 머리를 맞대고 이런 문제들을 조금씩이라도 풀어야 한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해도 도지사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안 지사가 대권에 관심이 있다면 ‘노조와의 불통’ 문제는 대권후보로선 심각한 핸디캡이 된다는 점도 알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늘 주문하는 게 소통 아닌가? 안 지사 스스로도 대화를 외쳐오지 않았는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조직원들과도 대화를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길을 길을 갈지는 뻔하다.

요즘 대선 후보감들의 랭킹 조사에 안 지사 이름도 자주 오르내린다. 근래엔 5~6위권까지 올랐다. 그러나 안 지사 자신의 진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은 여론조사기관이 아니다. 국민보다 도민을 봐야 하고, 도민에 앞서 자신과 함께 지내는 직원들의 얼굴부터 살펴야 한다.

안 지사가 앞으로 대선후보가 된다면 가장 앞서서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도청 직원들이다. 그러나 서운하게 하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사람도 이들이다. 큰 꿈을 꾸고 있다면 노조부터 만나야 한다. ‘대화론자’ 안희정 지사는 적어도 노조에겐 가짜로 비치고 있다. 오해라면 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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