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리베이트 자금’ 300억 용처 밝혀야

하나은행은 종종 대전시티즌에 후원금을 내놓는다. 대전일보는 지난 10월 초, 사진과 함께 “하나은행 충청영업그룹은 대전시티즌 승격기원 후원금 2억원을 전달했다. 사진=하나은행 충청영업그룹 제공”이라고 보도했다. 후원금이 훨씬 많을 때도 있다. 2012년 7월 연합뉴스는 “하나은행 충청사업본부가 대전시티즌 구단주인 대전시장에게 후원금 15억원을 전달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사진기사를 실었다.

'후원금'과 '도약기원'을 구분하는 이유

그러나 이 두 장의 사진에 쓰인 설명 용어에는 차이가 있다. 2억원을 낼 때는 ‘후원금’으로 명시돼 있지만, 15억원을 전달하는 사진에는 ‘후원금’ 대신 ‘도약기원’으로만 표시돼 있다. 언론들은 이런 차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언제나 “하나은행이 ‘후원금’을 내고 있다”고 보도한다.

같은 후원금인 데도 2억원은 ‘후원금’으로, 15억원은 ‘도약기원’으로 썼을까? 후원금과 도약기원은 회계처리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후원금은 기부에 해당되지만 도약기원은 기부가 아닌 광고다. 15억 원은 시티즌 유니폼에 ‘하나은행’을 넣은 대가로 주는 광고비다.

광고비를 후원금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그러나 2008년에는 ‘대전시티즌 후원, 현금 15억원’으로 표시했다. 누가 봐도 ‘후원금’이지만 문제가 되면 ‘후원’과 ‘후원금’은 다르지 않느냐고 둘러댈 수 있다. 회계 처리상으론 기부금과 광고비가 구분되지만 대전시티즌을 돕는다는 취지는 같다. 따라서 언론들이 2억이든 15억이든 ‘후원금 전달’로 보도해도 별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 돈이 2억 짜리든 15억 짜리든 진짜 후원금이 아니라는 데서 생긴다. 이 돈은 엄밀히 말하면 ‘리베이트’다. 하나은행이 대전시 금고를 맡는 조건으로 대전시에 내놓는 리베이트라고 할 수 있다. 명목을 후원금으로 하든 광고로 하든 그 돈의 본질은 사례금이다.

수상하게 쓰여도 상관없는 '리베이트' 300억

리베이트는 금고계약이란 본래 목적을 달성한 이상, 하나은행으로선 그 돈이 어디에 쓰이든 큰 상관이 없다. 후원금이든 광고비든 상관없다. 법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수상하게 쓰여도 상관없다. 이게 문제다.

하나은행은 2013년, 1년에 100억 원 이상 대전 지역에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시금고 계약을 따냈다. 계약기간 4년 동안 모두 415억 원을 대전에 내놓아야 한다. 이 가운데 4분의 1이 좀 넘는 금액(115억 원)은 시의 공식 수입으로 잡혀 예산에 반영된다.

그러나 나머지 300억 원은 어디에 쓰이는지 시민들은 알 수가 없다. 시민들 대다수는 이런 돈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은행과 대전시가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지역 기여 사업비’라는 돈이다.  ‘2억원’도 ‘15억원’도 여기서 나오는 돈이다.

이렇게 공개리에 내놓는 돈은 문제가 없지만 300억 가운데 상당액은 눈먼 돈처럼 쓰이면서 폐단을 낳고 있다. 하나은행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두 120억 원을 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해 20억원 꼴이다. 이는 하나은행이 내놓기로 한 지역기여사업비 연평균 75억 원의 4분의 1이 좀 넘는 수준이다.

하나은행은 리베이트의 주인이 아니다

와인페스티벌이나 복지시설 후원금이나 각종 문화예술 행사 협찬금 등의 이름으로 지역에 내놓는다. 그러나 300억 가운데 상당한 금액은 그 용처를 알 수 없다. 시장의 쌈짓돈처럼 쓰인다는 의혹들도 많다. 은행과 대전시는 지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대전시는 내역을 못 준다고 하고, 하나은행도 반대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지역기여사업비에 대해 묻자, “영업비밀이다. 공개할 돈이 아니다”고 했다. 은행이 지역에 기여하는 사업에 쓰는 돈이긴 하지만 그 돈의 주인은 하나은행이므로 지출 내역을 시민들에게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금고 계약을 조건으로 ‘기부’를 약정한 이상, 하나은행은 그 돈의 주인이 아니다. 하나은행이 금고로 선정된 만큼 그 돈은 시민의 공금이라고 봐야 한다. 인구가 150만명이니까 1인당 2만원 꼴이다. 은행은 그 돈의 관리를 맡고 있을 뿐이다.

관리자가 남의 돈을 제 맘대로 쓰고 내역도 비밀에 부친다면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은행이 일일이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그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어디에 썼는지는 시민들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지출내역 아는 사람은 은행과 대전시장뿐

이 돈이 어떻게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은행 말고는 대전시장뿐이다. 은행은 지출 내용을 대전시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지역 기여’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쓰였는지는 시장이 판단하기 위함이다. 시장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시금고 재계약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만하다. 지역기여사업비는 진짜 주인인 시민들은 모르는 돈이니 눈먼 돈이나 마찬가지다. 대전시장과 하나은행장(충청본부장) 두 사람이 이런 돈의 임자 노릇을 하고 있다.

돈의 용처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두 사람만 OK하면 얼마든지 엉뚱한 곳에 쓸 수 있다. 시장이 갑(甲)이고 은행이 을(乙)이기 때문에 이 돈의 용도에 대한 ‘최고 결정권’은 시장에게 있는 셈이다. 시장 맘에 드는 곳에 쓸 수 있다.

가령, 시장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면 하나은행 측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은행은 그 ‘누군가’의 행사에 기부나 협찬 등의 방법으로 시장의 뜻을 받든다. 하나은행 기부금이 이런 식으로 쓰여진다는 소문들이 있어왔다. 물론 그 ‘누군가’는 대개 시장 측근이나 지지자들이다.

'눈먼 돈'으로 놔두면 시장 쌈짓돈 제공

하나은행과 대전시가 이런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지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아니면 금고 리베이트 전액을 시 예산으로 넣어야 한다. 계속 ‘눈먼 돈’으로 남겨 놓겠다면 앞으로도 시장의 쌈짓돈으로 제공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투명하게 해야 한다. 은행으로부터 지출 내역을 보고받는 공무원이 있지만 ‘위에서’ 이뤄지는 일을 다 알 수 없고 알아도 시비하기 어렵다. 시금고선정심사위원회에서 지역기여사업비를 확인하는 과정도 있지만, 시는 누가 심사하는지 밝힌 바가 없고 심사 결과가 공개된 적도 없다.

거듭 말하지만, 그 돈은 은행 돈이 아니다. 수십 명의 회원을 가진 작은 단체가 있다고 하자. 단체의 기금을 맡기는 조건으로 은행에서 제법 큰 선물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회장과 그 측근 일부에게만 몰래 전달하고 일체를 비밀에 부친다면 부정행위다. 그 규모가 300억 원대라면 선물이 아니고 뇌물이며 중대 범죄다.

예산회계법이나 실정법상으론 하자가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은행과 시장은 더 안전한 ‘뇌물 수단’으로 여길지 모른다. 은행으로선 시장 한 사람만 ‘요리’하는 게 유리하겠지만, 이제 시장은 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나은행과 대전시는 내돈 2만원의 지출명세서를 밝혀주기 바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