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의 읽으며 만나다]

 
 ‘세월은 잘 간다 /가는 세월 원통하구나 /제가 떠난 것이냐 누가 떠민 것이냐 /더럽게 남았구나 나는 비겁하게도 남았구나 / 주머니 속 지전 몇 장에 팔려 세월 가는 줄 몰랐구나’

-김사인의 '적폐(積幣)가 아니라 지폐(紙幣) '중에서

세월은 잘도 흘러 또 12월이 되었다. 그간 게을렀던 나는 몇 편의 글을 쓰고 지웠다 결국 올리지 못 했다. 그러나 이 책만큼은 꼭 권하고 싶어 올해도 다 간 지금 힘겹게 쓴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봄을 잃었다. 남의 나라에서 버린 배가 규제완화로 수입되어 보수는커녕 화물을 더 실을 수 있게 개조된 채 200명이 넘는 생때같은 아이들을 포함한 304여 명의 사람들을 삼키고 내 나라 바다 앞에서 가라앉았다.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구조는 국가의 의무이다. 배가 침몰한 이후 ‘700명의 구조인력과 239척의 함정이 투입된 역대 최대 규모의 구조작전’ 은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 했다. 구조에 책임을 진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물러났던 총리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언제든 만나주겠다는 책임자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고, 유족들이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하는 자리에서 단체로 피자를 먹는, 인간이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문학계가 일어났다. 세상사에 늘 한 걸음 물러 나 있던 ‘칼의 노래’의 김훈 작가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벼락 맞듯이 들어서’ 작가들을 모아 팽목항으로 향했다. 박민규를 비롯한 김애란 · 김행숙 · 황정은 등의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쓴 세월호이야기를 묶은 ‘눈 먼 자들의 국가’ 라는 책이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왔다. 

이제 이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별다른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박민규의 '눈 먼 자 들의 국가' 중에서

고은 시인을 비롯한 69명의 시인들은 ‘문학은 본래 세상의 약한 것들을 위한 것이고 세상의 가장 위태로운 경계에 대한 증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그치지 않고 분노하며 끈질기게 싸울 것이다.’ 라는 서문 아래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는 시집을 내 놓았다.    

못 박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태는 / 올가을이면 /내년 봄이면 파묻어버릴 사태가 아닙니다일백 년 내내 애도해야합니다 / 죽은 꽃들을 그 앳된 초록들을 / 이내 피눈물의 새끼들을 망각을 물리치고 불러내야하겠습니다         고은 ‘이름 짓지 못한 시’ 중에서  

슬픔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 / 냉정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 / 체념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 /용서로 가다 다시 분노가 / 사랑은 바닷속에 처박히고 / 사랑을 바닷속에 처넣고서 / 이제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겠는가          박철 '이제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겠는가' 중에서 

세월은 이렇게 보내도, 세월호는 왜 이대로 보내어서는 안 되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 나는 올해 우리 지역을 방문했던 프란체스코 교황이 2009년 발생했던 크로마뇽 화제 참사 5주년 미사에서 했던 말을 기억했다. 

“우리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 일 년도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쩌면 울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무너지고 삶이 무너진 부모가, 애타고 애끓는 가족들이, 친구들이, 이웃들이, 힘없는 국민들이 참담하게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말이란 무엇인가, 잊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질문들이 한숨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뜬구름이 되어 버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질문은 지상의 것입니다.                                         김행숙의 '질문들' 중에서 

세월호가 지상에 남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이 비극은 멀지 않아 다시 되풀이 될 것은 물론이고, 이 비극은 우리의 삶과 모든 가치 속에서 다른 비극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두 권의 책 ‘눈 먼 자 들의 국가’ 는 인세와 판매수익 전액이,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는 판매수익의 일부가 기부된다고 하니 연말을 맞아 꼭 한 번은 읽어 보라고 전하고 싶다. 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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