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이제라도 ’구원투수’ 찾아야

김학용 주필
권선택 시장이 결국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검찰이 기소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만큼 불법선거 재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권 캠프의 회계책임자에 대해 재청구된 구속영장은 기각됐으나, 이 사건으로 5명이 구속되고 2명이 도주한 상태라는 점은 엄연한 현실이다. 권 시장의 신분 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권 시장의 위기 부른 것은 ‘사람 문제’

권 시장이 이렇게까지 된 근본 원인을 따지면 ‘사람 문제’다. 권 시장에겐 사람이 없었고, 그 자신도 사람을 그리 갈구하지 않았다. 권 시장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측근’ 김 모씨 한 명만 곁에 두고 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그에 맡기고 의지했다.  선거도 인사도 그가 주물렀다.

그러나 측근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권 시장을 도와 대전시장 자리를 쟁취하고, 운영하는 데는 힘이 부치는 사람이었다. 검찰 수사까지 초래한 ‘부실한 선거관리’도 결국 ‘용인 문제’였다. 권 시장에겐 더 노련한 베테랑과 전문가들이 필요했으나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권 시장은 검찰조사를 받고 나와 “시정에 누수가 없도록 하겠다. 역경을 극복하고 대전발전의 기틀을 다질 것”이라고 했다. 마땅한 말이지만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말을 조금이라도 실천에 옮기려면 권 시장에게 2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권 시장에게 필요한 ‘현실 직시’와 ‘사람’

첫째 대전시장으로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권 시장이 ‘99가지 거짓’을 뒤엎을 ‘진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시장 자신의 유죄를 고백하는 것으로 비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시장이 결백하든 않든 자기 운명은 법원이 쥐고 있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 권 시장이 이런 현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시정을 끌고 가면 행정은 더욱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장기계획을 서둘러 추진한다든가 하면 행정의 신뢰성은 더 떨어질 것이다.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 위주로 진행하면서 장기 계획은 뒤로 미뤄야 한다.

둘째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권 시장에겐 여전히 사람이 없다. ‘유일한 측근’마저 이제는 도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 어떤 일이든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대전시 안에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행정부시장도, 정무부시장도, 비서실장도 그런 범주에는 들지 못하는 사람들 같다.

검찰조사 받은 날의 특강 등  ‘정무 기능 부재’ 드러내

어제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한 권 시장은 몇 시간 뒤 지역의 한 대학을 찾아 ‘자신의 인생론’을 강의했다. 검찰 수사의 부당성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뜻은 이해되지만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오히려 불안하다.

얼마 전 부산은행 대전지점이 문을 열면서 대전시장 참석을 요청해왔다. 대전시는 시장도 부시장도 바빠서 못 간다고 했다고 한다. 부산은행은 3000만원을 대전시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비쳤다가 취소했다. 기부 의사를 철회한 부산은행도 이해할 수 없지만, 대전시의 ‘참석 불가’ 통보도 이해하기 힘들다.

대전에 지방은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전북은행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대전시가 그렇게 야박하게 굴 일은 아니었다. 광주처럼 부시장 한 명을 보내도 무방했다. 타지 은행이 우리 지역에 들어오는 게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특강’과 ‘부산은행건’은 작금 대전시의 ‘정무기능의 부재’를 말해준다. 외지은행 지점 개점식 참석 문제조차 조언해줄 사람이 권 시장에겐 없다는 말이다. 시장은 대학 특강 같은 사소한 문제라도 누군가와 상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주변에 ‘내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권 시장 위기 극복 도와줄 ‘구원투수’ 필요

작은 일이라도 커다란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면 말할 필요도 없다. 권 시장은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갈 사람을 이제라도 구해야 한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돕던 사람도 슬그머니 빠지는 게 보통이니, 제대로 된 사람 중에 권 시장을 돕겠다고 나설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권 시장에겐 지금 ‘구원투수’가 필요하다. 권 시장은 중도에 물러날 수도 있고 임기를 다 채울 수도 있다. 그 시점이 언제까지이든 그는 대전시장이다. 대전시 살림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 한다. 위기는 권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전시의 문제다.

권 시장은 시청 내부에서 찾든 외부에서 데려오든 속히 사람을 구해야 한다. 검찰 출두 때 청사에 나와 "힘내라"고 외친 사람들 중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시장 혼자서 어렵다면 정당이나 지역 원로들이 이런 문제를 거들 수도 있다. 고위직 인사권을 가진 안전행정부나 청와대도 대전시의 현상황을 살펴봤으면 한다.

지금 권 시장 주변에는 객지인들만 너무 많다는 점도 문제다. 권 시장 주위엔 토박이가 별로 없다. 토박이만 중용할 이유는 없지만, 고향 사람이 너무 적으면 위기의 순간에 구심점 역할을 하기 힘들다. 대전테크노파크 원장은 최근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떠났다. 그는 여기 사람이 아니었다.

권 시장은 법정에선 최선을 다해 싸워나가되, 대전시장으로선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그에 걸맞는 행정을 펴야 한다. 임기를 채우든 못 채우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있는 법이다. 권 시장에겐 우선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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