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조직 혼선만 우려되는 '위기 시장'의 개혁 혁신

권선택 시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개인문제가 시정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개혁과 조직개편도 강조했다. 맞는 말이지만 ‘열심히 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 개혁도 개편도 필요하겠으나 권 시장은 시기를 좀 늦추는 게 좋다.

권 시장, 개혁 개편 시기 좀 늦춰야

재판을 앞둔 자치단체장이 펼치는 행정은 그렇지 않는 단체장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의연하게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무 일도 없는 ‘정상 상태의 시장’과 같을 수는 없다. 대규모로 인사를 하고 큼직한 계획을 새로 짜는 등의 혁신적 변화는 피해야 한다.

대전시의 연말 인사가 대규모가 될 것이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정기 인사이므로 정년 명퇴 등으로 물러나는 사람들이 많다면 인사 폭은 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사 규모를 그 이상으로 키우고 변화를 확대하는 것은 ‘재판받는 시장’이 할 일이 아니다.

권 시장은 인사 폭을 가급적 키우고 일을 더 벌이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싶을지 모른다. ‘임기를 채우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을 것이다.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오산이다. ‘재판중인 시장의 혁신’은 시장 자신에도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판중인 데도 인사를 크게 하는 것은 시장이 “나는 끄떡없다”는 ‘무죄 확신’의 메시지를 공무원과 시민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정에서 보면 ‘장외 선전’처럼 보일 수 있다. 지금은 권 시장의 4년 임기 가운데 3년 정도는 법원에서 쥐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아무 문제없이 4년을 다 채울 것처럼 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다.

재판에도 대전시에도 도움 안되는 ‘개혁 시점’

무엇보다 ‘피소 시장’의 개혁과 대규모 인사는 조직의 안정성만 흔들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권 시장의 신분 유지에 문제가 없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시장 자리를 물러나야 하는 선고를 받는다면 권 시장이 단행한 대규모 인사는 뭐가 되는가?

인사는 장(長)이 조직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긴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돼 있는 사람은 가급적 인사를 피해야 한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도 인사를 최소화하는 게 조직을 위하는 자세다. 권 시장은 후자에 해당되는 게 사실이다.

권 시장의 ‘앞날’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권 시장이 받는 재판은 5명이나 구속되고 수십 명이 기소된 사건이다. 권 시장 자신에게 무죄가 선고된다고 해도 ①회계책임자가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거나 ②선거비용 총액이 일정 금액 이상을 넘어가면 권 시장은 시장 자리를 내놔야 한다. 이 2가지는 권 시장 자신의 소관 범위를 넘어서 있는 사안이다.

시장 신분 유지 문제를 권 시장 자신의 무죄확신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은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일을 더 벌이고 내 사람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을 내쫓는 일은 이런 처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규모 인사와 개혁’은 권 시장이 처한 현실에선 거리가 먼 용어들이다.

조직 혼선만 가져올 수 있는 대규모 인사

현실을 무시하고 조직을 흔드는 인사는 부작용과 혼선만 가져오게 돼 있다. 권 시장이 임기도 안 끝난 사람을 내보내고 인사 폭을 키우려는 게 ‘떠나는 한 있더라도 일단 내 사람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이면 딱한 일이다. 현실적으론 그렇게 보는 시각들이 적지 않다. 권 시장이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 이들은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후임자가 오면 조직은 또 한번 몸살을 앓고 업무도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

조직 개편을 하려면 취임한 후에 바로 시작했어야 한다. 권 시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많은 시민들은 시장이 바뀐지도 모를 만큼 변화가 없었다. 현 시점에서 변화와 개혁을 주문하는 것은 ‘사고 차량’이 뒤늦게 속도를 내겠다는 꼴이다.

많은 공무원들은 ‘시장의 처지’가 어떠하든, 승진 자리가 몇 개나 나는지 나에게도 기회가 돌아오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다. ‘승진 잔치’라도 벌여 득인심하겠다는 전략이면 역시 오산이다. 인사는 잘해도 욕을 먹게 돼 있다. 한 공직자는 90%에게 좋고 10%에게 나쁜 인사라도 나쁜 10%가 좋은 90%를 뒤덮는 게 인사라고 말한다.

개혁 개편보다 조직 안정 힘써야

권 시장이 위기의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자세가 오히려 ‘리더십 위기’를 보다 잘 극복하는 방법이다. 권 시장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어떨까? “시민과 공무원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제가 불의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큰 계획은 결정하지 않겠다. 조직도 안정적 운영에 중점을 둘 테니 여러분 협조해 달라.”

이 말을 낚아채 권 시장을 공격하는 빌미로 쓰는 무리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권 시장에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수렁에 빠져 있는 시장이 현실을 부정하고, “내가 대전시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치며 조직을 흔들어 대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호소력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런 시장, 이런 도지사를 한번이라도 경험해 보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권 시장이 위기의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개혁과 조직 개편 운운하는 것은 너무 뻔한 방식이고 무엇보다 본인에게도 조직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불법선거 여부를 떠나 ‘인간적으로’ 권 시장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난다. 그들도 권 시장이 뭔가는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바랄 것이다.

권 시장은 당분간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정 운영의 기조를 삼았으면 한다. 그 기간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대법원은 선거재판의 경우 기소 후 6개월 이내에 최종심(審)을 마치도록 하고 있다. 재판이 한정 없이 늘어지던 과거와는 다르다. 대전지법도 집중심리제를 도입, 다음 주부터 매주 재판을 연다고 한다.

개혁과 변화는 좋은 말이지만 지금 권 시장의 경우는 자신에게도 대전시에게도 불리한 용어다. 권 시장은 위기 돌파 전략을 바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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