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모형열차’에 혼자 들어간 시장

누군가 나서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200층 건물을 대전에 짓겠다고 하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초고층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지역 경제력을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대전은 그런 건물을 지을 만한 조건을 갖춘 도시가 아니다. 200층을 지을 만한 자본과 기술이 있어야 하며 그 건물을 이용할 만한 고객이 있어야 한다.

대천루-하나로(마을철도)-트램의 공통점

2005년 말, 당시 권선택 의원은 대전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200층 사업인 ‘대천루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00% 불가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황당공약이었다. 대천루 추진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42%가 넘었고 찬성도 50%를 넘지 못했다. 좋은 얘기지만 현실성은 없다는 의미였다.

지역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시장후보의 비전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장이 되어서도 대전시 조직과 예산을 200층 사업에 투입한다면 시민들은 한숨이 나올 것이다. 권 시장의 트램(노면전차)은 대천루 프로젝트를 연상시킨다.

그는 금년 시장선거 때는 트램 공약에 앞서 ‘하나로(路) 방식’을 제안했다. 기존 1호선에다 여러 개의 지선(支線)을 트램으로 연결하자는 아이디어였다. 2호선이 꼭 독립 노선이어야 하느냐는 발상 전환의 시도였지만 트램에 호의적인 전문가들조차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며 퇴짜를 놓았다.

‘하나로’는 마을버스 개념을 도시철도에 도입한 것으로 이른바 ‘마을철도’를 놓자는 것이었다. 권 시장이 대덕구에 시범노선으로 놓겠다는 ‘스마트 트램’도 여기에서 나온 것 같다. 마을철도는 도시철도가 기본적으로 도시의 간선 교통시설이란 점을 망각한 발상이다.

트램의 명분 ‘환경’과 ‘교통약자’ 그러나...

트램 명분은 크게 ‘환경’과 ‘교통약자’ 2가지다. 그러나 둘 다 실효성은 의문이다. 권 시장은 트램이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과 다르다. 트램은 승객이 지하도나 육교를 오르내릴 필요가 없다는 게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나 휠체어 이용자에게 편리한 점이다. 

그러나 노약자도 트램 이용을 위해선 승용차가 달리는 도로와 레일을 가로질러 건너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 교통문화가 ‘스쿨존 서행’을 모두 준수할 정도로 확 바뀌지 않는 한, 트램은 교통약자에겐 목숨을 걸고 이용해야 하는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노약자들이 신호등이 있는 도로를 횡단할 때 아슬아슬한 장면을 지금도 종종 목격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교통약자를 위한 트램이 되려면 기존 도로를 승용차도 시내버스도 화물차도 다니지 못하게 하는, 오로지 트램만을 위한 도로로 바꿔야 한다. 권 시장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가? 2호선의 승용차 도로를 폐쇄하고 트램 전용도로로 하겠다는 것인가?

이는 제1의 대중교통수단인 시내버스까지 죽이는 것이니 불가능한 선택이다. 트램을 깔아도 승용차와 버스가 그 옆을 달릴 수밖에 없고, 교통 약자들도 그 도로의 건널목을 횡단하면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트램이 교통약자를 위한 수단이란 시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인구 150만 러시아 카잔시 트램을 철거한 이유

그렇다면 트램의 명분은 ‘환경’이 전부인 셈인데, 경제성까지 고려하면 건설비도 운영비도 훨씬 저렴한 BRT 신설이나 시내버스 강화가 최선이라는 논리 앞에선 궁색해진다. 결국 트램은 환경을 내세워 승용차 이용을 강제로 억제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차량 1대당 인구수(2014년)에서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은 1.3~1.7명, 우리나라는 2.56명이다. 우리는 앞으로 차량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대전시의 교통체증도 훨씬 심해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부터 멀쩡한 도로에 레일을 깔고 승용차 통행을 방해하는 게 올바른 전략일까? 나는, 지금 대전시가 ‘환경’을 위해서 ‘교통’을 그 정도까지 희생시켜야 할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전일보는 며칠 전 인구 150만 명의 러시아 카잔시(市)가 교통체증이 심해져 기존의 트램을 걷어내고 고가(高架)나 지하철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는 러시아 연방 관계자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기계연구원의 자기부상열차 수입을 위한 MOU 체결을 위해 대전에 왔었다. 러시아가 카잔시민들에게 더 이상 승용차를 이용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대신 트램을 철거한 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 같은 결정일까?

시 홈페이지에 이어지는 시민들의 탄식..트램 찬성 댓글은 0건

2호선 얘기가 나오면서 노선 주변의 아파트값이 올랐다고 한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생긴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정책 하나에 울고 웃는 게 보통 시민들이다. 도시철도라는 중요 정책조차 주민들 생각은 아랑곳 하지 않고 시장 맘대로 결정해버리면 시민들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전시 홈페이지 ‘시장에 바란다’에는 권 시장의 트램 결정과 관련, 13개의 댓글이 올라와 있다. 트램 결정에 동조하는 글은 한 건도 없다. 모두 권 시장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과 하소연이다. 그 중에는 권 시장을 지지하고 아끼는 사람으로 안타까움을 표하는 의견들도 있다. 

트램에 찬성하는 듯 보이던 시민단체도 트램 추진에는 발을 빼고 있다. 트램 말고 시내버스 서비스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환경이 명분이라면 그게 맞다. 트램은 명분은 있어 보이지만 그 실효성이 의문시 되고, 무엇보다 현실성이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도시에서 트램 도입을 시도한 도시는 여러 곳이지만 성공한 곳이 없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예산을 타내야 할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장(長)과 공무원 괴리 이처럼 심각한 적 없어

그런 트램을 권 시장이 혼자 끌고 가는 상황이다. 시민도 시민단체도 심지어 공무원들조차 시장 편이 아니다. 권 시장은 시의회 기자단 지역경제원로까지 만나 의견을 듣는 체하면서 정작 공무원들 얘기는 듣지 않았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권 시장의 트램 결정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서 알고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권 시장은 측근 2~3명과 함께 트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이 독불장군식으로 추진하는 사업들이 꽤 있었지만 장(長)과 조직원의 생각까지 이 정도로 괴리된 경우는 없었다. ‘경청’을 내세우던 시장이 그 주인공이니 아이러니다.

트램을 유럽의 노면전차 같은 ‘낭만적인 도시철도’ 쯤으로 여겨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방식이다. 실질적으론 교통약자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진정 ‘친환경’이 목적이라면 트램이 아니라 2호선 포기가 맞다. 그렇지 않다면 전임 시장이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

트램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갈 수는 없는 길이고 갈 이유가 없는 길이다. 권 시장은 하필 그 길을 선택했다. 시장후보 때는 대천루나 하나로 같은 황당 공약을 내걸어도 그러려니 하지만 시장이 되어서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행정 재앙’으로 이어진다. 시민들의 앞날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권 시장이 트램 결정과 함께 내놓은 대덕구의 ‘스마트 트램’이 경부선을 이용한 충청권 광역철도 노선과 겹치기 때문에 이 사업에 대한 정부 허가(예타)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트램이 다른 사업까지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권 시장의 정책결정 시스템에 큰 고장이 나 있는 게 분명하다. 트램은 뛰어난 수리공을 불러도 움직일 수 없는 ‘모형열차’다. 언뜻 보면 멋져 보일 수도 있으나 달릴 수 없는 가짜다. 권 시장이 거기서 내리지 않으면 임기 내내 ‘가짜 열차’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다. 대전시 행정과 대전의 미래가 함께 갇힌다는 게 큰 문제다. 하루빨리 누가 그를 꺼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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