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불현 듯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연말이 되면서 충남도내 몇몇 시군에서 보건소에 근무하는 방문간호사에게 해고(解雇)통보를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과연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하는 심정에서 그렇다. 방문간호사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고령이거나 몸이 불편하여 집에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아오는 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부시장
비정규직인 이들을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면 인건비가 늘어나고, 다른 분야 비정규직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헤아려야 하는 담당부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혀 방안이 없는지, 그런 조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 아쉽기만 하다.

의료취약계층 가정 직접 찾아가 돌보는 방문간호사업 

방문간호사업은,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등 의료·보건인력으로 팀을 만들어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재가(在家)환자 등 의료 취약계층의 가정을 정기적으로 직접 찾아가서 돌봄 서비스를 하는 방식이다.

방문간호사들은 이분들의 건강실태와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예방관리하며, 치매 진단, 우울증 검사를 받을 수 있게 연계하여 주는 등 어려운 사람들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최 일선에서 그 역할을 맡아 하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몸과 마음이 아프고 외로운데 달마다 찾아와 건강을 보살펴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들어주니 때로는 자식들보다도 더 낫다”고 하는가 하면 “친절하게 돌봐주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일까지 도와주고 있어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취약계층을 위한 가장 필요한 사업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정부와 지자체에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시책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보건소 방문간호사들은 기존의 하는 일에 더하여 경로당을 방문하여 감성충만·행복충전·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서산시보건소는 병수발에 필요한 기저귀, 깔개, 파우더 를 지원하고 있으며, 경북의 한 보건소는 방문간호대상인 노인을 초청하여 ‘효도 건강나들이’행사를 열어 의료서비스의 모델로 호평을 받고 있다.

1995년 충남도가 전국 처음으로 방문간호사업 시작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방문간호사업은 지난 1995년, 충남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1980년 대 초에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지역의 출산과 임산부 관리를 위하여 보건소에 모자보건조직을 설치하고 점차 10개 시군까지 확대하였으나, 이후 민간의료기관이 확충되면서 보건소에서 출산하는 사례가 거의 없음에도 그 때까지 조직이 유지되고 있었다.

한편 보건소는 주민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자 운영하는 공공보건의료기관 임에도 원거리 지역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러기에 보건소는 이러한 계층을 위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착안한 것이 ‘방문간호사업’이었고, 이와 같이 기능이 변화된 모자보건조직과 인력을 보건사업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과 연계하면 하면 답이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모자보건조직이 있는 시군 보건소에서 이 조직의 정원 중 절반을, 없는 시군으로 조정하여 ‘방문간호계’를 설치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당시 이와 같은 조치는 행정의 패턴이 주민의 요구가 있기 전에 먼저 찾아가서 맞춤형으로 보살펴주고 애환을 들어주는 형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지자체의 부서 명칭에 ‘방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처음이었고, 대학의 간호행정학 교재 내용이 바뀌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들어 비정규직 인력을 보강하여 사업영역이 확대되고 방문대상도 늘어났다.

방문간호사 무기계약직 전환 대신 무더기 해고 칼바람

그러나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방문간호사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신분과, ‘얼마’라고 밝히기조차 부끄러울 만큼의 박봉을 받으면서, 어쩌면 휴머니즘을 발휘하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으로는 고사하고 무기 계약직 신분으로라도 전환되고픈 희망에, 오히려 해고라는 칼바람을 맞고 있으니, 그 사정을 누가 헤아려주어야 하는지 딱하기만 하다.

파리한 얼굴, 깡마른 손으로 방문간호사들이 찾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려운 이웃들이, 앞으로는 그들을 볼 수 없지 않을까 낙심을 하게 한다면 그 또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는 결코 축소하거나 중단할 수 없는 사업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그 가운데서도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도우미를 넘어 ‘천사’라고까지 불릴 만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방문간호사들이 주기적으로 불어오는 해고의 찬바람을 멎게 하고 안정된 가운데 일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심정에 성원을 보낸다. 이미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 조치한 여러 자치단체의 사례를 기대의 끈으로 삼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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