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who am I’ 제작진 “대전서도 성공할 수 있다”

김학용 주필
우리는 더 많은 재산, 더 큰 권력, 더 높은 명예를 바란다.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개인에겐 성취동기이면서 사회가 돌아가는 동력이다. 그러나 욕망에만 매몰되면 불행해기 십상이다. 탐욕은 성공보다는 실패로 안내한다. 신문의 사회면은 늘 이런 사람들에 대한 기사들로 장식된다.

욕망이 한없이 분출되는 사회도 위험하다. 300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사고는 탐욕스런 사회가 무고한 개인을 어떻게 희생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개인은 없다. 사회가 안전해야 개인도 안전하다.

탐욕에만 눈 멀면 개인도 사회도 불행

그렇다면 허용되는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이런 물음은 우리의 일상 업무와는 좀 벗어나 있지만 늘 부닥치는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A씨는 성실하고 유능한 공무원인 데도 승진에선 뒤처져 있다. 자신이 청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고민에 빠질 것이다. “이제라도 청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청탁하면 무조건 나쁜 인간, 안 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다. 전자의 경우는 자칫 별수 없는, 비루한 인간이 되고 말 수 있고, 후자를 따르면 현실을 너무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맹자는 “자신을 굽히는 사람이 남을 바로잡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두예나 이순신의 방법은 좀 달랐다. 진무제 때 두예는 진중(鎭中)에 있으면서 귀관 요직에게 선물을 보냈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방해할까 두려워서이지 이익을 구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이순신이 조정의 권귀에게 부채를 보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성호사설에 나오는 얘기다.

청탁은 조직을 망치는 해악이 분명하지만 현실의 개인에겐 여전히 고민거리다. 샐러리맨 사업가 정치인 의사 교수 과학자들도 이런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업무 능력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다.

‘얼마나’보다 ‘어떻게’도 중시해야

이런 문제들은 널려 있다. 대개 ‘일’보다는 ‘삶의 방식’의 문제다. 가령 ‘얼마나 높이 오를 것인가’보다 ‘어떻게 오를 것인가’ ‘왜 올라야 하나’ 하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간과하면 설사 높이 올랐어도, 돈을 많이 벌어도 하루아침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진학-취업-결혼-승진-은퇴 등의 일생을 거치면서, 욕망과 현실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은 전부 그런 류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부(富) 권력 명예라는 용어가 남의 나라 말인 사람들도 이런 문제에선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있는가? 있다면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사람마다 유용성도 다르다. 그러나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살피는 방법이라고 본다.

옛 사람들도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 시대의 도덕이 있었다. 동양에선 유교가, 서양에선 기독교가 커다란 기준이었다. 언제부턴가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면서 그런 기준도 가치관도 사라지고 있다. 혼돈의 시대로 빠져 들고 있다. 돈을 위해선 교도소에도 가겠다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과거의 도덕을 그대로 되살리는 건 어렵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무너진 가치관 혼돈의 시대, 인문학 살려야

어쩌면 인문학이 대안이다. 인문학은 우리의 무너진 양심을 일깨우는 스승이다. 물론 인문학이 도덕책은 아니다. 승진 청탁은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대안의 필요성과 요령도 알려주는 게 인문학이다.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얼마 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제3회 세계인문학포럼이 사흘간 열렸다. 노벨상후보로 거론된 재미교포 이창래 프린스턴대 교수 등 국내외 인사들이 참석했다. 부산에서 2번 열리고 3번째 대전에서 열린 행사였다. 유네스코와 교육부 대전시가 후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한 행사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문학 축제다.

규모에 어울릴 만큼 열기도 뜨거웠다. 중고생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른들까지 1000석이 넘는 좌석을 꽉 메웠다. 다 제발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서대전고등학교에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버스를 임대해서 학생들을 데려왔고, 대신고 학생들도 선생님과 함께 왔다. 개별적으로 찾아온 대학생들도 많았다.

10월30일~11월1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전세계인문학포럼

부산보다 뜨거웠던 대전 세계인문학포럼

경기대의 김기봉 교수는 부산과 대전포럼을 다 참석했던 이 분야 전문가다. 그는 대전 포럼의 청중 열기가 부산보다 뜨거웠다고 했다. 대전시가 ‘3수 끝에’ 따왔지만 이번 행사도 부산시에서 하고 싶어했다. 그런 부산보다 대전이 나았다는 게 김 교수의 평가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포럼을 대전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격년으로 열리는 데다 개최지도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음 세계인문학포럼은 행사를 유치하는 시도가 준비해서 열게 된다. 다른 시도가 신청하면 대전에서 열릴 가능성은 낮다.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수준의 인문학포럼을 지속적으로 여는 방법을 대전시가 강구해보면 어떨까 한다. 전국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대학과 시민단체 등에서 인문학 강좌가 많이 열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 도시’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아직 없는 듯하다. 대전이 ‘인문학 도시’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면 좋겠다.

인문학포럼 과학도시 이미지 높이는 데도 도움

대전이 인문학 도시가 되면 과학도시로서의 이미지도 높일 수 있다. 과학과 인문학은 반대가 아니다. 인문학과 과학은 융합하고 소통해야 양쪽 다 빛이 난다. 이미 스티브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인문학과 과학 결합의 유용성을 증명했다. 인문학은 흔들리는 과학도시 대전을 살리는 좋은 방법이다.

김기봉 교수는 이번 행사의 성공적 개최는 대전에 연구단지가 있다는 점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는 “인문학을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만 봐선 안 된다”며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유병래 충남대 교수는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이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인문학을 채워 넣어야 된다”며 “과학기술에는 인문학이 평형수(平衡水)”라고 했다.

대전시를 주축으로 과학도시를 상징하는 기관인 카이스트와 연구기관들이 참여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학포럼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10년 전부터 대전시와 함께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는 충남대 등 지역 대학들도 함께해서 포럼추진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민간단체 주축으로 이끌어 가는 게 마땅하지만 우선은 대전시가 나서 씨를 뿌리면 어떨까 한다.

와인보다 인문학 향기에 취해봤으면

우리나라의 인문학 열풍 한가운데 TV와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인문학 강의 ‘후엠아이(Who am I)’가 있다. 플라톤아카데미와 SBSCNBC가 함께 만들고 있다. 포럼이 열릴 때마다 1000석이 다 찬다. 신청자를 다 받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즐겨보는 사람들도 많다. 후엠아이 제작진은 “대전에서도 품격있는 인문학 포럼을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전 포럼에는 부산에서 올라온 청중들도 있었다. 부산 행사 때 참여한 학생들이었다. 이런 포럼이 자신에게 큰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하는 학생일 것이다. 이번 대전 행사에 참여한 대전의 학생들 중에도 그런 자양분을 얻은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행사에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초청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꼭 저명인사 강연이라야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TV로만 보는 ‘명사들의 강연’을 대전에서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질문도 할 수 있는 행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와인보다는 인문학의 향기에 취하는 도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비용도 와인보다는 인문학이 훨씬 저렴할 것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