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라창호 전 부여 부군수.
무신불립(無信不立)은 공자의 말씀이다. 자공이 공자께 “나라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공자께서는 “병사를 충분히 두고 식량을 풍족히 해야하며, 백성들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공이 다시 “부득이 그 중 한 가지를 버려야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는 '병사'라고 한다. 자공이 “또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하자, 공자께서는 '식량'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이어 “옛 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서지를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말씀한다.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정치인들,무신불립 새겨야

그러면 우리나라 정치권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가?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나, 그들의 행태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라.잘 알지 않는가? 특히,수권 정당이 돼야 할 제 1야당 정치인들의 말은 믿음을 주기보다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엊그제만 해도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 준다” 고 발표하더니, 여론이 안 좋고 공짜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이자, ‘저가 임대 주택 공급’이 왜곡 전달됐다면서 구호를 바꾸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왜 나이를 가지고 말들이 왔다 갔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몇 년 전 언젠가 유력 정치인 정모씨가 “60대 넘어 70되신 노인 분들은 투표 안 하셔도 된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했다가 노인폄하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 말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 지지 않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설 훈 위원장이 “나이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정년 제도를 두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엊그제는 방송을 듣다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당의 민 모 의원이 “정년을 70세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당 의원들의 말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나이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지니 쉬어야 한다” 하고, 한 사람은 판단력이 떨어질 나이(?)까지 정년을 연장하자고 하니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떨떠름하기만 하다.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노인들을 그토록 폄하하더니 이제 나이 많은 층에 호감을 표시해 보자는 것 아니겠냐"고. "선거 때 노인들 표 좀 얻어 보겠다는 심사 아니냐"고. 말실수로 한번 신뢰를 잃으면 신뢰를 회복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는 어느날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으로 꾸준한 믿음을 보여 줘야 한다.

정당의 정책은 일관되고 명쾌해야

더구나 새정련이 ‘신혼 부부에게 집 한 채’준다고 발표를 했다가 무상급식 문제와 맞물려 여론이 안 좋게 흐르자, 공짜 주택이 아니라 ’저가 임대 주택 공급‘이라며 구호를 바꾼다고 하는데도 말의 일관성이 결여됐다.정당의 정책이라면 처음부터 명쾌했어야 한다.

홀리는 듯한 말을 해 놓고 의도한대로 믿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말을 바꾸며 변명을 하거나 뜻이 왜곡됐다느니 해서는 곤란하다. 말을 자주 바꾸면 신뢰를 잃는다. 수권정당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려면 먼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정년을 70세로 연장해야 한다는 말도 어찌될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정년을 늘리면 나이 먹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보장되고 생활이 안정되는 등 좋은 점도 있지만, 눈앞의 현실이고 시급한 문제인 젊은 층의 취업난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할 만한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 보다 치밀하고 단계적이며 실현가능한 방안이 제시돼야 신뢰를 얻을 것이다. 또 말 바꾸기 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일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보아도 나이 80이 넘어서 까지 빛을 발한 사람들이 많다.

나이가 많다고 일 못하는 것은 아녀     

3000년 전 중국의 강태공은 나이 80에 주 문왕을 만나 능력을 발휘했고, 주 무왕을 도와 은(殷)을 멸하고 서주(西周)를 세우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도 또한 제(齊)나라의 시조가 됐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 황희 정승도 68세에 영의정이 되어 86세가 되도록 18년 동안 영의정 자리에 있었다.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독일의 아데나워 초대 수상은 73세 때 처음 수상이 되어 14년간 집권하고 88세 때 수상직에서 물러났다.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앙숙 프랑스와도 화해를 이뤘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처칠 수상도 66세 때 처음 수상이 되고, 77세 때 다시 수상이 되어 81세 때까지 역임했다.

일을 함에 있어 나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나이 불구하고 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공하려면 국민들의 신뢰가 필요하다. 이 분들은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성공을 이루고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강태공은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覆水不返盆)”고 했다. 말 또한,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정치인들은 일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입을 무겁게 하여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민무신불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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