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맹견들’에 둘러싸인 위기의 대통령

대통령이나 시도지사처럼 큰 조직을 책임진 장(長)의 입장에서 보면 공직자는 두 부류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보통 ‘측근’이라고 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칭한다. 다만 물리적 거리든 심정적 거리든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다. 측근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측근’과 ‘측근이 아닌 사람’ 두 부류

모든 공직에는 그에 걸맞는 자격 요건이 있지만 측근이 되는 데는 별도의 자격이 필요없다. ‘주인’의 맘에 들기만 하면 된다. 지위도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출신도 따지지 않는다. 대개는 충성심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측근은 공직 내부에 들어올 수도 있고 바깥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자리보다 높은 벼슬이다. ‘주인’ 다음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주인(권력자)을 통해서 뭔가를 -취업이든, 승진이든 이권이든- 얻으려는 사람들은 측근을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측근에게조차 ‘주인’ 대하듯 하는 경우도 많다.

측근으로서 갖게 되는 이른바 ‘측근 권력’도 부패하기 쉬운 권력의 속성을 지닌다. ‘음지’에서 행사되기 때문에 더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공무원의 승진 청탁이나 사업자의 이권 청탁도 측근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순자 “총애하고 믿을 만한 측근 없으면 위험”

때문에 ‘측근’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권력자 주변에서 뭔가를 꾸미고, 간섭하고, 농간부리는 사람쯤으로 여긴다. 정윤회씨 사건으로 유행어가 된 ‘십상시’는 측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상징한다. 하지만 측근은 없을 수 없다.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荀子)도 측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금은, 궁궐 담 밖은 눈으로 볼 수가 없고 마을 저편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알 길이 없다면, 임금이 협박당하고 가려지고 막혀지는 근원이 된다. 임금은 무엇으로 그런 것을 알아야 하는가? 그가 ‘총애하는 측근들’(便嬖左右者)이다. 그들은 임금이 먼 곳(사정)까지 알게 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창문이 된다. 그러므로 임금에게는 ‘믿을 만한 측근’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선 대통령은 물론이고 시도시자나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도 ‘측근’은 필요하다. 예를들어, 충남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도지사에 당선되어 취임했다고 하자. 그는 곧 그의 이름으로 간부진 인사(人事)를 해야 한다. 물론 그는 간부 개개인의 장단점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총무과에서 올린 인사안(案)을 100% 수용해서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인사라면 그는 도지사가 될 이유가 없다.

측근이 없다면 6개월이나 1년 뒤에도 같은 식으로 할 수밖에 없다. 허수아비 도지사가 되지 않으려면 인사안을 함께 검증할 수 있는 측근이 있어야 한다. 측근이 없다면 대통령도 시장도 눈뜬장님과 다를 바 없다. 인사뿐 아니라 도지사가 결정해서 도장을 찍는 모든 정책이 그렇다.

물론 현직 총무과장이나 자치행정국장 등이 새로 측근 노릇을 하기도 한다. 측근이 없으면 조직원 가운데서 마땅한 사람을 뽑아 측근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정무부지사까지 지내며 안희정 지사의 측근 그룹이 된 권희태씨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의심받고 있는 정윤회씨

안희정 측근 ‘정치 편향’, 권선택은 ‘믿을만한 측근 부재’

측근에 대한 의존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안희정 지사의 측근은 너무 정치 쪽에 편중돼 있고, 권선택 시장은 쓸 만한 측근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권 시장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어두운 밤길을 홀로 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요즘 논란되고 있는 정윤회씨 문고리 3인방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을 너무 중시하는 데서 빚어진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장관은 물론 국무총리조차 독대가 어려웠다고 한다. 논란이 컸던 노인연금 결정 과정에서 사표를 던진 진영 장관은 이 문제를 가지고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으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문턱을 넘지 못하자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장관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도 대통령 만나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 소재를 모른다던 비서실장의 답변도 둘러댄 말이 아닌 듯하다.

어떤 대통령도 혼자서 그 많은 일을 결정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은 누구와 상의하겠는가? ‘문고리 3인방’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을 뽑은 사람이 정윤회씨였으니 정기모임이 있었던 없었던 정씨가 나라 일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을지는 짐작하고는 남는다.

박근혜, ‘측근 맹견들’에 둘러싸여 위험

‘독점’은 권력의 속성이다. ‘측근 권력’도 마찬가지다. 정윤회-박지만의 갈등은 ‘측근 권력’간의 충돌로 보인다. 박씨는 대통령의 친동생이니 누구보다 가까운 측근이다. 정씨가 그런 박씨와 싸움을 벌일 정도면 대통령의 신임은 알만 하다.

측근은 필요하지만 측근에게만 둘러싸여 있으면 주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해진다. 주인 스스로 단속하지 않으면 화를 부른다. 도둑이 아니라 손님을 물어뜯고 수틀리면 주인까지 공격한다. ‘측근 맹견들’의 특성이다. 정윤회 사건이 터지면서 측근들이 저마다 ‘감시견(조응천 비서관)’이나 ‘진돗개(정윤회)’를 자처하는 걸 보면 박 대통령은 ‘맹견’에 둘러싸여 있던 게 분명하다. 대통령이 위험하다. 한비자는 맹견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송나라 사람이 술장사를 하면서 되를 속이지 않고 친절하게 했는데도 장사가 안 돼 술이 쉬어버리곤 했다. 마을 어른에게 물으니 ‘사나운 개’ 때문이라고 했다. 나라에도 개와 같은 존재가 있다. 도(道)를 터득한 선비가 임금에게 포부를 설명하려 해도 (측근의) 대신이 개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다면 임금의 눈과 귀는 가려질 것이다.”

이완구 원내대표가 국무총리로 발탁된다면 ‘측근’이 돼선 안 된다. ‘문고리’만 측근이 아니다. 총리도 장차관도 역할이 측근에 불과하면 측근일 뿐이다. 측근은 대통령의 대통령이 보고 듣는 데 필요한 분신(分身)에 불과하지만 총리는 나라 일을 놓고 대통령을 보필하고 안내하는 협력자다. 한비자가 말하는 ‘도를 터득한 선비’의 역할에 가깝다.

순자 역시 측근의 필요성과 함께 재상(宰相)과 사신(외교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임금은 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일을 맡길 만한 재상을 둬야 한다. 재상의 덕은 백성을 안정시킬 만해야 한다.” 재상은 지금의 국무총리다. 대통령 앞에서 ‘각하’를 연발하는 사람은 국무총리감은 아니다.

‘재상’ 후보까지 측근 자처하는 충성맹세

이 대표의 ‘박근혜 대통령 각하’ 호칭은 잘못됐다. 그는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만나는 공식석상에서 ‘각하’를 3번이나 연발했다. 대통령의 ‘측근 노릇’을 자처하는 뜻이 담긴 의도된 호칭이었다. 시비가 잇따르자 이 대표는 외국에서도 ‘각하(Your Excellency)’라는 표현을 쓰고 자신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썼다고 항변한다.

때와 장소가 문제다. 이 대표가 국무총리 자리에 가고자 한다면  “각하”는 부적절했다. 정파가 다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붙인 ‘각하’는 겸손일 수 있으나, 유력한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시점의 ‘각하’는 공개적인 충성맹세와 아부로 들린다.

지금 대통령에겐 측근만 있고 재상과 관료가 없는 게 문제다.  측근 문제로 대통령 자신이 곤혹스러운 처지이고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총리감이라는 사람까지 나서 측근을 자처하는가? ‘측근 총리’는 성공하기 어렵고,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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