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권오덕 전 대전일보 주필..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헌사

6,25부터 현대에 이르는 60-70대 어른들의 자화상
전 가족, 전 연령층이 함께 보며 즐길 수 있는 영화
윤제균 감독의 뛰어난 역량, 출연진 열연 이끌어 내
흥남철수 파독광부 월남파병 이산가족상봉 생생 묘사
평론가-기자 대부분, 정부홍보 영화라며 작품을 폄하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영화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6,25전쟁부터 현재까지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꿋꿋하게 가족을 지켜온 가장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지난 12월 17일에 개봉해 12일 만에 400만을 돌파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더욱이 영화성수기인 12월에, 그것도 일찌감치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와 다큐영화로 화제를 뿌리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헐리웃 대작 ‘호빗:다섯 군대전투’를 제치고 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6,25한국전쟁 당시의 흥남철수와 파독광부, 월남전파병, 이산가족상봉 등 가족들에 대한 희생으로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온 이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헌사다. 필자는 지난 12월27일 이 영화를 봤다. 비교적 눈물을 잘 흘리지 않은 필자지만 몇 장면에서 눈물을 뿌리고 말았다. 내 옆자리의 아내와 앞뒤 젊은이들의 훌쩍거리는 소리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도 눈시울을 붉혔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장면, 장면이 너무 리얼해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관객층은 20-30대로부터, 50-60대, 60-70대까지 다양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21일 일찌감치 이 영화를 본 것은 의미 깊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부산 국제시장을 찾는 고객이 평시보다 2-4배 늘었다니 반갑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요즘인지라 더욱 그렇다. 나는 이 영화가 내년 1월까지 1000만 명 돌파가 무난하리라고 믿는다. 1700만 명을 넘어선 ‘명량’에 얼마나 근접할지가 관심거리다.

이 영화의 성공요인은 무얼까. 우선 재미가 있다. 감독 윤제균은 이미 1000만 관객을 동원한해운대(2009년)를 비롯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 두사부일체(2001년)등을 통해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인바 있다. 나는 이 세편을 모두 재미있게 봤다. 젊은 감독(1969년생)이 꽤 장래성이 있어 보였다. 이중 해운대는 5년 전 1000만 명을 돌파해 한국 최고의 재난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내 생애 가장...’이나 ‘두사부일체’도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국제시장의 윤 감독 연출은 빼어나 덕수 역의 황정민이나 달구 역의 오달수, 영자 역 김윤진의 열연을 이끌어 냈다. 굴곡진 현대사의 주요순간들을 잘 묘사해 장대한 서사시를 만들었다. 특히 퍼스트신과 라스트신은 진한 감동을 낳았다. 컴퓨터그래픽을 가미한 퍼스트신은 혹한 속의 흥남부두를 실감 있게 묘사했다. 주인공 덕수가 아버지 영정 앞에서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근대 정말 힘들었습니다“라고 독백하는 라스트신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흥남철수작전은 중공군의 대규모공세를 피해 1950년 12월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 간 미군 10군단과 우리 1군단이 흥남 항에서 선박 편으로 물자와 병력, 그리고 10만 명의 피난민을 태워 남으로 철수 시킨 군사작전이다. 이 영화는 24일 한국인 현봉학이 에드워드 포니대령과 미 10군단단장 에드워드 아먼드 소장을 설득해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서 군사물자를 버리고 1만4천명의 피란민을 태워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영화에서 역사적 전환점이 된 순간순간마다 유명 인사를 삽입한 것도 기발한 착상이었다. 미국영화 포레스검프에서 착상한 듯싶다. 국제시장에 정착한 덕수가 구두닦이 할 때 마침 정주영 현대건설사장이 지나가다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며 격려하는 신이나, 60년대 초 앙드레 킴이 국제시장을 찾아 복지를 사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또 덕수가 돈 벌기 위해 월남전에 뛰어들어 정글에서 위기의 순간 해병대원 가수 남진에게 구출 받는 장면도 웃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1980년대의 이산가족 찾기다. 덕수는 헤어진 아버지(장진영)를 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동생 막순이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홀로 떨어진 막순이는 부산의 어느 고아원으로 보내져 미국으로 입양된 후 주름이 진 50대에 이르러 가족을 만나게 돼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화상통화에서 한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귀 뒤의 점과 갖고 있던 소매가 찢어진 작은 저고리를 보고 오열한다.

국제시장은 전 연령층이 함께 보고 느낌을 같이 할 수 있는 영화다. 20-30대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웃음코드에, 40-50대는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 당자인 60대 이상은 그 시대에 대한 향수와 추억에 감동한다. 따라서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랄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인터스텔라’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같은 가족코드 작품이다. 윤 감독은 주인공 덕수와 부인 영자라는 이름을 자신의 부모 이름에서 따왔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혹평했다. “별 하나 주기도 아깝다” “쓰레기 같은 시나리오다. 남북분단에 파독광부, 월남전까지 이 산만함을 어찌할꼬” “그때 그 시절 회상하는 건 참겠지만 겉핥기식 중후 장대한 역사공부는 이제 그만할 때다”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홍보영화에 다름 아니다. 돈과 시간이 아깝습니다” 영화를 자기 취향에 따라 혹평하는 건 어디까지나 표현의 자유지만 조금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관객은 계속 몰린다.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 같은 혹평이 당연할지 모르지만, 보수나 중도적인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로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도 드물다. 또 오늘날 코리아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우리 아버지세대들이 자랑스럽고, 또 이를 재미있게 다룬 영화가 반갑기만 하다. 영화평론가들의 이 같은 악평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다. 이들은 평론가 이름을 대 놓고 막말을 퍼부을 정도다. 한마디로 이들을 ‘속빈 강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실 우리 영화계는 10여 년 전부터 진보, 또는 좌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예술계 전반에 걸쳐 그렇다. 음악, 미술, 문학 등 거의 모든 장르가 그렇다. 영화제작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올 청룡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변호인’을 비롯해 ‘그때 그 사람’ ‘화려한 휴가’ ‘남영동 1985’등 좌파시각의 영화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러나 보수 우파 시각의 영화는 눈을 씻고 볼 래야 볼 수 없었다. 사실 국제시장도 엄밀히 따지자면 우파시각의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우파시각 영화라면 파독광부 간호사 대목에서 당시 박정희얘기가 나와야하고, 월남파병 장면에서도 더욱 디테일하게 홍보내용을 넣었어야했다. 그러나 감독은 이를 자제했다. 돋보이는 대목이다. 나는 영화를 영화의 시각에서 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크게 바꾸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은 광복 70주년이다. 아마도 보수우파적시각의 영화가 적잖이 나올 텐데,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