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천의 확대경]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규제개혁이 뜻하지 않은 세월호 사고에 묻혀 외형상으로는 주춤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들은 한꺼번에 단두대(斷頭臺)에 올려 처리하겠다”며 ‘규제 기요틴(guillotine)’이라고 까지 언급할 만큼 결연한 의지를 거듭 밝히며 결연한 추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가기천 수필가·전 서산부시장
이에 앞서 지난 3월,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저녁식사도 거른 채 무려 7시간 동안 열린 이른바 ‘끝장 토론’에서 ‘쳐부숴야 할 원수,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고 한데 이어 점점 그 표현에 강도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는 공익성 높이고 공동이익 추구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

원론적으로 보면 규제는 공익성을 높이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개발사업과 도시화가 진행되는 곳에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규제를 만들고, 여건이 변화하면 그에 비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더하여 안전한 먹거리나 환경문제가 대두될 때는 그 분야의 규제가 현실에 부합되는지 짚어보고,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안전 분야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규제는 때로는 지나치거나 불평등한 것이 없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언젠가 다시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지나친 원려(遠慮)나 무관심으로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둔 것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규제개혁을 가로막는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법령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항이다. 이러한 법과 규정 때문에 이를 집행하는 공직자의 입장에서는, 재량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다음은 제도와 현실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의 인식과 의지도 한몫을 한다. 이익집단이나 특정계층의 반대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나 규제완화로 인한 부작용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외면할 수 없다.

여기에 중앙·지자체 간 또는 관련기관이나 부서 간 얽히고설킨 사항이거나, 의회, 언론, 사법적 감시, 시민단체 등 내·외부통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공직세계의 속성이기도 하다. 더구나 ‘일을 하려다 빚어진 과오는 관용을 베푼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감사를 의식하여 움츠린 태토를 마냥 탓할 수만은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지방자치실시 이후 달라진 행정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들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정권마다 규제개혁 외쳤지만 처음에만 반짝하다 추진동력 잃어

규제개혁은 정권마다 ‘규제완화’, ‘혁신’, ‘대못 뽑기’ 등 여러 이름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물결은 공직자들의 의식과 자세에 변화를 가져오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초기에 반짝이다 점차 추진동력을 잃고 말았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더구나 한 번으로 모든 장애요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또 돋아나고 자라는 것이다. 어쨌든 집권자의 강력한 의지를 담은 규제개혁은, 있는 것을 없애고 완화하는 성과와 아울러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법과 제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하고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법과 제도의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법령이나 조례로 묶여있는 규제라면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조속히 푸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행정조치로 가능한 사항은 빠르게 조치하여야 하고 ‘때문에’라는 구실부터 없애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규제의 양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규제를 개선하는 질적인 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관장들이 의지를 가지고 해나가야 하고, 실무자들이 소신껏 처리한 행위를 북돋우고 혹시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며, 우수한 성과를 올리면 그에 상응한 포상과 인사고과에 가점을 주는 당근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작은 규제라도 개혁해야 하고 기관 간 ‘대관 규제’도 최대한 내려놓아야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뜻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하여 퇴각하던 중, “길이 좁은데다 비까지 내려 진흙탕이 된 길을 빠져 갈 수 없다”고 하는 부하를 꾸짖으며 했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하지 않으려거나 안 되는 구실을 찾는 사람’에게는 귀담아 들을 말이 아니라 한낱 고사(故事)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규제를 만들거나 푸는 것도 사람이다. 규정을 앞에 놓고 이것을 권한으로 삼는다거나, 보신을 의식하여 그 뒤에 숨는 공직자가 있다면 결코 존재의 이유가 되지 않음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비록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처한 사정’으로 여겨 개혁해야 하고, 더불어 기관 간의 ‘대관 규제’도 최대한 내려놓아야 한다,

규제가 태산으로 보이고 공직자의 메마른 태도가 건너기 힘든 물처럼 느껴진다면 그런 공직자 앞에 서있는 국민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산처럼 가로막고 있으면 헐어서 길을 낸다는 각오로 임하여야 하고, 물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다리를 놓아 건너가겠다는 자세로 부딪혀야 한다. 공직자의 인식과 국민이 느끼는 심정사이의 간격을 더 좁히고 좁혀야 한다. 절박한 국민의 입장이 되어 하나하나 뜯어보며, 이를 개혁하는 문고리를 힘껏 당겨야 한다. 그것은 민간인으로서 범접하기 어려운 권한이고 아울러 책무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